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욕망 너머, 나만의 속도로
돈은 요물이다.
세상의 많은 갈등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그 뿌리는 돈인 경우가 많다. 남을 등쳐먹는 사기꾼, 가족 간의 싸움, 친구와의 돈거래, 심지어 나라 간 전쟁까지도 표면적으로는 ‘평화’나 ‘정의’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원과 이익, 즉 돈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거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 가진 자는 더 갖게 되고, 가난한 이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 속에서, 돈이 없어서 고통받거나 죽지 않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릴 적 내게 ‘인생역전’의 기준은 1억 원이었다.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1억 원이던 시절, 부모님은 가끔 복권을 사며 “이 돈이면 집 몇 채는 산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저 막연히 상상할 뿐이었다. ‘인생역전’이라는 말 대신 ‘팔자 펴는 돈’이란 표현도 들었지만, 그것의 실체는 알지 못했다.
처음으로 돈을 벌어본 건 호프집 아르바이트였다. 하루 9시간씩, 일요일도 없이 일했지만 받은 돈은 50만 원도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이지만, 그때는 처음 내 손으로 번 돈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노동의 대가, 자립, 독립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취업 후 첫 월급은 200만 원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며 월급은 몇 배로 늘어났지만, 그 크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세상은 나만 빼고 점점 부자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론은 중산층의 기준으로 통장잔고 10억, 대출 없는 집을 제시했다. 로또에 당첨되어도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렇게 나는 계속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달렸고, 어느 순간 지쳐 주저앉았다.
그렇게 번 돈이 제법 되었지만, 퇴직하고 수입이 끊기자 그 돈의 가치를 비로소 실감했다. 안정적이고 넉넉했던 그때를 뒤늦게 되돌아보게 됐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득이 없어진 지금, 오히려 사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다. 돈에 대한 갈망은 형태만 바꾸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보다 나은 삶을 원한다. 상위 10%는 상위 1%를, 재벌도 돈 때문에 싸운다. 욕망은 돈의 액수와 관계없이 커지고, 그 끝은 없다. 더 많은 재산은 더 높은 사회적 위치로, 매력과 권력으로 이어지기에 우리는 계속 더 많은 돈을 원한다. 결국 비교는 불안을 낳는다. 옆집이 10억을 벌면 내 1억은 초라해진다.
외국에서는 중산층의 기준을 돈보다 가치나 태도에서 찾는다. 영국은 공정함과 신념, 프랑스는 사회 참여와 외국어 능력, 미국은 약자 보호와 불의에 대한 저항을 중요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월급, 아파트, 예금 등 거의 모든 기준이 돈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비교하고, 더 가지려는 경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예전에 ‘국경 없는 포차’라는 프로그램에서 유럽 친구들이 서로 수입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직접 묻진 않아도 궁금해하고, 비교하게 된다. 사회 구조가 그런 만큼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비교를 멈출 수 없다면 최소한 ‘비교해도 괜찮은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평가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 둔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다. 돈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돈의 기준을 내 안에 둘 수 있다면 비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족하라’는 말은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월급 200만 원일 때 500만 원을 꿈꾸는 건 자연스럽다. 다만 그 목표가 옆자리 박 부장일 때, 그것은 비교이고 고통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처음 받은 50만 원은 액수로는 작았지만, 그 어떤 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이었다. 내 힘으로 처음 번 돈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고 살던 시절보다, 오히려 더 뿌듯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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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아버지가 사 오시던 치킨 한 마리에 온 가족이 웃던 기억이 있다. 따뜻한 커피 한 잔, 가끔의 외식과 여행, 소소한 행복에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저승 갈 때, 잘 나가는 박 부장에게도 나에게도 주어지는 공간은 고작 한 평 반. 그러니 지금 내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가면 되는 것이다.
#딴엔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