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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l 09. 2022

매실청을 담그다 의대에 가고 싶어졌다

<13화 - 곡성 100일 차, 앞으로 뭐 하면서 살아야 할까?>

고대인들은 세계가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먼 과거까지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가 옛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됐음을 알고 있다.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 또 그 별은 보잘것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코스모스-칼 셰이건 지음]



이번 글은 곡성 귀촌 100일 차, 얻은 것과 잃은 것에 이은 세 번째 이야기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입니다.



[4.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


불과 몇 년 전 고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위대한 셰프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길에 어떤 야망도 남아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곡성이라는 공간에서 먹고, 살고, 일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당장 3개월 전만 하더라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뭐하러 5년, 10년 뒤의 모습에 목매달았던 걸까?

 

고등학생 때 10 인생 계획표를 만들었다. 20살에는 밍글스(한국 서울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 22살에는 L’Arpège(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24살에는 군대, 26살에는 Benu(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일한다는 목표였다. 계획대로 흘러간 건  하나도 없다.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저  순간에, 내가   있는 세상에서, 내릴  있는 최선의 선택과 계획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다짐하게 되었다.하고 싶은 거 해도 마음대로  흘러가고, 하기 싫은 거 해도 마음대로  흘러가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겠다'. 마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 아버지가 지지하는 모든 것이 내가 다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종교는 없어도 결코 냉소적이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살아 있음을 너무나 아름답고, 아찔할 정도로 신비롭고, 우연히 일어난 신성한 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부모님은 우주는 막대하고 우리 인간은 궁벽한 곳에 있는 작은 행성에서 눈 한 번 깜박할 순간 동안을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라고 했다. 또 두 분의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라는 말도 나에게 들려주었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를 위하여- 샤샤 셰이건 지음]


천문학자  셰이건은 자신의 딸에게 인간이란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티끌 하나'라고 가르쳤다.  생각을 시작으로 ‘굳이 아등바등  필요가 있는가?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고, 혼자  먹고  산들 조금 잘난 티끌밖에 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는 마침표가 찍힐 것을 알고 있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재활용될 것인데?  혼자만  먹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류의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원자와 원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한다. 죽음 이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누군가를 이루는 원자가 된다면 과연 우리에게 ‘영원한 죽음'이란 것이 있을까?


지난달, 가족들과 함께 영천나자렛집으로 봉사를 갔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무연고자*에 실제 연령은 60~70세이지만 실질적 지능은 6~7세에 멈춰있다. 이전에는 매달 한 번씩 봉사하러 갔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 위험으로 인해 2년 반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엄청나게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지도 않았다. 그저 그들과 함께 20분 탁구를 치고, 500m를 걷고, 500원짜리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분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라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구나'를 자각할 때 느낄 수 있는 삶의 의미와 행복감이 다가왔다.


무연고자無緣故者 :가족이나 주소, 신분, 직업 등을 알 수 없어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 (출처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생각들이 재료가 되어 선한 영향력을 깊숙이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비록 한낱 티끌이고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다.  그러나 내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있다면,  영향을 받은 누군가는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지금 내가, 누군가 심어놓은 매실나무의 매실을 수확해 매실청을 담그듯, 나는 과실을  즐기더라도 뒤에 오는 누군가가  달콤함을 즐기며  새로운 매실나무를 심지 않을까?’ 마치 들어오는 빛은 하나이지만 나가는 빛은 수십개인 프리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인간이지만 한 명의 인간 몫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것을 갈고 다듬어서 다른 이들에게 나눌  있는 삶을 산다면 충만하고 충분한 인생이 아닐까?


먼저 살아간 누군가 심어놓는 매실나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믿는다. 이는 자연스레  먹고사는 것의 문제 건드릴 때 타인의 삶에 넓고 선한 영향력을 펼칠  있겠다는 생각으로 뻗어나갔다.  산업으로 보자면 먹는 것의 ‘농업', 삶의 과정을 재밌게 해주는 ‘게임', 죽음을 마주하는 ‘의료'라고   있을 것이다. 한때 셰프를 선망했던 사람으로서, 의료계에 종사하는 아버지 일을 도우면서, 직접 텃밭을 가꾸면서, 신문을 읽고 수많은 지식인들의 혜안을 접하면서, 결국 농업과 의료는 인류가 살아있는  지속될 것이며  한계는 없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생겼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식량의 파급력과 팬데믹 사태로 돌아본 의료의 중요성은 이 둘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담겨있고 생명이 깃들어 있는지, 전 지구인들에게 각인시켰다. 인류가 멸종하기 전까지 떼어낼 수 없는 데다가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는 건 엄청난 가치와 부를 품고 있을 것이다.


식량과 의료. 삶과 죽음에 관여하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특히 아무도 그 길을 제시해주고, 말해준, 알려준 어른이 없는. 어떤 어른이 여러분에게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가 이렇다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일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아무도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좋아하고 자주 인용하는 표현이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다만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그 미래의 조짐, 이미 와있는 세상의 '아 이것은 미래가 될 것 같다는 그 느낌을 꼭 캐치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의 실력, 여러분의 실력을 키우는 것 보다도 그것의 흐름을 잡아낼 줄 안다면. 그 세상에 뛰어들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매일경제 강의>


작년 이맘에도 의학도에 관심이 생겼지만 지속성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 혼자  먹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잘하는 , 좋아하는 , 즐겨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통찰력은?' 같은 질문을 끝없이 던지고 답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배우고 견문을 넓히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면, 이런 학문적 행위의 최고봉은 인간이라는 소우주에 대한 이해,  의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와 비슷한 맥락으로 배워서 죽을 때까지 사용할  있기에 은퇴가 없는, 천장이 없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100 시대를 산다고 가정했을  20년을 투자해서 나머지 60년을 꾸준히 사용할  있다면 상당한 가성비라고 생각한다. 그전에 지구를 떠난다 해도  후회는 없을  같다. 인명을 어떻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하다 가면 후회는 없을  같다. ‘남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하는데 나는 너무 늦지 않았는가?' 생각이 든다( 들면 이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삶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를 돌이켜보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나마 제일 빠른 선택지였다. 지난날의 경험들도  도움이   같다.  길을 가야 하는 명확한 믿음과 무언가를 꾸준히 하며 스트레스와 체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배운 경험은 최소한의 지푸라기가 되어주고 있다.


도대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까. 정말 이 길이 수년간 방황한 끝에 내린 결론일까.


이것은 선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선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인생은 결국 내가 한 선택의 결과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이가 어릴수록 무언가를 선택할 때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황해야 합니다. 방황! 방황을 거처야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뒤 선택을 해야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중간에 쉬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공부, 이래도 안되면 포기하세요-이지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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