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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18. 2022

베트남에서 만난 영국 친구들이 곡성에 놀러 왔다

<10화-'환대: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에 대하여>


4월의 끝자락을 향해가던 어느 날 아침, 새로운 문자가 도착했다는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안녕 케빈! 잘 지내지? 드디어 한국을 여행하게 됐어! 우리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하는데 혹시 추천해줄 만한 곳 있어? 너 시간 되면 꼭 한번 보자~”. 처음 문자를 보고는 ‘으음? 누구지? 누가 갑자기 한국에 온다는 거야?’라는 의문의 반응을 보였다. 기억을 찾기 위해서는 3년을 거슬러, 2019년 11월의 베트남 하노이까지 가야했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을 때 호스텔에서 만난 영국 친구들이었다. 머리를 말리면서, 택시를 기다리면서 한 10분 정도 이야기했으려나. 정말 단어 그대로 서로 얼굴만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갑자기 연락 온 것도 놀랐는데 다음날 한국에 온다고 해서 더욱 놀랐다. 당시 4월 마지막 날 회사에 큰 행사가 있었고 가족들도 곡성에 놀러 와 정신이 없었다. ‘다음번에 만날까? 괜히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일을 너무 벌리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국까지 와서 잊지 않고 연락을 줘서 너무 고마웠다. K-DNA인 ‘그래! 밥 한 끼 하자!’는 말과 함께 대구에서 만났다.


‘대구까지 왔는데 뭘 먹이면 좋을까’해서 보니 뭉티기*와 막창이 있었다. 하지만 뭉티기 식당은 휴무였고 막창은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그래서 호불호가 웬만하면 없는 찜닭에 볶음밥까지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갔다. 서로의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여행자는 여행자인가, 잘 조려진 찜닭과 시원한 맥주 그리고 인생 이야기로 금세 친해졌다. (영국친구에게 영국의 자랑(?) 고든 램지가 한국의 카스를 광고한 이야기도 해줬다. '위험에 빠졌으면 당근을 흔들어주세요'라는 트윗 이야기도.) 베트남에서 만난 이후 서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팬데믹 기간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왜 다시 여행을 시작했는지, 한국에는 얼마나 오래 있을지 등등 이야기 나누었다.


'뭉티기'란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만 하게 뭉텅뭉텅 썰어낸 생쇠고기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출처:대구푸드-


대구 돌솥 찜닭집


서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사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 나이로 33, 32살. 나보다 10살 많은 형 누나였다. 2019년 여름 세계여행을 시작했지만 겨울에 팬데믹이 터져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올해 초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해서 필리핀과 태국을 지나 한국에 왔다. 특별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이제 엄마, 아빠가 되어 가정을 꾸리기 위해  8월에 미국에서 열리는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을 끝으로 장기여행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여담으로 이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함께하면서 한국의 형, 누나(=나이) 문화를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10살 많은 사람과 혹은 10살 적은 사람과 이렇게 수평적으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한국 특유의 연장자가 밥 사 주는 문화의 혜택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터놓고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다른 세상을 공유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아쉽다.


찜닭을 먹으면서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정말 활짝 웃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을 때 나오는 가식 없는 순수한 웃음 말이다. 첫날 찜닭으로 시작한 음식여행은 다음날 서문시장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어릴 적에 즐겨먹던 수제비를 브런치로 먹고, 씨앗 호떡을 입에 하나씩 물고 공원에 갔다. 선선한 바람에 따스한 햇볕이 내려쬐는 날씨에 야외 마스크도 공식적으로 해제된 날이라서 걷기에 완벽한 하루였다. 카페에 들어가 맛있는 카페라테를 한잔씩 마시고 최애 음식 중 하나인 쌀 떡볶이 집에 가서 떡볶이, 순대 그리고 납작 만두까지 맛봤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워서 예전에 일한 브루어리에 가서 맥주 한잔씩 하고는 잠시 쉬었다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친구를 만나는 것과 그 친구의 가족들을 만나는 건 또 다른 의미였다. 우주로 표현하자면 지구를 여행하는 것과 태양계를 여행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계획에 없었던 만남을 위해 가족들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해 집 앞 실내포차로 모였다. 고갈비부터 연탄 불고기, 닭발, 오징어 튀김 그리고 소주, 맥주, 막걸리를 곁들여 먹고 마셨다. 현지인과 함께 하지 않으면 결코 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건네주고 싶었다. 특히 누나가 막걸리를 엄청 좋아해서 아버지가 직접 담근 석탄주를 선물로 받아갔다.


환대


대구에서 헤어지고 며칠 뒤 곡성에서 다시 만났다. 일하는 곳에 초대해 밥 한 끼 대접해주고 싶었고, 부모님 집이 아닌 내 집에 초대하고 싶었다. 작년 겨울 스페인 마요르카에 갔을 때 친구가 일하는 브런치 카페를 방문 했을 때였다. 손수 만들어준 브런치를 맛나게 먹고 계산하려고 하니 이미 결제가 끝났다고 했다.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가 나와서는 “너는 내 친구고, 오늘은 내가 카페에 초대했으니 이건 당연히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어찌나 고맙던지, 나도 일하는 곳에 친구들을 초대해 메뉴에 있는 음식들을 다 주문하고 대접했다. 집에 와서는 마당에 앉아 하루는 양념치킨을, 하루는 삼겹살을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 다음날이 휴무날이라 함께 순천에 가서 돼지국밥을 먹고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를 다녔다.


밴드명 : 막걸리


그렇게 우리는 대구, 곡성, 순천을 함께 여행하고 가족들, 일하는 곳, 사랑하는 음식, 좋아하는 장소를 공유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적지 않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나보다 더 많은 곳을 더 오래 여행한 형과 ‘환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왜 우리를 도와주었을까? 그들이 잠자리를 제공하고 맛있는 음식을 건네주고 따스한 응원을 보내주었던 건 우리에게서 삶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인들은 지금 당장 할 수 없기에 눈앞에 있는 여행자들의 언제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특권을 선망하는 감정을 환대라는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더 베풀면서 살아야 해”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곡성에 정착하고, 매일 아침 출근해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 현재의 내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이 느꼈다. ‘나도 한때는 저들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나도 저들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지금 당장 떠날 수 없으니 나의 소망을 환대라는 방식으로 전달하자’


항상 여행자로서 누군가에게 초대받는 삶만 살다가, 누군가를 초대해서 환대해줄 수 있다는 건 실로 뜻깊은 경험이었다. 자신의 삶에 기꺼이 초대해준 수많은 친구들부터 엄청난 사랑을 나누어준 가족들까지 과거의 수많은 눈 부신 추억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물론 ‘아.. 내가 이렇게 멍청한 짓을 했구나’하는 이불 킥 장면도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크나큰 행복이자 축복이구나를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제주도로 가는 그들을 배웅해주면서 수많은 친구들이 내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이 환대를 나에게 말고, 우리 같은 또 다른 여행자들이 삶에 찾아왔을 때 그들에게 배로 베풀어주길 바라. 그게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길인 것 같아"

이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 나처럼 한국에서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그때 참 재밌었고, 참 행복했는데'하는 순간이 되길 바란다. 길 위에서 만나 수많은 지구인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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