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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n 04. 2022

아무리 좋은 씨앗도 '이것' 없이 꽃 피울 수 없다.

<8화-씨앗을 심기 전 허리를 숙여 흙을 들여다보아라>



할머니와 아버지가 가꾼 텃밭의 작물들은 항상 아무  없이  자랐다. 평생  결과물들만 봐왔으니 ‘모종만 사서 흙에 꽂으면 알아서  자라겠구나'라는 아주 일차원적인 생각을 했다. 하지만 농사의 시작인 흙에 대해 알아가면서  무식함은 산산조각 났다.


지금 텃밭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창고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안에는 수많은 돌들과 '도대체 이곳에  박혀있지?’하는 쓰레기들이 많았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조리 빼내고, 흙을   쉬게  주었다. 퇴비를 뿌리고 두둑을 올려 작물들이  자랄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과정을 직접 하면서 으로  배운 것이 있다.     


좋은 씨앗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씨앗을 담아내는 환경을  구축해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돌 산


 삶과 직결되는 주제이다. 중학교는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수성구에서, 고등학교는 구미 외곽지역인 해평면에 위치한 조리과를 나왔다. 수성구에서 논다는  학원을 빼먹고 피시방에 가는 수준을 의미했지만, 해평에서 논다는  학교에 차를 몰고 오고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고 퇴학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중학교  옆자리 짝꿍은 서울대 의대에 갔고 함께 축구하던 친구는 카이스트를 다닌다. 부모가 마련해준 벤츠를 타고 대학교에 등교하고 방학  해외로 여행을 간다. 반면 고등학교  같이 요리를 배운 친구들은 몸만 누울  있는 공간에서 먹고 자고, 좁고 더운 주방에 하루 종일 서서 고강도 노동을 한다.


 어느덧 20 초반을 난 우리들은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사회에 나왔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은  환경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떠나 객관적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수성구라고 아무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수성구가 정답일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학군에 미친 듯이 돈을 퍼붓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결국 확률 싸움인  같다. 작물들도 똑같다. 아무리 내가 땅을  갈고, 좋은 퇴비를 뿌리고, 물을  줘도 과실을 맺지 못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바탕이 되었을  뿌리를  내리고, 제대로 성장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기에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준비한다. 계속 수성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들 중학생 시절이 현재 삶에 미친 영향 그리고 중학교 친구들이 가고 있는 길을 곰곰이 지켜보고 있으면 결국 조금  괜찮은 환경에서 조금  폭넓은 선택 위해서였다. (’그렇게 공부만 죽어라 시키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있겠지만 이는 다른 논점인  같다)


"나중에 당신 자녀를 수성구에서 기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사람으로서 무엇을 위해 타오르는지도 모르는 무사유적 학구열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수성구에 살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을 다른 곳에 투자할 것이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 건강한 공동체, 건강한 환경에 대해서는 타협할  없는 가치라는  배웠다. 친구들  옆에 있는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몸으로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국가이지만 친구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학군이라는 외부적 환경이 돌을 골라내고 퇴비를 뿌리고 두둑을 올리는 것이라면 자아自我라는 내부적 환경은 흙 자체를 자세히 관찰해서 어떤 특징과 성분을 지니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작물이 잘 성장할지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씨앗을 뿌리고(노력, 공부, 시도) 이를 수확하는 (성장, 결실, 보상) 인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씨앗을 뿌리기  (자신의 내면과 성향)  자체를 공부하고 가꾸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허리를 숙이고  몸의 감각을 통한 끝없는 질문 치열한 관찰로 흙과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만 한다. 무엇이 충분하고 부족한지  상태를  알아야만 무언가를 제대로 시도할  있다. 질소가 많은데 질소가 좋다고 질소를 듬뿍 넣으면 토양은 죽어버린다.


허리를 숙이고 땅에 귀를 기울일 것


2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라는 사람이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글을 읽고 쓰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임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마주한 문장이 꿈이 되어 셰프라는 목표를 가졌다. 하지만 속도감과 단체성, 확고한 위계질서가 자리 잡은 주방에서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냥 조금 힘들 뿐이야. 조금만 참자. 이걸 지금 그만두면  과거가 거짓되는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가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냥  성향과 주방이   맞는 거였구나. 내가 생각한 것만큼 요리에 흥미가 없었구나. 그렇다면 나는  좋아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다시 치열하게 찾으면 되겠구나. 내가 틀린  아니었구나.  내가 거짓말쟁이가 아니었구나. 그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구나 '


시도도 중요하지만 행위의 주체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기의 체형에 맞는 옷을 입어야 인생을 좀 편하게 살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는 씨앗을 심기 전 허리를 숙여 내면을 들여다보고 찾아가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고 한들 척박한 아스팔트 위에서는 절대 잘 자랄 수 없다.



요즘 청년에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악착같이 찾아봐라라는 것입니다.   사는 인생을  남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삽니까? 우리는 눈만 뜨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를 찾아야 합니다. 쭈그리고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보고, 강의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면서 찾아야 합니다. 무언가 관심이 가는 일이 보이면  일을 하는 사람도 찾아가 보는 거예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길이 아니라는  발견하는 것도  도움이 되죠. 그러다 어느 , 갑자기 고속도로 같은 길이 눈앞에 보입니다. ‘이거다!’ 싶으면 그때 전력으로 내달리면 됩니다. 제가 정확하게 그렇게 했어요.  10년쯤 달리다 보니 처음에는 친구들보다 훨씬 늦었는데, 10 정도 지나면서 남들보다 조금씩 앞서가고 있더라고요. 저는 똥물학과 학생으로 우울한 대학 생활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하면 좋을까? 계속 스스로 물었죠.

-최재천의 공부(최재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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