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죠? William Clark(윌리엄 클라크) 교수가 1877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 총장으로 일할 당시 기타히로시마에서 발언한 문장입니다. 그런데 첫 문장에 뒤에 이어진 문장을 전부 붙이면 더 좋은 뜻이 되더군요.
“Boys, be ambitious! Be ambitious not for money or for selfish aggrandizement, not for that evanescent thing which men call fame. Be ambitious for the attainment of all that a man ought to be.”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이나 사적인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덧없는 명성이라 불리는 것을 위해서도 아니다. 인간이 마땅히 되어야 할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야망을 가져라.”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일본에서 미국의 유명 대학 교수가 발언한 내용이어서 더욱 유명한 문구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더더욱 야망을 가져라는 말은 어디서든 통하는 문장이 되었겠죠?
Ambitious. 이 단어의 어감이 저는 좋아요. 그런데 번역한 단어의 의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번역하면 야망, 야심 있는, 야심적, 포부가 큰, 대망을 가진, 등으로 쓸 수 있는데 19세기나 20세기 초에는 그렇게 사용될 수 있지만 현재 시대에는 야심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습니다.
큰 뜻을 품어라라고 해석하면 어떨까요?
미국 문화에서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비난이 같이 따라오죠. 성공은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탁월성을 의미하고, 그보다 못한 모든 것은 실패처럼 여기는 마초적인 문화가 미국 문화의 배경이죠.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은 사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것들을 모두 거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작은 루틴, 소소한 행복, 평범한 하루. 이런 것들 말이죠. 평범이라는 말 자체가 실패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유도한다고나 할까요?
우리는 대단하지 않더라도 큰 뜻을 품고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출 나거나 남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나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계속 배움을 추구하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결과에만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이 정도만 해도 Ambitious 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내가 의미를 부여한 모든 것에 노력하는 일은 다 ambitious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에게 대단해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부여하는 의미에 달린 것이란 거죠. 내가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과연 ambitious라는 단어의 느낌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늘의 질문: 여러분은 어떤 해석이 더 마음에 와닿으시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