회사에 다니던 시절, 제가 가장 즐기던 업무는 단연 해외 시장 리서치였습니다. 특히 해외의 새로운 시장, 제품, 아이디어, 뉴스를 찾아내고 그것을 사내에 보고서로 공유하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자 성취였습니다. 텍스트를 좋아했고 영어 실력도 부족하지 않았기에, 중소기업에서는 제가 아니면 하기 힘든 고유 업무이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AI에게 질문만 던지면 거의 완성된 리서치 자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니까요. 은퇴한 지금 돌아보면, 과거의 그 일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구에 의해 진화된 형태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처럼 1968~1974년생인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지금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인 1차 베이비부머는 스마트폰을 겨우 다루는 연령대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은 우습죠? 하지만 AI는 아직 어색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AI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세대입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우리는 AI를 단순한 '젊은이들의 신기술'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AI 기술은 이제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닙니다. 사고의 순서를 바꾸는 기술입니다. 예전엔 무언가를 조사하려면 스스로 탐색하고 비교하며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죠. 지금은 AI에게 먼저 묻고, 그것이 신뢰할 만한지 인간의 자료로 '대조'하는 방식으로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2023년 MIT의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합니다. 사람들은 결국 누가 썼느냐보다 그냥 더 잘 쓴 글을 선호했습니다. AI가 쓴 글이라는 정보를 숨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오히려 사람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작가들조차도 이제 더 싸고 빠른 AI와 콘텐츠 품질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된 셈입니다.
저도 AI의 번역 기능을 자주 활용합니다. 한글-영문 번역의 경우 특히 감탄스럽습니다. 한글로 쓴 제 글을 영어로 번역해 보면, 제가 직접 쓴 것보다 더 유려하고 품격 있는 문장이 만들어지곤 하죠. 저로써는 그저 의미가 정확히 전달됐는지 검수만 하면 되니, 효율성 면에서도 압도적입니다.
물론 아랍어나 태국어처럼 제가 전혀 모르는 언어는 검수가 어렵긴 하지만, 그건 필요시 외부 전문가의 손을 빌리거나 그냥 믿고 처리할 수밖에 없겠죠.
글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은 AI로 그림도, 음악도, 영상도 만들 수 있는 시대입니다. 나이가 얼마든지 간에 이 중 하나쯤은 새롭게 배워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70세에 피아노를 시작해 90세에 독주회를 연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AI 시대의 은퇴란 단순한 쉼이 아니라, 또 다른 학습과 창조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질문: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글? 그림? 음악? 영상?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