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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은마흔여덟 Jan 02. 2025

딴엔 고군분투(3)

아이 - 키우는데 정답이 있나?

[어린 새처럼 입만 뻐금뻐금 벌리며 먹이를 받아먹던 아이가 식탁에 앉아 밥 한 그릇을 비워내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은지, 식탐마저도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다. 씩씩하게 한 수저, 한 수저 밥을 제 입에 퍼 나르는 아이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부모는 뱃속에 삶의 용기를 담는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윤용인


아이를 낳아라, 낳지 말아라부터 해서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 하고, 저러면 안 된다는 훈수꾼들이 넘쳐난다. 참고 자료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참고 자료가 유독 내 아이에게만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변수는 너무 많고,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건강상 아무 이유도 없는데도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았다. 아이를 천천히 갖자고 동의했지만, 그렇게 늦어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고, 더 늦기 전에 의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인공수정도 단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시험관아기가 인공수정보다 더 고도화된 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공수정이 여자 입장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골방에 들어가 혼자 영상을 보며 정자를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검사 포함, 이 어색함이 서너 번 반복되어 익숙해질 무렵, 결혼 6년 차에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몇 배나 힘들었을 테니,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첫 번째 인공수정이 실패했을 무렵, 느닷없이 대전으로 발령이 났다. 부부의 첫 지역 생활이었기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데 가기 전 걱정과는 달리, 서울에서 받았던 분주한 스트레스가 대전의 맑은 공기와 보문산의 정기를 만나 달콤한 디저트로(stressed => desserts) 바뀌었다. 정확한 이유는 삼신할머니나 알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때 임신 성공의 이유를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의학의 힘도 있었겠지만,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지금의 아이를 보기 이전에 한 번, 본 이후에 한 번, 조기 유산을 겪었다. 온전한 생명이 되지 못한 두 번의 수정체는 우리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하나만 잘 키우자고 합의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둘째를 보라고 하신다. 옛날에는 다들 그랬으니, 셋은 낳아야 끝났을 이야기라고 여기며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아이가 걸음마를 아장아장 걸을 때였다. 또박또박 말하지는 못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있을 때였다. 어느 날 회사에서 일하는 중에 긴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건전지를 삼켰다고. 너무 놀라 일단 병원부터 가라고 말하고, 회사에 사정을 전한 뒤 병원으로 향했다.

건전지라니... 이동 중 인터넷을 찾아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식도에 걸리거나 위장에 붙으면 전극 때문에 장기에 천공이 생길 수도 있고, 심지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은 꽉 막힌 도로 마냥 더디게 갔다..


병원에 도착해 의사의 설명을 들으니 상황은 심각했다. 다행히 식도를 통과해 식도는 괜찮았지만, 음식물에 가려져 위치가 보이지 않았고, 음식물이 소화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태였다. 위에서 장으로 넘어갔다면 변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거나, 수술로 꺼내야 한다고 했다. 청천벽력이란 말이 실감되었다.


걱정으로 미칠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몇 시간이 흐른 뒤, 내시경으로 건전지를 꺼냈다. 건전지와 함께 몇 시간 만에 생긴 위의 염증 사진을 번갈아 보며 우리 부부는 눌러왔던 걱정을 터뜨려 펑펑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 건전지는 자주 쓰지 않던 아이 체온계에서 나왔다. 서랍 안쪽, 케이스에 들어있던 체온계를 아이가 서랍을 열어 꺼내고, 케이스를 열고, 뒷부분 건전지 넣는 곳을 열어 납작한 건전지를 꺼내 입에 물고 빨다가 삼킨 것이었다.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심각함을 인지했는지, 엄마를 불러 "납작하고 동그란 걸 꿀꺽 삼켰다"라고 인실직고했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시절, 열고, 만지고, 뜯고, 삼키고 했던 것이다. 고사리 손으로 꽁꽁 숨겨져 있던 건전지를 꺼낸 것도 신기했지만, 살고자 했던 본능으로 엄마를 부른 것도 천운이었다. 만약 삼킨 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살고자 했던 본능과 살게 해 준 천운이 고마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첫째는 업어 키우고, 둘째는 지켜보며, 셋째는 방생한다고 한다. 하나둘 늘다 보면 지친 부모는 타협을 하게 되고, 그게 셋째쯤 되어야 비로소 방생이 가능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운 선배가 한 웃긴 조언도 떠오른다. "둘 키우기 힘들면 하나 더 낳아봐. 그럼 둘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을 거야." 사촌 형도 말했다. "애들은 넘어지고 상처 나면서 크는 거니 그냥 내버려 둬."


힘들게 가진 첫째여서일까. 나는 아직 도자기 다루듯 소중히 키우고 있다. 가능한 한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방생하고 싶은 마음보다 크다. 우리 아이를 제일 잘 아는 건 우리 부부이니, 우리의 방식대로 애지중지 키우기로 했다. 언젠가 아이가 도른 사춘기를 맞아 엇나간다면, 그때 위급했던 건전지 사건을 떠올리며 환기시킬 것이다.


아이를 내 몸같이 사랑하면 좋은 아버지가 되는 줄 알았다는 윤용인 작가는 혹독한 사춘기를 겪으며 아버지로 성장했다고 한다. 아이 키우는 데 정답이 있을 리 없다. 할 수 있는 건 해주고, 안 되는 건 억지로 부여잡기보다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 자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나는 그저 아이가 밥 잘 먹고, 건강하게만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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