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초콜릿>
누군가 우리의 '인생'은 '초콜릿'과 비슷하고 했다. 나는 이 표현을 정말 좋아하는데 단맛과 씁쓸함을 동시에 가진 초콜릿처럼 , 우리의 인생도 행복이라는 단맛과 불행이라는 씁쓸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초콜릿'으로 정말 유명하다. 그래서 거리를 걸으면서 입안을 가득 메우는 달콤함을 느끼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렇게 쓴맛과 단맛이 손을 잡고 입안에서 추는 춤을 느끼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맥주와 감자튀김이 유명한 이유는 알겠는데, 도대체 '초콜릿'은 왜 유명해졌을까? 이 질문을 통해 나는 이 다디단 벨기에 초콜릿에 뒷면에 담긴 누군가의 눈물과 씁쓸함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벨기에 초콜릿이 명성을 떨치게 된 것 1921년 벨기에의 초콜릿 천재 ‘장 노이하우스’가 최초로 ‘초콜릿 쉘’을 만들면서부터이다. 물론 이전에도 몇몇 장인들이 초콜릿을 제조했지만, 이 천재의 획기전인 발명은 초콜릿 모양을 유지한 채 다양한 속 재료를 넣을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벨기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랄린 초콜릿’이다.
하지만 당시 이런 기술이 있더라도, 초콜릿을 만들 재료가 싼값에 대량으로 공급되지 않았더라면 이 산업은 지금처럼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과연 어디서 재료를 가져왔을까?
바로 이들의 식민지였던 ‘콩고’에서 가져왔다.
원주민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고, 그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신체를 절단하는 등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벌을 내리는 등 가혹한 통치를 통해 얻어낸 것이다. 이 기간에만 1백만 명 이상의 콩고인 이 학살당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벨기에는 그들의 ‘피’와 ‘살’로 초콜릿을 만들었다.
이 글을 쓴 이유가 벨기에에서 초콜릿을 먹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초콜릿’이 누군가의 씁쓸한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어졌다면 최소한 그걸 기억하고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2019.08.19
In Brussels, Belg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