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암스테르담>
이들은 남미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당시 피츠로이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이였는데 뒤에서 한 커플이 빠른 속도로 따라오길래 내가 느린가 싶어서 그들에게 “먼저 갈래요?”라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독일어 발음이랑 정말 비슷한 것 같아서 독일에서 왔는지 물어봤다..
“나는 한국에서 왔어, 너흰 독일에서 왔어?”
“아니, 우린 홀란드에서 왔어”
“홀란드? (내 머릿속에는 홀란드=폴란드뿐이었다), 독일 위에 있는 나라?”
“아니 독일 왼쪽에 있는데?”
“아 네덜란드?”
이때 처음 알았다. 네덜란드=도이치=홀란드. 그렇게 시작된 대화로 정상까지 남은 시간을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 여러 이야기라고 부르지만 정말 기본적인 어디서 왔니, 이름은 뭐니, 왜 여행을 왔니 등등
어느덧 함께 정상에 도착하고, 우린 이후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한 동선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러더니 벤이 "우린 내일 엘 칼라파테로 넘어갈 건데, 네가 괜찮으면 우리가 태워줄게"라고 했다. 사실 나는 이틀간의 트레킹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고, “우리는 내일 3시에 출발하니, 내일 2시까지 연락 줘!, 살아서 만나길!”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그들과 나는 헤어졌다.
그들이 떠나고 '5분 정도' 고민했다. 원래 계획대로 이틀간 트레킹을 할지, 아니면 내일 일찍 내려가서 차 타고 갈지. 당시에 텐트를 못 빌려서 텐트 없이 이틀 연속으로 비박하는 건 몸에 무리가 올 것 같고, 또 편하게 차 타고 가고 싶어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내 남미 여행의 최고의 밤하늘과 일몰을 보며 다음날을 맞았다. 나는 원래 하루 묵으려던 캠핑사이트를 둘러보기 위해 뛰어다니다시피 걸었고, 2시 전에 산에서 하산해서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2시부터 버스정류장에서 계속 답장을 기다렸다. 이들을 만나지 못하면 나는 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답장은 끝내 받지 못했고, 버스 출발시간인 4시가 다가와 버스를 타고 갔다.
먼길을 달려 호스텔에 도착했는데 이날 정전이 돼서 인터넷을 못쓴다고 했다. 이때는 뭐 하룻밤 인터넷을 못쓴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겠냐 했는데, 실제로 일어났다
다음날 아침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 카페로 가서 , 인터넷을 켜니 벤에게서 문자가 온 것이다. "어제 인터넷이 안돼서 답장을 못해, 너무 미안해. 그리고 오늘 10시에 엘 칼라파테 갈 건데 네가 가면 우리가 꼭 태워주고 싶으니 그전에 문자 줘!"
그런데 나는 11시에 이 문자를 봤고, 그렇게 우리는 남미에서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후 문자로 서로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서 웃고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우린 그들의 집인 '암스테르담'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남미서 만났을 때 이미지보다 너무 젊어져서 놀랐는데 그것 말고는 다들 여전했다.
이들은 우리가 만났던 카페 바로 위에 집에 사는데 지금 공사하고 있는 중이어서 자기들도 집에 못 지내고, 나도 초대를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말 우리 관계에 뭔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타이밍을 지지리 못 맞추는 건지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니 너무 즐거웠다.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며,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왔는 이야기 했다. 물론 남미에서의 에피소드도.
그리고 현지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도 있었다. 네덜란드는 대마초와 매춘이 합법인데, 이곳에서 며칠 지내다 보니 내가 여기에 산다면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생활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관광객의 입장이지만, 직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무 궁금해 이들에게 물어봤다.
벤은 “다른 나라에서 불법이지, 하지만 그곳에서는 음지에서 일어나, 그럴 거면 법으로 관리하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요즘은 너무 쫌 심각한 것 같아” 스테파니는 “이 두 가지가 너무 상품화되었고 특히 매춘에서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어. 그들이 일한 만큼 그 대가를 받지 못해”나의 질문에 둘 다 부정적인 대답을 주었다.
그렇게 나의 궁금증을 푼 후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네덜란드 가정식이었는데 솔직히 맛은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질문에 대한 스테파니의 대답은 정말 특별했는데 그 질문은 바로 ‘관계’에 관해서다.
이들을 처음 만나고, 다시 만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나도 누군가와 함께 긴 시간 여행을 해보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여행을 풀어나가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렇게 서로 여행하면 많이 싸우지 않아? 너희들은 그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갔어?"라고 내가 물으니 서로서로 얼굴을 보면서 웃다가 자기들도 진짜 대판 싸워서 끝낼뻔한 적도 있다고. 그러더니 스테파니가 대답을 했다.
“함께 여행을 하게 되면 볼 거 못 볼 거 다 보게 되고 서로의 바닥까지 보게 되는데, 그런 부분까지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사랑이고, 진정한 관계가 아닐까? 우리도 여행하면서 정말 심하게 싸웠던 적이 있었지만,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우리의 관계는 더 끈끈해진 것 같아.”
그리고 스테파니는 이 말까지 덧붙였다. "When you find someone you love, then you have to put lot of effort :p"
내가 보기에도 그 둘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이후 그들은 내게 "군대 마치고 꼭 다시 돌아와! 그땐 우리 집에서 잘 수 있으니, 그땐 더 재밌게 놀자!"라고 전하며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도 다시 이곳에 오고 싶다. 날씨 좋은 날 공원을 걸으면서, 맥주 마시며 이야기를 하며, 다시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2019.09.11
In Amsterdam, Nether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