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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Jul 16. 2022

제가 죽으면 이렇게 장례를 치러주세요

<14화-지구라는 별에 인간으로 태어나 잘 마무리한다는 것>

브런치에 글을 쓰면 항상 재밌게 읽었다고,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라고 하셨는데 이제 더 이상 그 응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네요. 이 글을 사랑하는 이모할머니 두 손에 바칩니다.


죽음 속에 내재된 위대한 존엄성은 죽음 전의 인생이 얼마나 고귀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존엄한 죽음은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희망의 한 형태이고, 그 희망은 생전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존재 여부가 갈리게 된다.

<존엄하다 尊嚴하다 인물이나 지위 따위가 감히 범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엄숙하다.>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셔번B눌랜드 지음-


 퇴근 후 수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를 쪼이는 듯한 통증으로 인해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쉬려고 누웠는데 눈떠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출근 준비를 했다. 스스로에게는 ‘수많은 고민을 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이 지쳤구나’라고 말하고 하늘을 향해서는 크게 “아.. 인——생”이라 소리치고 있던 찰나였다. 갑자기 전화가 울리더니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슬픔이 깔린, 암담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이모할머니의 부고 소식이었다.


1년 정도 투병을 하셨고 또 최근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고만 들었는데 이렇게 가셨구나 싶었다. 울컥한 느낌도, 슬픈 느낌도 들지 않았다. 다만 가족들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일단 출근을 해야 했다. 마침 이날 운명의 장난처럼 가족 손님이 단체로 왔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 손녀까지 25명의 대식구가 와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나는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방금 요리된 음식을 세팅했다. 그 과정에서 깊숙이 고민하게 되었다. ‘오늘 대가족이 모이는 건 똑같다. 하지만 누군가는 삶의 순간을 즐기러, 누군가는 삶의 마지막을 추모하러 모인다. 꼭 죽어서만 모여야 할까? 살아있을 때 왜 다 같이 이런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걸까?’. 


정신을 차지리 못해 점심 먹고 바로 퇴근했다. 곡성에서 남원, 남원에서 대구, 대구에서 지하철과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병원 지하에 위치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작년에 업무차 자주 방문한 곳이어서 마치 옛 직장을 오랜만에 온 느낌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이미 다 도착해있었다. 다음날 장례절차를 마치고 할머니를 땅에 묻어드렸다. 화장을 하지 않고 직접 묻는 걸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라. 인간이 간과하고 있는, 네가 잊고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가족의 죽음을 지금까지 4번 경험했다.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작은 고모 그리고 이모할머니. 앞의 두 죽음은 마치 하나의 사진 속 장면으로만 기억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이라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고,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서 추모를 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은 울음을 터트렸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너무 어린 시절이어서 죽음을 관조하고 느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1년 반전 고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죽을 것 같았다. 군 입대 후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죽음을 깊이 새기고 추모할 상태가 아니었다. 화장터에서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인생의 마지막이 그저 하얀 잿가루와 하얀 연기로 마무리되면.. 그 무엇이 소용인가?”


이번에는 많이 달랐다. 문자 그대로 ‘죽기 직전’까지 간 후 죽음에 대해 여러 가지 방면에서 고민해보고, 삶에 대해서도 숙고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건강해져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독일에서 지냈을 때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천문학에 빠졌고 이로 인해 ‘우리 인간이 그저 아침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티끌 하나라면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토록 ‘죽음과 장례'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이토록 가까이에서 직접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부고 소식을 들은 직후에는 감정의 흔들림이 없었지만 몇 시간 후, 살아있음을 너무나 느끼고 싶었다.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나는 온도를 느낄 수 있고 햇빛을 쬘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까지 생명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장례식에 참석하며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죽은 후, 나의 마지막을 배웅해주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꼭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이 삶의 행복이라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살아있음이 얼마나 값진 것이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혹은 보지 못하고 지나고 있는지.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때, 땅을 치고 하늘을 삿대질하며 원망하지 말고 지금 옆에서 같이 웃고 떠들고 만지고 함께하라는 것이다.


'이 육체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더라도, 지구에 남아 인생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또 다른 인간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영원한 죽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고 그걸 통해 그들의 기억 속 한 장면을 차지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직접 기른 바질로 바질 페스토를 미리 만들어 놓고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현 씨가 살아 있을 때 즐겨먹던 음식입니다. 직접 농사지은 바질로 직접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서 여러분들에게 맛 보여드리려고 미리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즐기세요.”


육개장과 수육도 좋지만 장례식에 온 것을 잊을 정도로 진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다. 떠나간 사람의 마지막을, 살아갈 이들의 삶을 위해 축배를 들고 싶다. 일주일 정도 장례 축제를 했으면 좋겠다. 독일의 크리스마스처럼 1주일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초점을 맞추어, 계속해서 먹고 마시고 자고 삶을 즐겨내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을 추억하고 환송歡送하는데 1주일이라는 시간 정도 기억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햇살이 내리쬐는 날, 바다가 보이는 들판에서 축제를 열었으면 좋겠다. 관현악단의 손 끝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음악 선율로 청각을 간질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미각과 시각과 후각을 건드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어 촉각을 자극해,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다.


나를 떠나보낼 때는 ‘이 삶이라는 망망대해를, 선실이 아닌 갑판 위에서 항해하다 이제 잠시 쉬러 간다. 육체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여러분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곁들여지면 좋겠다.


(죽기 전 가족들에게 장례의 방향을 아무리 신신당부해도 대부분 가족들의 의사대로 장례가 치러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가족은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1주일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먹고, 마시고, 자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고 떠나가야겠지만.)


40여 년간 무수한 죽음을 관찰한 예일대 의대 교수가 쓴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끝에 이런 구절이 적혀있다.


‘내가 지금껏 들었던 불가사의 중 제일로 이상한 것은 인간이 죽음을, 때가 되어 찾아드는 필연적 종지부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셰익스피어-

묏자리는 아주 정확했다. 가로 1m, 세로 2m. 돈이 많든 적든, 명예가 많든 적든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저 딱 2m의 공간만 필요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기 누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한정된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가?’를 다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상상 속의 결말이 아닌, 우리가 마주해야만 하는 아주 현실적인 결말 앞에서 관을 두 손으로 들고, 흙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두 눈으로 보면서 던지는 질문은 달랐다.


개인적으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눈물이 터지거나 슬픔이라는 감정이 솟구치지는 않았다. ‘이 한평생, 이 지구라는 곳에 인간으로 태어나 지내면서 느끼고 경험한 모든 감정과 순간들. 너무나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을 건네드렸다. 삶의 매듭이 지어졌다는 것에 축하와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감사했습니다.


아버지가 장례지도사 분께 물었다. “고인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분의 생전 모습을 얼추 그릴 수 있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가족들의 반응, 고인의 마지막 모습, 조문 온 사람들과 그들의 반응을 보면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거의 모든 것이 보입니다. 실제 돌아가신 분들의 마지막을 보면 미소를 띠고 편하게 가신 분들도 있고, 주먹을 움켜쥐고 삶을 놓지 못해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신 분들도 있습니다.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는 장례식에서 가족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자리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평소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시간을 쏟아붓고 감정을 공유하였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지막 자리를 같이 해준 것 아닐까. 자신이 한 만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돌려받는다는 것. 자신이 못 받더라도 그 밑에 세대들이 받으리라 믿는다.  


장례의 마지막, 흙으로 고인을 돌려보낼 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추모하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누군가는 하느님에게 기도를, 누군가는 부처님에게 기도를, 누군가는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파장이기에 각자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존재에게 한 인간의 마지막 안녕을 비는 것.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다지도 흥미로운지 새삼 되새겼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결국 살아있을 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진짜 인생을 살고, 많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최소한 내게는 부조금으로 50만 원 주지 말고 살아있을 때 5만 원짜리 맛난 밥 한 끼 사주는 게 더 기쁠 것 같다.


사랑하는 이모할머니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항상 위에서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계시다는 것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나는 생을 깊게 살기를, 인생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고 엄격하게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P.S 이 글을 쓰면서 '장례문화'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다른 문화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졌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꼭 멕시코의 망자의 날에 방문해보고 싶다. 삶과 죽음은 동일한 축제라는 것.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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