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일)
생일이란 자고로 내가 태어난 날과 한 해 더 멀어지는 날이다. 젊은 날의 생일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성장을 축하하는 날이지만, 나이 먹을수록 그저 또 한 해를 잘 견뎌냈음을 확인하는 날이 된다. 때로는 무탈했던 한 해를 안도하기도 하지만, 막걸리 한 병 소화하지 못하는 몸을 확인하며 서글퍼지기도 한다.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기쁘기도 하지만, 한 해 더 나이 먹은 부모님을 보며 안타깝기도 한 날. 중년의 생일은 그러하다. 기쁨과 슬픔, 서글픔이 공존하며, 또 한 해가 멀어졌구나
3월 17일(화)
대왕참나무
봄 햇살 눈부셔도 지난 꿈 못 버리고
꽃 봉오리 밀어내도 마른 잎 망설인다
여기저기 새순 틔우는 연두색 소란 속
아직도 홀로 지난가을 붙든 대왕참나무
못난 세월 버리지 못한 부끄러움인가
아쉬운 시간 떨치지 못한 고독인가
바짝 마른 잎사귀 메단 앙상한 뼈대
어느 가장의 외롭게 구겨진 뒷모습 같다
질긴 미련과 묵은 슬픔이 바스락거려도
갈색 뒤로 새봄의 아우성은 이미 터졌다
내 안의 겨울 떨궈낸 자리에 차오를 약속
나는 찬란하게 피어날 푸른 힘을 믿는다.
3월 18일
가난한 마음은 가난을 더 부추긴다.
아내의 추천으로 걸을 때마다 포인트가 쌓인다는 앱을 하나 깔았다. 휴대폰만 들고 다녀도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가 차곡차곡 쌓이는 게 신기했다. 그래봐야 만보에 100원 남짓이지만, 매일 산책과 러닝을 거르지 않는 내게는 밑져야 본전인 장사 같았다. 내친김에 비슷한 앱들을 중복으로 깔아 '커피값이라도 벌어보자'는 야무진 꿈을 꾸며 네 개의 앱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휴대폰은 시도 때도 없이 알람을 울려댔고, 적립을 받으려면 일일이 광고를 시청하거나 손가락을 놀려 조작을 해줘야 했다. 100원, 200원이 아쉬운 처지에 당당하게 말할 순 없지만, 걷고 신경 쓰는 노고에 비하면 '이게 맞나' 싶은 회의감이 밀려왔다. 결국 유독 광고가 심한 두 개는 지우고 두 개만 남겼다.
이른바 '앱테크'의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다. 걷기 뿐만 아니라 광고 시청, 퀴즈 풀기, 게임까지 동원해 소소한 수익을 약속한다. '노느니 염불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하루 몇 백 원을 모으기 위해 내 소중한 정신력과 시간을 온종일 저당 잡혀야 하는 현실이 못마땅했다.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겠지만, 내 시간이 최저시급의 1/1000도 안된다고 생각하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배가 불러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일까. 기약도 없는 글쓰기에 매달리느니 확실한 이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온종일 신경 써봐야 노동의 대가로 받는 이 몇 백 원에 당당한 의견을 낼 수 없는 내 처지다. 가난한 마음은 고작 몇 백 원의 포인트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다시 나를 질책한다. 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읽고, 한 문장이라도 더 쓰는 것이 지금 내 상황에 맞는 행동일 텐데. 이 마음은 자꾸만 나를 더 좁은 구석으로 몰아넣고 가난을 부추긴다. 시간의 무게를 새삼 느끼는 밤이다.
3월 22일(일)
부친의 머리를 깎아드리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회춘이라도 한 듯 흰머리 사이로 검은 머리가 올라온다고 하셨다. 머리털도 봄의 새싹 같은 것일까. 깎을 때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정말 안쪽에서 검은 기운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버지, 정말 젊어지시나 봐요." 그러고 보니 기억력도 조금은 나아진 게 아닌가 싶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머리를 깎은 사실조차 잊으셨던 분이, 오늘은 깎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신다. "여러모로 좋아지고 계시네요." 내 말에 어머니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거실로 나가신 뒤, 어머니로부터 며칠 전 섬망 증세가 심했던 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갑자기 상을 펴더니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음식을 내오라고 억지를 부리셨단다. 어머니가 이를 말리자, 아버지는 침대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서럽게 우셨다고 했다. "무서워서 한참을 기도했어. 오죽하면 정말 어디로 보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더라." 결국 이틀간 안정제를 드리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지셨다는 이야기였다.
회춘하는 듯한 부친의 몸은 어쩌면 정신을 갉아먹으며 얻은 활력일지도 모르겠다. 그 대가로 어머니의 흰머리만 더 늘어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처음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을 때, 의사는 이 약이 환자보다 보호자를 위한 약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에 따라 반 알을 줄지 한 알을 줄지는 보호자가 판단하라던 그 말이 차갑게 떠올랐다. 이제 다 떨어져 가는 신경안정제를 보니 모친을 위해 처방을 조금 더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마음도 모른 채 날씨는 지독하게 좋았다. 포근해진 기온에 사람들의 외투는 얇아졌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파란 속살을 드러냈다. 희망의 계절은 벌써 성큼 다가왔는데, 마음은 언제쯤 겨울에서 벗어날까 모르겠다. 그나마 눈부신 햇살 덕분에 마음 놓고 얼굴을 찌푸릴 수 있었다.
3월 25일(수)
예전의 할머니는 아프기 전 아버지처럼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던 분이었다. 작은 체구로 동에 번쩍 서해 번쩍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밭을 일구셨다. 하지만 노년의 골절이 치명적이라는 말처럼, 어느 날 다리를 다치신 뒤로 할머니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셨다. 몇 년간 방 안에서만 겨우 몸을 움직이시던 할머니는 끝내 치매를 앓으셨고, 다시는 밖의 흙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져 가더니, 언젠가부터는 누워 계시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즈음부터 할머니의 방에서는 코끝을 자극하는 알 수 없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작은집에는 늘 양초가 켜져 있었다. 자주 씻지 못해 배어든 생활의 냄새였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마치 몸의 세포들이 하나둘 생의 불을 끄며 보내는 마지막 신호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 미묘한 냄새가 얼마 전 본가에서 느껴졌다. 어머니에게는 그저 환기가 좀 필요하겠다며 에둘러 말했지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불길한 걱정까지 내보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문득 찾아왔다.
부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내 기억이 그저 기우이길 바란다. 그저 허리가 불편해 자주 씻지 못해 남은 흔적일 뿐이라고, 더 자주 씻겨드리면 사라질 냄새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그래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주 일요일에 시골에 함께 갈 수 있다면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그토록 원하시던, 할아버지 산소에 모시고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