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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11. 2022

텃밭 농사를 잘 지으면 자식 농사도 잘 지을까?

<9화-텃밭 농사와 자식 농사의 상관관계>



‘모종을 땅에 심기만 하면 알아서 잘 자라는 거 아니야?’라는 과거의 생각은 ‘일단 아기만 놓기만 해. 알아서 잘 자라’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둘 다 정말 무식한 소리라고 생각한다. 모종과 아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환경이 받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좋은 환경은 끝이 아닌 본격적인 여정을 알리는 신호다.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무수한 것들을 준비해야 하고 공부해야만 한다. 흙은 어떤 성분인지,  복합비료-유기퇴비- 유박- 동물성 퇴비들은 무엇이 다르고 이 흙에 적합한 것은 무엇인지, 화학비료는 정확히 무엇 때문에 환경에 좋지 않은지, 두둑의 높이와 넓이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병충해가 다가오면 원인과 대처방법은 무엇인지, 언제 가지치기를 시작하고 언제 웃거름을 주어야 하는지, 수확은 언제쯤 할 수 있는지 등등 우리의 입속에 들어가는 시원한 오이 하나에도 수많은 고뇌와 엄청난 시간의 학습이 담겨있다.  


까꿍


우리 모두가 부모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식이다. 불과 1년 전,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할 정도로 삶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이 부모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온실이 아닌 ‘따뜻한’ 방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면 따뜻함이 부재했다. 작물들로 표현하자면 허허벌판에 모종만 심어놓고 알아서 자라라고 했던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부모를 향해 “내가 그렇게 아팠는데, 내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떻게 부모라는 사람이 그걸 모를 수 있냐. 어떻게 부모라는 사람이 도움을 안 줄 수 있냐”라며 울부짖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슬픔과 당혹감으로 뒤덮인 부모님이 답했다 “네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어. 정말 몰랐어. 혼자 잘 지낸다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아파하고 슬퍼했는지 몰라서 너무 미안하다. 엄마 아빠도 자식을 키우는 게 처음이다 보니 너무 몰랐다” 자녀에 대한 끝없는 공부와 소통이 부재되었을 때 치루어야 하는 대가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대한민국 10~3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이라는 점이 자식에 대한 공부의 부재, 소통의 부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 극단 선택’ 10∼30대만 우상향으로 올라갔다" 출처:한겨레



작물들에게 매일 물 주고, 비닐을 씌워주고, 비료를 듬뿍 주면 맛이 떨어진다. 자원이 많은데 굳이 악착같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이 부족해야 뿌리를 더 깊게 내리고, 생존에 위협을 느껴야 과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비닐을 덮지 않으니 흙이 금방 마르고, 화학 퇴비를 넣지 않으니 성장이 더디고, 살충제를 치지 않으니 수많은 벌레들이 달려든다. 잘못하다가는 내 손으로 심은 작물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관찰과 끝없는 공부가 수반되어야 했다.


생명을 키우기 전부터 공부는 시작되어야 하고 그 끝은 없을 것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 동안 단순히 먹고 자는 것이 아니라 한 해의 농사를 뒤돌아보고, 앞으로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작물에게는 토양이, 뿌리내리는 것이, 가지치기가, 수확이 중요할 때가 있고 아이에게는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아야 할 때, 자아를 찾아갈 때, 자신의 길을 탐색할 때, 그 길을 추진력 있게 나아갈 때, 결실을 맺을 때 각각의 상황에 필요한 도움과 조언이 존재할 것이다. 너무 일러서도 너무 늦어서도 안 된다. 세심한 관찰과 준비를 통해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이토록 험난한 과정이지만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임을 느꼈다. 오직 생명을 직접 키울 때만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었더라면 아이를 기를 때도, 작물을 키울 때도 결국 믿음이었다. 지금 당장은 위태로워 보이고 열매가 열릴까 의문이 들지만, 보이지 않는 흙 안에서는 살기 위해 엄청나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 과정을 거쳐 뿌리만 잘 내려준다면 열매가 열리는 건 시간문제이다. 특히나 부모들이 자식을 믿고 기다려주길 바란다. 열매가 맺히지도 않았는데 수확하려고 하지 말기 바란다.


빼곰히 얼굴을 들어내는 친구들


대부분의 작물들이 잘 안착했지만 몇몇 식물들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죽었다. 바스러진 잎을 만지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 왜 부모들이 자녀에게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어라’고 하는지 떠올랐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꼭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싶다. 새로운 생명들과 함께 이 생명의 태동을 나누고 싶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바질로 만든 바질 페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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