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외투 속 망설임
잔디 위 하얀 서리는 겨울이 남긴 미련
나뭇가지 끝 눈치 없이 올라온 연두색
조심스레 겨울의 마침표를 콕 찍었다
봄인 줄 알고 성급히 고개를 들었는지
추위를 비웃으며 당당히 나온 것인지
유혹 참지 못하고 제 목숨 밀어 올렸다
꽃샘추위 아직 서슬 퍼런 날 서 있는데
삶을 향해 멈추지 않는 지독한 열정
죽음도 불사한 봄의 선발대를 자처한다
여전히 계절 눈치 보며 외투 속에 숨어
순 하나 밀어 올릴 엄두조차 못 내는데
생을 위한 아름다운 용기가 나는 부럽다
추위 남은 계절 끝자락 얼어 죽을 각오로
나도 언젠가 무모한 용기 낼 수 있겠지
꽃을 품은 새순, 기어이 밀어내고 싶다.
3월 11일
과메기 비린내가 고뇌보다 강렬했다
나는 비린내가 유독 싫다. 전생에 물고기를 먹고 탈이 난 걸까. 어린 시절을 다 헤집어봐도 생선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사건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비릿한 기운만 감돌면 내 미간은 자동으로 찡그려진다.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다는 최고급 참치회도 내게는 그저 '비릴지도 모르는 수중 생물'일뿐이다. 누가 "물고기 먹을래, 육고기 먹을래?" 묻는다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입은 이미 "고기!"를 외치고 있다.
그런 내 앞에 오늘, 최종 보스급 식재료가 나타났다. 바로 과메기다. 이 녀석은 "이 정도 비릿함은 인생의 풍미로 즐겨야지"라고 주장하는 고수들의 영역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국그릇에는 장어탕이 담겨 있었다. 쉽지 않은 본가의 저녁상이었다. 어머니는 막내아들 온다고 특별히 보양 식단을 준비하신 모양이다. 나를 뺀 온 가족이 물고기를 즐기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내 유전자가 변종인 것을. 어머니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젓가락을 들었다.
배춧잎에 미역을 깔고, 초장을 듬뿍 얹고 봄동까지 얹어서 '과메기 은폐 작전'을 시도했다. 쌈이 입 안으로 들어가고 채소들을 씹는 순간, '왔구나!' 하는 식감이 느껴졌다. 과메기는 초장과 채소들의 파상공세를 뚫고 기어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 이 녀석 정말 쉽지 않다. 그 한 점의 과메기는 저녁밥을 다 먹을 때 까지도 계속 입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두부를 먹으면 두부과메기, 나물을 먹으면 나물과메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가 길어진 덕분에 노을과 가로등 조명이 묘하게 섞인 귀갓길을 걸었다. 아직은 패딩을 여미고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여느 때와 같이 사색을 시작했다. 그런데 목구멍 깊은 곳에서 트림이 나올 때마다 아까 먹은 과메기의 여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지독한 비릿함은 인생의 고뇌마저 일순간에 잊게 만들 만큼 강렬했다.
요즘 내 머릿속은 잡생각으로 가득한 '혼란의 도가니'다. 글은 막히고, 출판사 투고 결과는 '방향이 다르다'라는 단어만 복제해 오며, 경제적 압박과 부모님의 건강 걱정까지... 어느 것 하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착잡했다. 그런데 출판사 메일보다, 통장 잔고보다 당장 코끝을 자극하는 과메기의 잔향이 더 위력적이었다.
잡생각을 몰아내는 데 이보다 확실한 처방전이 또 있을까. 불구경하는 도중 싸움이 나면 싸움 구경을 한다더니, 내 근심들도 비린내만도 못한 걱정거리들이었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3월 13일
매일 같은 곳을 걷다 보니, 공원은 내게 조금씩 더 세밀한 속살을 내비친다. 계절이 서로를 밀어내는 이 시기엔 하루가 다르게 풍경의 채도가 바뀐다. 오늘은 공원 끝에 늘어선 대왕참나무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가을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낙엽을 이 녀석들은 겨울 내내 꽉 붙들고 있다가, 봄이 되어서야 하나둘 땅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대체 어떤 아쉬움이 이토록 길게 남았던 것일까.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적나라하게 드러내긴 싫지만 은연중에 눈치채 주길 원하는 모순의 연속이다. 그래서 타인의 진심을 읽으려면 오감을 동원한 '독해력'이 필요하다. 특히 부모님의 "괜찮다"는 말은 가장 유심히 살펴야 할 주의사항이다.
당시 아버지가 병환으로 고생하시느라 온 가족의 신경이 곤두서 있던 시기였다. 식탁에 마주 앉은 어머니께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는 요새 괜찮으시죠?"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요샌 괜찮아." 하지만 나는 그 '요샌'이라는 단어에 돋보기를 갖다 댔다. 역설적으로 '얼마 전까지는 좋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혔기 때문이다.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 어머니는 그제야 털어놓으셨다. "얼마 전에 뭘 잘못 먹었는지, 토하다가 피가 조금 섞여 나왔어."
당시 어머니는 스트레스와 당뇨 초입이 겹쳐 몸이 비명을 지르던 상태였다. 만약 그 짧은 부사 하나를 무심히 지나쳤다면, 지금의 평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화법은 또 달랐다. 허리는 좀 어떠시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무심한 "몰라"는, 사실 '견딜 만하니 걱정 마라'는 당신만의 서툰 다정함이었다.
세상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결코 읽어낼 수 없는 것들이 숨어 있다. 그냥 지나쳐도 그만인 것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때로는 그 사소한 이면 속에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실마리가 담겨 있기도 한다. 겨울의 미련을 봄까지 품고 있던 대왕참나무는 이제야 그 고집을 꺾고 잎을 떨쳐내는 중일까. 얼마 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어금니의 통증도 이제는 그만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초승달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옅은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3월 14일(토)
오랜만에 다 같이 영화나 보자고 제안했다. 천만 관객이 넘었다는 '왕과 사는 남자'가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 다 같이 그 영화 한 편 보자." 나의 제안에 아내가 덧붙였다. "아빠 생일이니까 가자." 웬일인지 아이도 순순히 그러자고 답했다.
사실 나는 실제 생일과 호적상 생일이 다르다. 호적상 생일은 온갖 매체에서 스팸 같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는 통에 억지로 기억하게 되지만, 진짜 생일은 자주 잊히곤 한다. 나이 먹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아 생일을 챙기지 않은 지도 오래다. 올해도 그렇게 조용히 지나갈 줄 알았는데, 아내가 상기시켜 준 덕에 내가 오늘 또 한 살을 먹었음을 알았다.
기왕 알았으니 즐겁게 영화를 보고 외식이라도 하려 했지만,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는 영화를 보며 팝콘 한 통을 다 해치우더니 점심 생각이 없다며 완강히 거부했다. 느닷없이 노래방을 가자는데 아내는 그게 또 싫단다. 아내는 내 생일이라 어떻게든 외식을 시켜보려 애썼지만, 아이는 끝내 집으로 가는 쪽을 택했다. 고작 세 식구의 의견 하나 통일하지 못한 채, 모두가 불만족을 품고 집으로 향했다. 사람 마음이 참 묘하다. 그 광경을 보며 섭섭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돈 굳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루한 가난함이 생일 기분보다 앞서는 모양이다.
오후에 러닝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 막걸리 한 병을 샀다. 저녁 메뉴가 장모님이 보내주신 '전'이기도 했지만, 잘 견뎌온 나 자신에게 작은 보상이라도 주고 싶었다. 아내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여 혼자 비웠다. "역시 장모님 전은 대단하다"며 너스레를 떨고 순식간에 해치웠는데, 그날 밤은 혹독했다. 전이 덜 데워졌던 걸까, 막걸리가 몸에 맞지 않았던 걸까. 복통 때문에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잠을 설쳤다. 생일이 뭐라고... 고작 막걸리 한 병 편히 소화하지 못할 만큼 몸이 상한 건가, 아니면 이 소소한 위로조차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였던 걸까. 씁쓸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