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2) 그 핑계는 내 조바심이다

딴엔 고군분투 - 부모님

by 케빈은마흔여덟

어릴 때 부모님은 거대한 산이다. 그런데 내가 커지는 것인지, 부모님이 작아지는 것인지. 세월이 흐르면 그 산이 예전처럼 그리 높게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를 더 깊이 이해할 즈음엔, 더 이상 의지하기 어려운 부모님만 남아 있다. 약해진 모습 이거나, 어쩌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가족이 되어 있거나. 언젠가부터 부모님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조바심이 난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내 마음 때문인지. 대부도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밥을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으면 건망증이고, 밥을 먹은 사실 자체를 잊으면 치매다."

언젠가 들었던 이 말처럼, 아버지는 이제 먹었던 사실을 자주 잊는다.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드신다. 그럴 때면 다음 날 혈당이 훌쩍 올라간다. 혼자서는 외출이 어려워졌고, 이렇게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야만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깊은 한숨이 들려온다. 한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아버지다.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받아주는 곳도,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다’ 라며 자주 한탄하신다. 우울감이 뇌 건강에 좋지 않다는데, 취미도 없는 노인이 매일 한숨만 쉬고 있으니 가족들은 덩달아 걱정이다.


어머니도 집에서 꼼짝없다.

아버지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유일한 동무가 되어버렸다. 다니던 교회도 못 가고 집에만 갇혀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얼마 전 김장을 담근 뒤, 그 피로가 대상포진으로 나타났다.

"이젠 딱쟁이가 져서 다 나아간다."

어머니의 말에는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사는 게 다 이런 거지’라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


평소 효도라고 할 만한 일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저 부모님이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살자는 신조로 살았다. 그래서 "알아서 하겠다"며 무심함을 정당화했고, 분가 후엔 왕래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뇌경색 판정을 받던 날, ‘마음의 준비를 하라’라는 의사의 말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내 개똥철학이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나들이 계획은 어제 즉흥적으로 세웠다. 아버지가 많이 걷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고, "그래도 너희들 차 타고 나가서 밥 먹는 걸 좋아하신다"는 어머니의 말도 무겁게 한몫했다.

차량 수리를 핑계 삼아, "점심 먹으러 가자"며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다.


처음부터 대부도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최근에는 덕평휴게소를 자주 갔었다. 먹거리도 많고, 잘 꾸며진 휴게소 공원이 아버지의 산책 코스로 좋았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갑자기 바다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예전 가족들과의 기억도 떠올릴 겸, 시화달전망대를 들러서 근처에 있는 칼국수를 먹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말수도 별로 없는 어른들이라서 차 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2시 방향 좌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만 혼자 떠드는 사이, 대부도 인근에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엔 칼국수와 파전이다. 날씨도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무료 막걸리로 유명한 칼국숫집에서 바지락 칼국수 두 개와 파전을 시켰다.

"막걸리 한잔 드릴까요?"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단호할 줄 알았던 아버지의 반응이 의외였다


한창 건축 일을 하실 때 소주를 냉면 대접으로 드셨던 분이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도 소주를 드셨을 만큼 애주가다. 그런데 당신도 술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병을 앓은 후에는 술을 찾은 적이 없으셨다. 그런 아버지의 봉인을 풀었던 것일까. 입술을 쩝쩝 다시는 걸 보니 괜히 말을 꺼냈나 싶었다.


뇌에는 술이 담배보다 더 좋지 않다고 들었다.

당장 한 잔 마신다고 큰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내 책임일 것 같아 결국 말렸다. 다음 진료 때 가끔 한잔 정도는 괜찮은지 의사에게 물어봐야겠다.(당연히 안된다고 하겠지만..)


"아무거나 먹자"라고 하시더니,

상상 속 막걸리와 함께한 과묵한 식사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지락 하나, 오징어 한 조각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우고, 우리는 달빛전망대 휴게소로 향했다. 한산한 외부의 모습과 달리 전망대 안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좋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려 했지만, 창가 자리는 이미 연인들과 어르신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옆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따뜻한 라테에 설탕을 타서 드시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달콤해졌다.

부모님은 식당이나 휴게소에서 늘 자판기 커피만 드셨다. 커피 맛도 모르고, 양이 많다며 투덜대셨지만, 사실은 몇천 원 아껴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커피 안 드신다고 하셨을 텐데, 아들이 사준 커피라서 인지 아니면 이제 커피 맛을 알아서인지 오늘은 맛있다고 하신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 내내 어두웠던 마음이 백색 설탕처럼 채워졌다. 창 너머로 보이는 전망대엔, 아까 내리던 비가 함박눈으로 바뀌어 세상을 온통 하얗게 흩뿌리고 있었다.


주말도 없이 일했던 목수의 몸은 이제 겨우 일상을 유지하는 정도다. 불과 두 해 전만 해도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온양온천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이제 방향이 헷갈린다며 지하철을 포기하셨다. 사람 욕심,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을 때만 해도 그저 ‘살아만 계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큰 고비를 넘기고 나니 예전처럼 혼자 걸으며 온양온천을 다니셨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백수라는 사실도 숨기고 있어서 제약이 많다. 안 그래도 걱정이 많은 부모님께 더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다. 내 시간은 많아졌지만 아버지의 시간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챙긴다는 ‘핑계’로 저녁을 먹으러 가고, 주말에 함께 산책을 나서는 것도 단순한 핑계가 아니다.


그 핑계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내 조바심일지도 모르겠다.


#고군분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