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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Apr 30. 2022

팀장님이 없었다면 입사 한 달만에 퇴사했다

<4화- 사람도 없이 사업은 무슨 사업>


다시는 주방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이었다. 사수 혹은 선배라고 불리며 앞에서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끌어준다는 것이 모든 것을 입안에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고 있을 때 옆에서 톡톡 건드려 고개를 들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건의 발달은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카페에 음료 메뉴만 있고 커피 혹은 차와 함께 먹을 간단한 디저트가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요리를 아주 조금이라고도 전공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전공의 유무가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접근 메커니즘을 알고 있느냐의 차이로 바라본다) 나의 머릿속 생각 회로가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 >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이 있는가?’> '내가 아는 지식과 쌓여있는 기술이 없다' > ‘그렇다면 이걸 배우고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멘붕. 이곳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잘 맞으면서도 높은 퀄리티의 디저트를 만들고 싶다는 이상과 어떻게 접근하는지 조차 모르는 현실의 차이에서 또다시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일했던 주방에서도 똑같이 느꼈다. 오픈한 지 한 달 정도 된 분주한 시점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접 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였기에 맥주와 음식과의 페어링부터 어떻게 하면 맥주를 손님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까지,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손을 놓아버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혼자만 끙끙 앓고 있다가는 똑같은 결과를 마주할 것 같았다. 주변에 이미 오랜 회사생활을 경험한 형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시스템이 있는 회사는 이렇게 고민하게 하지 않게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시스템이 안 잡혀 있는 회사는 개인이 하기 나름인데 분위기가 개인이 하는 것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보수적인 회사라던가 방향성이나 상황이 달라서 지원해주지 못하는 회사들도 더러 있지. 이게 ‘식당도 카페도 시스템이 없다’ 네 입장에서는 배울 점이 없어 보여서 아쉬울 수 있지만 오히려 네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입장에서는 ‘내 돈'들이지 않고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지’


봉황 같다. 모두가 실체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정말 맞는 말이고 요즘도 벽에 부딪힐 때마다 '아무것도 아니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계속 되뇌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의 부재에서 허우적 되고 있는 입장에서 '내 돈 들이지 않고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장'은 모든 사람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봉황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을 가지고 팀장님에게 면담 요청을 했다. “1주일 동안 있어보니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조금 느껴집니다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조금 버거울 것 같습니다. 디저트 쪽으로 더 깊게 파고들고 싶네요. 된다면 디저트를 배우는 클래스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미실란의 향후 나아갈 길과 회사에서 제게 원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팀장님은 곰곰이 들은 후 이 말을 건네주며 지금껏 걸어온 커리어도 설명해주셨다. “다양한 것들에 관심이 있고 많은 것들을 시도하려는 것은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한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기에 3월 한 달간은 많은 걸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 하기까지 시간을 두고 조금 기다려보려 했습니다. 해나가야 할 것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고 하나씩 풀어나가면 좋겠어요”


국제 보건 개발단체에서 오래 근무하시면서 항상 비영리 단체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 미실란이 본인이 경험한 첫 영리 단체이고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요식업에 종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영리에서 영리, 보건에서 요식업.  이를 인지하는 순간 ‘아 이 사람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얼마나 막막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곧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정말 대단하다'는 존경의 시선으로 바뀌게 되었다.


스타트업들이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라고 외치던걸 삶에서 직접 느낀 순간이었다. 요식업계 특성상 피드백을 주고받고 상급자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서비스 쳐내기 바쁘지 구성원 개개인의 목적은 무엇이고 이들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인지. 이곳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고,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알려하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디저트 사건이 있고 나서 2주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주방 사람들과 공간에 적응하기가 어려워 현재 나의 상황, 주방에서 겪고 있는 문제점, 회사에 바라는 부분을 리스트로 작성해 보여드렸다. 팀장님은 이를 쭉 훑으시고는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띠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프라키 탄자니아에 국제개발기구 업무로 있었을 때 상급자가 아주 막 나가는 사람이었어요.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술 마시고 다니면서 한국인에게 대한 인상만 실추시켰죠. 이 사람과 더 이상 같이 일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짐을 다 싸고 귀국할 채비를 마쳤고, 이 모든 상황과 그가 저지른 비상식적 행위들에 대해 빼곡히 적어서 한국 본부에 보냈어요.  오늘 이 리스트를 보니  제 과거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스스로 현재의 상황이 어떤지 질문하고 인식하는 것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한 문제들은 저희 다 같이 풀어야 할 숙제임에도 틀림없고요. 다만 너무 이른 시간에  많은걸 재단하고 판단하기보다는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봤으면 좋겠어요”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게 아니구나. 나랑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고, 그가 나의 동료구나'를 느꼈고 이는 엄청난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이 사람과 이야기하고 함께 나 아가다 보면 내가 보지 못한 한 단계 위의 길을 제시해주거나 조언해 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극도의 개인주의적 삶을 살아온 나에게 팀장님은 조직에 섞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화제가 되어주셨다. 개인적으로나, 지금껏 일하면서 누군가를 바라볼 때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 더 나아가서는 ‘나는 왜 이 사람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가? 이 사람은 무엇이 달랐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가? 이런 매력이 흘러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팀장님의 대처 방법은 실로 대단했다. "네가 틀렸어. 네가 적응을 잘 못하는 거야"가 아니라 "당신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톡톡 건들었다. 업무 차원에서 시작한 속앓이가 삶의 방향성과 인생의 향기 그리고 경영이 무엇인가까지 곱씹어보게 했다.


" 당시 계열사 사장들이 '앞으로 이런 사업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미래에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하면 이 회장은 '사람은 있고?'라고 되물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지금부터 구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사람도 없이 사업은 무슨 사업'이냐고 말이죠"


[20년전 이건희의 일갈 "5년·10년후 먹거리? 내일 일도 모르는데…결국 사람이다, 사람"]




인사가 만사다. 버스를 어디로 끌고 갈지 고민하기보다, 버스에 누군가를 태울지 고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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