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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창작의 시대를 묻다

저작권, 다시 써야 할 시간

by 케빈은마흔여덟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마음에 남는 표현들을 노트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에도, 예쁜 문장이나 인상 깊은 표현을 발견하면 메모해 두었다. 그렇게 쌓인 노트와 메모는 내 글의 양분이 되었다.


내가 글을 쓸 때 떠오르는 표현들은 대부분 선배 작가들의 문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표현을 만들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읽고 들었던 문장들을 머릿속에서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글을 탄생시킨다. 음악도, 영화도, 그림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창작은 늘 기존의 것들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기에 창작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유통과 소비 과정에서 발생되는 무분별한 복사와 복제도 문제다.


어린 시절, 길거리에는 복제된 카세트테이프가 흔했다. 유명 가수의 음반을 그대로 복제한 것도 있었지만, 인기곡들을 모아 하나의 테이프에 담은 '최신가요' 테이프도 많았다. 하나만 사면 여러 음반을 살 필요가 없었기에, 용돈을 모아 자주 샀다. 당시에는 이게 합법인지 불법인지도 잘 몰랐고, 가격도 정식 앨범보다 훨씬 저렴했으니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가끔은 돈이 없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직접 테이프에 녹음해 친구들과 돌려 듣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전부 저작권 침해다.


영화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집에 VCR(비디오 플레이어)을 갖춘 가정이 많지 않았고, 영화 복사를 쉽게 할 수 있는 장비도 흔치 않았다. 그래서 영화는 주로 비디오 대여점에서 정식 테이프를 빌려 보는 정도였다. 복제보다는 대여를 통한 소비가 일반적이었던 셈이다. 이 시기 사회 분위기는 창작자에 대한 존중보다는, 소비자 편의가 우선이었다. 복사해서 지인끼리 돌려보는 문화는 특별한 죄의식 없이 퍼져 있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복사와 복제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MP3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영화 CD를 구웠다. 당시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확립되지 않았고, '다운로드' 자체가 일종의 문화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디지털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관련 법이 강화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불법 다운로드, 불법 복제 CD 등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저작권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최초의 저작권법은 1709년 영국의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이다. 이전까지는 출판사나 인쇄업자가 권리를 독점했지만, 이 법은 저작자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첫 법적 제도였다.

세계적으로 봐도 20세기 중반까지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콘텐츠의 공정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국제적 협약(예: 베른협약 강화, WIPO 저작권조약 등)은 저작권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 변화는 단순히 창작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와 제작자, 유통자, 소비자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였다. 또한 문화 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저작권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창작물의 유통 구조와 사회적 환경이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왔다.


최초 저작권법이 글과 그림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는 인쇄술의 발달, 문해율 증가, 출판물 유통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누가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느냐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면서 복제는 더욱 쉬워졌고, 시장 구조는 또 한 번 바뀌었다. 과거에는 아티스트보다는 제작자(출판사, 음반사)가 주도권을 쥐었지만, 복제가 쉬워지자 유통자(플랫폼, 유통업자)가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복제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저작권법은 점점 강화되어 왔다.


결국 저작권법은 시대 변화에 맞춰 진화해 온 사회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AI가 등장했다. AI는 이제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수준을 넘어, 창작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문제는, AI가 어디서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 기존 창작물에서 어떤 부분을 발췌해 사용했는지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원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창작물인지도 판별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AI가 만든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할까? 최근 지브리 애니메이션 만들기가 유행이다. 지브리 사진의 저작권은 AI를 만든 회사일까? 아니면 AI를 활용한 개인? 그것도 아니면 애니메이션 작가일까? 이 질문은 아직 명확한 해답이 없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창작자·제작자·유통자·소비자 사이의 공정한 균형을 맞추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디지털 시장이 사회의 토대가 된 지금, AI 시장의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최초 저작권법이 인쇄술과 문해율의 변화를 반영했듯, 이제는 AI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저작권 체계가 필요하다.


핵심은 단순하다.

"무분별한 복제를 막고, 복제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

큰 틀에서 저작물 접근에 대한 제한 또는 라이선스 시스템 개발, AI가 활용한 데이터 출처 기록과 사용 내역 공개, 생성된 2차 창작물에서 수익이 발생할 경우, 원저작자와 AI 사용자(또는 개발자) 간 수익 공유 방법 등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체계가 없다면, AI는 창작자 권리를 침해하는 '복제기'가 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제대로 된 체계가 갖춰진다면 AI는 인간 창작자와 함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갈 또 다른 창작자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저작권법을 다시 정비할 절호의 시기다. AI가 창작의 주체가 되어가는 이 시기에, 우리는 저작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새롭게 구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나저나, 나도 하루빨리 내 글에 대해 저작권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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