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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은마흔여덟 Jan 09. 2025

딴엔 고군분투(13)

돈 –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 현재의 자신을 학대하며 노동하고 먹으며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게 인간이라더니, 내가 딱 그랬다. 돈 벌겠다며 돈을 좇느라 정작 중요한 건강도 잃고, 일에 대한 열정도 잃고, 집도 잃고, 필요치 않은 물건들로만 집안을 채우고 있었구나 싶었다. 쌓인 물건들이 정리되지 않은 내 머릿속 같았다. 정리되지 않아 더 들여다보기도 싫었던 정제되지 않은 미련과 후회, 욕망 덩어리들처럼 느껴졌다].

  - 이러다 벼락부자가 될지도 몰라 / 지해랑


어릴 적 내게 '인생역전'의 기준은 1억 원이었다. 주택복권 당첨금이 1억 원이었던 시절, 부모님은 종종 주택복권을 맞추며 그 돈이 얼마나 큰지 이야기해 주셨다. 집 몇 채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라니, 어린 나는 그저 상상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1억 원의 진짜 가치를 알지도 못했다. ‘인생역전’이라는 용어도 아닌 '팔자를 피게 할 돈'이라는 표현이 그저 막연한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처음 돈벌이를 시작했을 때, 내 첫 월급은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이고 월급은 몇 배로 늘어났지만, 빈털터리가 된 지금 되돌아보니 그때의 수입은 제법 안정적이고 큰 금액이었다. 그러나 퇴직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가는 오르고, 세상은 나만 빼고 점점 부자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은 중산층이 되려면 통장에 10억이 필요하고, 대출 없는 집이 있어야 한다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로또에 당첨되어 10억을 받아도 인생은 역전되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린다. 실제로 좋은 집 한 채의 가격이 10억을 넘는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나는 그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채찍질하지만, 벌어도 벌어도 끝없는 욕망의 정점에서 나는 결국 지쳐 주저앉았다.


갑작스럽게 벌이가 끊기며 잠시 주춤했지만, 욕망은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돈을 벌 때는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거의 없었지만, 막상 쓸 돈이 없어진 지금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욕망의 크기는 줄어들었지만, 돈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다.



돈과 욕망의 비교

얼마를 벌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월급이 200만 원이던 시절에는 500만 원을 바라며 살았다. 상위 10%의 부자들은 상위 1%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재벌가에서도 돈 때문에 싸움이 난다.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욕망은 계속되고, 항상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 욕망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 안정과 생존을 위한 진화적 본능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재산은 곧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의미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매력과 권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끝없는 비교와 욕망의 사슬은 우리를 만족 대신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옆집이 10억을 벌면 내 1억은 초라해 보이고, 더 많이 벌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악순환은 끝날 줄 모른다.


미디어는 중산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기준을 제시한다. 외국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이 돈과 관련 없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공정함과 신념, 프랑스에서는 외국어 구사나 사회봉사, 미국에서는 약자 보호와 불의에 대한 저항을 중산층의 덕목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부채 없는 30평 아파트, 연봉 500만 원, 통장잔고 1억 원 등 대부분 돈과 관련된 항목이 중심이다. 이로 인해 돈의 가치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사회가 되었고, 비교를 부추기는 환경도 자연스러워졌다.



비교하지 않아야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비교하며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넘쳐나는 정보와 주변의 자극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 특히 남의 재산에 관심을 두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나보다 잘 산다는 소식을 들으면 괜히 자괴감이 들고, 나보다 못 산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다지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비교는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한다. 일부러라도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퇴근길에 아버지가 사 오시던 치킨 한 마리에 온 가족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적당한 집, 따뜻한 커피 한 잔, 가끔의 외식과 여행. 이런 소소한 행복은 그리 큰돈이 들지 않는다.


만족하라는 말은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20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500만 원을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목표가 현실적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 있어야 한다. 지나친 욕심은 우리를 지치게 할 뿐이다.


비교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며, 중용의 삶을 지향하자. 어차피 저승에 가져갈 수도 없는 돈에 우리의 전부를 걸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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