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넓은 책상, 화면이 큰 아이맥, 와콤 펜과 태블릿, 형형색색의 필기구와 포스트잇, 책상마다 놓여 있는 레어(rare)하고 스타일리시한 장식물과 최신의 잡지들... 이러한 모습은 아마 여러분이 디자이너의 작업 공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일 것입니다. 물론 모든 디자이너가 이러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디자이너들이 더 나은 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일부 공간일 뿐 전체는 아닙니다.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공간 혹은 환경을 이해하려면, 디자이너들의 일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요. 디자이너의 일은 크게 영감을 받는 일과 그 영감을 실체화시키는 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영감을 받는 일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눈에 잘 띄지 않고, 실체화시키는 일은 적극적이고 그 행위가 잘 드러나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앞에서 열거했던 디자이너의 공간 오브제들의 존재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체화시키는 작업의 가시성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감의 실체화에 최적화된 공간을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가치를 담아내는 제품과 서비스를 창작하기 위한 영감을 얻는 디자이너의 일은 사고하는 행위입니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의 내적으로 이뤄지는 일이고, 눈과 귀로 자극받아, 머리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디자인 작업의 시작입니다. 반면, 영감을 실체화하는 일은 손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위입니다. 디자이너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손에 잡히는 실체로 만들어 내는 일인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디자이너들에겐 두 개의 공간 혹은 환경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디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디자이너의 눈과 귀를 자극받고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첫 번째 공간 혹은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인 업이 결국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라고 정의한다면,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진짜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직접 듣고 보아야 문제 해결의 단서를 발견하고 이를 실체화시키는 행위를 통해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앞에서 열거했던 화려하고 세련된 오브제들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모습이라고 정의하기도 어렵죠. 왜냐하면 모든 고객들의 공간 혹은 환경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두 번째, 공간은 영감의 실체화가 이뤄지는 공간 혹은 환경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정관념으로 가지고 있는 화려한 스튜디오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자이너들의 창작과 수정의 작업이 반복되고, 최종 디자인 결과물을 얻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수반되는 행위의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행해지는 일들은 책상과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무 행위와는 많이 다르며 디자이너들의 머릿속 구상을 충분히 실체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넓이를 요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두 공간 혹은 환경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기업의 기획자, 마케터, 디자이너를 포함한 고객 가치를 창출해야 할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공간 및 환경인 것이죠. 이들 중에서도 고객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는 행위가 중요한 디자이너들에게는 반드시 고객 현장 공간을 제공받거나 찾아가야 합니다. 아쉽게도 많은 디자이너들은 고객 현장에 나가지 않거나 디자인 결과물을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구현 공간에 머무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정말 나은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고객 현장으로 나가서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을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드립니다.
정리해보면,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은 눈과 귀 그리고 발과 다리를 이용해서 작업하는 외부의 고객 현장, 즉 영감 공간 혹은 환경(Inspiration Space)과 눈과 손을 이용해서 작업하는 내부의 스튜디오, 즉 구현 공간 혹은 환경(Implemention Space)으로 구분되고 더 나은 디자인 결과물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공간 환경이 모두 충분히 갖춰져야 합니다.
(사진 #1) 고객 현장의 한 편의점에서 발견한 무인 결제기의 모습입니다. 결제 절차와 정보를 나타내는 단말기가 귀여운 곰의 캐릭터로 장식되어 있네요. 디자이너는 어디서 고객의 어떤 문제를 발견해서 왜 이러한 디자인을 했을까요? 편의점의 이용하는 고객들은 이 결제기를 통해 어떤 문제가 해결되었을까요?
(사진 #2) 서울의 한 거리 풍경입니다. 고층 빌딩 숲과 낡은 공구상이 밀집해 있는 거리에 자리한 힙한 술집과 음식점들의 간판들이 인상적이네요. 요즘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하는데요. 화려하고 세련된 간판을 구경하는 재미는 물론이고 생생한 고객의 모습을 통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3) 거리에서 발견한 어떤 우편함의 모습입니다. 우체통과 달리 편지를 보내기 위한 임시함은 아니고, 시민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달래주기 위한 목적의 우편함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고민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될 수 있는 설루션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무실에 틀어박혀서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는 자극입니다.
+손의 공간에 집중하면 쟁이가 되고, 눈과 귀의 공간에도 집중하면 창조자가 됩니다.
+디자인 출발은 고객 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