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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쓰는 사람의 탈피기

- 손때와 껍질

by 케빈은마흔여덟

창작의 고통이란 이런 걸까. 이 정도 슬럼프에 벌써 고통이란 말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매일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되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의심 들고,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새 또 다른 강박처럼 느껴진다.

“쓴 지 얼마나 됐다고, 네가 벌써 고통을 운운해?”

우습지도 않은 농담을 혼자 중얼거렸다.


여름을 알리는 것 같은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밖은 푸릇함이 더 선명해지는데, 내 마음은 하늘처럼 먹구름이다. 불현듯 예전에 키우던 애완가재가 떠올랐다.


미니, 파인, 애플

후배의 권유로 세 마리의 가재를 받았다. 애완동물은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좋다는 말에 거절하지 않았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세 마리 중, 유독 작은 녀석이 있어서 ‘미니’라 이름 붙였고, 나머지 두 마리는 어항에 들어 있던 파인애플 모양의 장식을 보고 ‘파인’이와 ‘애플’이로 지었다.

하지만 정 붙일 틈도 없이, 어항 물을 갈다 ‘미니’를 먼저 떠나보냈다. 비록 작은 생명이었지만, 가족 모두가 가재의 죽음을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가재는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 탈피는 그 자체로 신비한 장면이었다. 평소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지내는데, 탈피는 꼭 밤에 이루어졌다. 인간의 눈을 피하려는 습성 때문일 테다. 탈피를 하고 나면 가재는 자신의 허물을 먹는다. 영양 보충을 하고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탈피를 감추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어항 귀퉁이에 허옇게 너덜너덜한 껍데기가 뒹굴고 있는 걸 보면, 지난밤의 고된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탈피는 가재에게 인고의 시간이다. 딱딱한 껍질은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만든다. 성장하려면 반드시 그것을 벗어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기에, 때로는 탈피 도중에 죽기도 한다. 겨우 빠져나온다 해도, 연한 새 살은 위험하다. 껍질이 단단해지기 전 공격을 받으면, 그대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 떠난 ‘파인’이는 탈피 직후 형제의 공격을 받아 또 허망하게 떠났다. 가재는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주기적으로 탈피를 하며 자란다. 그래야 더 커지고, 더 단단해진다.


우리의 성장도 탈피와 닮았다. 아이 시절, 면역력이 약해 작은 감기에도 40도 가까운 열이 오르곤 했다. 넘어지고, 울고, 상처가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몸은 점점 강해졌다. 때로는 건전지 같은 걸 삼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일도 더러 있다. 작은 병에도 크게 앓던 시절을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면역력이 생겼다.


학생 때는 공부가 그 인고의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수학은 포기자가 많은 대표적인 관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었다. 수학을 공부한다면 누구나 한 번쯤 펼쳐보는 책. 두껍고, 글씨는 깨알 같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책을 많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은 눈에 띄게 달랐다.


정석책을 자주 본 학생의 책은 덮었을 때 옆면에 손때가 묻어 있었다. 특히 많이 본 부분은 더 진하고, 더 넓었다. 그 흔적은 어려운 내용을 붙잡고 오래 버텼다는 증거였다. 반면 수포자의 책은 앞부분에서 손때가 멈춰 있었다. 그 손때는 인고의 흔적이자,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한 증표였다. 좋은 학교에 가고 싶다면, 그만큼의 시간을 견디고 손때를 묻혀야 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내가 맡았던 지점은 1년도 채 안 되어 폐점했다. 맡고 있던 상품은 축소됐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그간 쌓아온 경력을 내려놓고 전혀 새로운 업무에 투입됐다. 익숙하던 일을 뒤로하고 신입사원처럼 다시 시작하자, 모든 게 서툴렀다. 낯설고 버벅대는 일상 속에서, 우울감은 점점 깊어졌다. 결국 나는 탈피에 실패했다.


생각해 보면, 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앞에 벽이 나타났다. 학창 시절에도, 회사 생활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적성이 안 맞는 건 아닐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뒤따랐다. 하지만 묵묵히 견디다 보면 어느새 손에 익었고, 전보다 한 단계 올라선 나를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고, 다시금 인고의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탈피란, 결국 한 계단 올라섰다는 증거지만, 계속 성장하려면 또다시 다음 탈피를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건 언제나 어렵다. 새 상품, 새 법령, 새 시스템. 그 앞에서 늘 낯설고 불편하다. 그래서 익숙한 방식에 머무르고 싶어진다. 하지만 익숙함은 종종 한계로 되돌아온다.

아무리 빠르게 독수리 타법을 쳐도, 다섯 손가락을 활용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공학용 계산기가 아무리 좋아도, 방대한 양을 다루는 엑셀의 성능은 넘보지 못한다. 새로움이 무조건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업데이트가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듯,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움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때 내가 탈피하지 못한 건, 탈피를 위한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고, 새로움이 익숙해지기 전, 그 불편하고 힘든 시간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삶은 탈피의 연속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진보하니 기존에 머무는 삶은 결국 탈피하지 못한 가재처럼 제자리에 머물 뿐이다. 수학의 정석 책처럼, 손때가 묻을 만큼 오래 붙잡아야 비로소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다. 성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시간을 버텨낼 체력과 인내가 있을 때, 더 큰 나로 다시 태어난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페달을 밟아야 하듯, 자책할 시간에 뭐라도 써보는 것이 낫다.


지금은 탈피 중, 고통을 버티는 동안 나는 자라고 있다.


#딴엔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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