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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가방을 비우고 별을 보다

- 혼돈을 마주하는 연습

by 케빈은마흔여덟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기쁨은 나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켰고, 그 변화는 파도를 만나야만 가능했다. 파도를 거스르고 이전의 나를 고집하면 재난을 피할 길이 없지만, 파도에 몸을 맡기며 즐기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길로 이어졌다]

- 난생처음 시골살이/ 은는이가




세상이 흉흉해서일까. 나와 아내는 아이의 등굣길이 늘 걱정이다. 몇백 미터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대였다. 그때는 그런 시대라는 자각조차 없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시기였을 것이다. 다만 그 위험이 체감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오늘날처럼 자유와 인권이 강조되지 않았고, 사건·사고가 곧바로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금의 걱정은 우리 부부의 과잉된 불안도 한몫했겠지만.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조금 일찍 가야 한다고 했다. 평소엔 아파트 단지에서 친구들과 함께 등교했는데, 그날은 준비물이 있어 혼자 먼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 사서 걱정이다.

“꼭 일찍 가야 하니?”

“왜 하필 너야?”

“친구들과 같이 가면 안 되겠니?”

질문이 쏟아졌다. 우리 걱정이 신경 쓰였는지, 아이는 데려다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 나도 부랴부랴 씻고 준비를 마쳤다. 밖으로 나가며 아이의 가방을 들어보니 어이쿠, 내가 들어도 꽤 무거웠다.

“이걸 네가 어떻게 들고 다니냐?” 묻자, 책 때문이란다.

“이렇게 무거우면 키 안 큰다. 안 그래도 작은데 더 안 클까 봐 걱정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늘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녔다. 학창 시절엔 사물함조차 제대로 없었다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내 가방은 늘 묵직했다. 날이 맑아도 비가 올까 봐 챙긴 우산, 배터리가 나갈까 봐 넣어둔 보조배터리와 충전기, 읽지도 않는 책들, 출퇴근길에 과연 필요한지조차 모를 자잘한 물건들까지.


남들은 지갑 하나 달랑 들고 다니는데, 나는 항상 ‘혹시 몰라서’ 이것저것 챙겼다. 지나고 나니, 걱정이 또 다른 걱정을 낳고,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 삶을 무겁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다 쓴 물건조차 “혹시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 하며 버리지 못했던 나. 적은 가능성조차 넘기지 못하는 마음은 어쩌면 결벽에 가까웠다.


그 결벽은 물건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막내로 자라며 자연스레 몸에 밴 생존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이자 좋은 후배, 동시에 좋은 선배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듯,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내가 그 안에서 중재자가 되려 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고, 다툼을 조율하려 애쓰다가 결국 내 마음에 상처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 드라마에서조차 긴장된 장면을 못 견디고 채널을 돌리는 내가, 현실의 갈등 앞에서는 더 오지랖을 떨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건 진심이었고, 나는 혼돈이 싫었다. 불편함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힘들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썼다.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시키기 위해 마음속에 혼돈을 품어야 한다.”

You must have chaos within you to give birth to a dancing star.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는, 결국 알 수 없는 혼돈의 순간 ‘빅뱅’에서 비롯되었다. 생물의 진화는 돌연변이라는 불확실한 변수 덕분에 가능했고, 민주주의는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며 발전해 왔다. 심지어 고요한 호수 아래조차 먹고 먹히는 생태계가 존재한다. 결국, 고통이나 혼란 없이 탄생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동안 혼돈은 없어야 하는 상태라고 믿었다. 삐뚤어진 물건은 제자리에 둬야 직성이 풀렸고, 갈등은 최대한 빨리 봉합하려 했다. 문제가 생기면 재빨리 정리하고, 누군가 다투기라도 하면 서둘러 화해를 유도하려 애썼다.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상태를 추구했고, 그렇지 못한 상태에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혼돈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창조를 위한 필수 조건. 균형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must have(필수)다.

질서와 혼돈의 균형은 단지 이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삶에 반드시 필요한 원리다. 혼돈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혼란하면서도 불안했던 마음에 여유가 스며든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무게추를 조금 움직여본다.


모든 것을 해결하려 애쓰지 않는다. 방이 어질러져 있어도, 삐뚤어진 물건이 그대로 있어도 그냥 두는 날이 많아졌다. 정리정돈을 강요하지 않으니 아이를 다그칠 일도 줄었다. 오히려 아이의 창조력에 도움이 된다고 믿으며, 나 자신에게도 한결 너그러워졌다.


세상은 여전히 흉흉하다. 최근 뉴스엔 ‘계엄’, ‘내란’ 같은 단어들이 떠돌고 있다. 내 마음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때때로 “저런 사람들은 씨를 말려야 한다”는 분노가 치밀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분노가 마음을 갉아먹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다.


정돈된 마음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지만, 다만 지나치면 피곤할 뿐이다. 때론 내려놓고 혼돈을 마주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정돈된 상태라면, 일부러라도 흐트러뜨리는 것이 균형을 되돌리는 방법일 수 있다. 이유 없이 가구를 옮기고, 배치를 바꾸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행동들, 그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일이란 걸 이젠 알았다.


꼭 필요할 줄 알고 준비했던 많은 물건들은 결국 내 짐이 되어 어깨를 누르는 시기가 온다.

어차피 세상은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은 어긋나고, 계획은 틀어진다. 그러니 모든 것이 완벽히 정돈된 상태란 애당초 존재하기 어렵다.

마음속 불안 가방도 적당히 좀 비워야겠다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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