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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Apr 02. 2022

곡성 워킹홀리데이

프롤로그-기록의 시대

지난 3월부로 곡성'군민'이 되었고 곡성에 위취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 세계를 누비면서 파리를 선망하고, 뉴욕을 동경하고, 서울에 머물고자 했던 23살 청년이 시골 곡성으로 오게 된 이유와 몸으로 살아가는 나날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기록이라는 행위와 그 결과물이 더욱 중요해진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과 앱을 통해 기록을 할 수 있는 매체들이 다양해지고 접근성이 편리해져서 그런 것일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시대에 살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두가 비슷비슷해지는 시점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기 위해서일까?


매일 밤 조용히 일기를 쓰며 하루를 조용히 되돌아보는 사색적 기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전달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례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들은 '모베러웍스' '영감노트'이다. 전자는 회사 퇴사를 결정하게 된 시점부터 창업을 선택하게 된 배경, 준비하면서 마주친 문제들, 이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 그리고 소비자에게 실제적인 가치를 주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유튜브에 영상으로 기록했고 자연스레 하나의 팬덤을 구축시켰다. 후자는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에서 얻은 영감을 영상과 글로써 기록하며 '이승희=영감'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들은 모두 지금과 같은 결과를 기대하거나 혹은 이를 위해서 기록을 시작하지 않았다. 꾸준히(가장 중요하면서 기록의 모든 것이라 믿는다) 하나씩 쌓아가다 보니 그들만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었고 이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들의 팬이 되었다.


이전에도 기록을 해왔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난 다음 과거를 회상하며 기록했고, 남들과 함께 공유하기보다는 혼자만의 공간에 모아두었다. '요즘 너무 정신이 없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바쁘다'라는 핑계들로 미루어 왔는데 이번에는 조금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활어처럼 팔딱이는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오롯이 공유하고 싶다.


태어나서 처음 곡성에 방문한 후 이곳에서 일하며 살아봐야겠다는 선택을 내리기까지 1주일이 채 안 걸렸다.  김탁환 소설가분이 곡성과 미실란(현재 근무하는 회사)을 관찰하고 기록해두신 덕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하고자 하는 회사가 어떤 곳인지, 그곳의 대표는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은 이 회사를 왜 창업했고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굉장히 수월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온몸으로 느껴보았듯 기록을 통해 오상현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살아가면서 했던 선택들을 기록하고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삶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했고, 그렇게 되었는지. 이에 어떤 선택을 했고 그 뒤에 깔린 배경은 무엇인지. 이후 어떤 실행 결과를 마주했고 그것이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마치 바둑기사들이 대국 후 순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모든 수를 다시 되짚어가면서 자신들의 선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평가해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우리들의 삶에도 필수과정이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앞으로의 글들은 크게 외부에 건네주고 내부에 담아내는 두 갈래의 가치를 지닐 듯하다. 원래 살던 대구의 만촌'동'보다도 적은 숫자의 사람이 사는 곡성.  지역 소멸, 지방 소멸, 인구 소멸, 고령화등 모든 악재를 마주하고 있는 지역 사회를 청년이 직접 살면서 담아내 보고자 한다. 또한 귀촌에 대한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적 묘사가 아닌 실제로 몸으로 살아내는 현실은 무엇이 다른지 등 현장에서만 가능한 생생함을 전달하고 싶다.


건강하고 맛있는 쌀문화.


현재 일하는 미실란은 벼 종자 연구부터 유기농 벼농사, 수확, 가공, 식당까지 소위 말하는 6차 산업의 최전선에 있다. 이곳에서 어릴 적부터 꿈꿔온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라'를 직접 부딪히면서 단순히 꿈으로 남기는 것이 아닌 현실적 감각을 더하고 싶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정말 좋아하고 흥미 있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물어보며 가지치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 시간과 공간을 통해 한 소년이 청년이 될 수 있기를.


쉬지 말고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다산 정약용-



-소설가 김탁환 작가분의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에 곡성과 미실란에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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