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좋은날 재밌게 다녀와라
20살,
난 군대를 가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20살을 즐기기 위해 세계여행을 떠났고,
14살,
동생은 형의 여행 제안에
3주간의 생애 첫 유럽여행을 위해 떠났다.
영국 (런던,7일) - 프랑스 (파리,7일) - 스페인(바르셀로나,5일,마드리드,2일)
동생과 함께 떠날 때 든 생각과 기분
내 막냇동생에게 내가 보고 느낀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여태까지 정말 다양 한 걸 해볼 수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나에게 얘기한다
'네가 지금 받은 것들은 내게 돌려주려고 하지 말고 나중에 너 같은 후배들이나 사람들에게 배로 베풀어라' 그들은 절대로 자기에게 갚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저런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이 뭐 같은 세상이 돌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내가 받은 것들을 가장 가까운 가족, 그중에서도 내 막냇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나와 여동생은 어릴 때 삼촌이 계신 캐나다를 갔다 왔다. 하지만 막냇동생은 항상 타이밍이 안 맞아서 가지 못했고 그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 내게 그때 캐나다에 있었던 그 기억이 너무 행복했고 소중했었다. 그래서 언제 한번 꼭 동생에게 우물 밖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마침 그 기회가 왔다.
(이전 글 중-
여행을 떠나기 전 나름 이렇게 멋진(?) 포부를 안고 있었지만 정작 떠나는 당일의 기분은 너무 기분이 안 좋았다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해야 할까, 피곤에 절었다고 해야 할까, 거의 멘탈이 나간 상태였다. 동생은 몸만 가면 되지만 나는 동생도 챙기고, 내 세계여행 준비도 하랴 날아다녀야 할 정도였다.
원래는 새벽 5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여서 내 생각에는 전날부터 시작해서 새벽 2~3시까지 짐을 준비하고 출발하기 전까지 예매 못한 투어랑 교통수단 예매하고 프린터 해서 출발하면 시간이 맞을듯 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스웨덴 누나랑 여행일정때문에 통화한다고 조금 늦어졌다. 그러다 보니 씻고 떠나야 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 4시 즈음 가족들이 일어나서 북적북적거리는데 나는 예매한 표도 프린터 해야 하고, 씻고 준비하고, 짐도 마무리해서 다 넣어야 하는데 아빠가 옆에서 약 올릴 듯 말 듯 아직도 준비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냐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알고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왜 미리미리 하지 않았는지 화가 난 상태였다)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짐 싸랴 표 찾으랴 프린터 하랴 일정 정리하랴 한다고 정신이 없다고 하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 동생이 알아서 하게 놔두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
여행 가기 전부터 항상 내게 하신 말씀이 있다.
"네가 조금 힘들고 많이 기다려줘야겠지만 동생이 하자는 대로 하고 옆에서 지켜봐 주어라".
솔직히 나도 그냥 연석이(동생)한테 모든 걸 맡기고 싶다. 그런데 나도 아빠 밑에서 자라본 아들로서 가끔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아버지의 그런 자극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겨우 이제 20살, 14살한테 많이 바라면 뭘 그렇게 바라겠는가
한 예로 내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무전여행을 했을 때 아버지는 내게 정말 A~Z까지 무전으로 하길 바라셨다 (16살의 나는 그렇게 느꼈다).
진짜 '무전여행' 말 그대로 식당 가서 설거지 도와주고 밥 얻어먹고, 다른 사람들의 (지인들이 아닌) 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그런 여행을 내가 하길 원하셨다.
여행 중에 통영에 계신 큰 고모집에 갔었는데 고모가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하셨다.
통화의 목적은 잘 챙겨주라는 부탁이 아닌 잠만 재워주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놔두라고.
(솔직히 당시에는 웃고 속으로 우리 아빠는 어디 안가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서 "아직 어린 아들이 밖에 혼자 나가서 고생 많이 하는데 누나가 맛있는 것 좀 많이 먹여줘" 이 말을 정말 듣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물고기를 잡아다 입에 떠 먹여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 굶어 죽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걸.
이것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몸으로 배운 분이 아버지기에 그때도 물론 지금도 아버지 마음은 그 누구보다 이해하며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느낀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16살짜리가 무전여행을 떠나 히치하이킹을 하고 맥도널드에 자고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항상 조금 ‘더'를 원하시는 것 같다.
이번 동생과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계속 아버지는 내게 동생이 비행기표부터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거 자고 싶은 것들 스스로 예매하고 할 수 있게 해 줘라. 너는 그냥 옆에 있어주면서 정말 위험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줘라 하고 하신다.
이해한다 아버지의 마음을. 나도 그러고 싶고.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아직 꿈보다 오버워치가 더 좋고, 여행보다 pc방이 더 좋은 중학교 1학년 짜리한 테 그걸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 아닌가 싶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를 돌아보면 유럽에 갈 생각도 못했을 것이고 형이랑 같이 간다 해도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동생에게 바라는 점은
나는 아버지의 의견도 존중하고 전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그냥 이 여행은 ‘이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고 사는 사람이랑 모르고 사는 사람이랑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물 안의 개구리가 그렇게 위험한 것이다.‘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행동한다’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작년에 스웨덴 누나랑 같이 여행했을 때 정말 부러웠던 게 일단 뭐든지 할 줄은 안다는 것이다.
그게 수영이 되었든 목공이 되었든, 잘하든 못하든을 떠나서 할 줄을 안다는 걸 그걸 경험해 봤다는 것이고 인생에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바람이 있다면 (이것도 욕심이겠지만) 딱 2가지이다. 한 가지는 이때까지 살아온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즉 절대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지 말라는 것. 두 번째는 자기가 받은걸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이 두 가지이다.
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점
그리고 스스로에게 원하는 건 이번 여행에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정말로’
이전에 아버지랑 남미를 여행할 때도 스웨덴 누나와 한국을 여행할 때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들을 너무 많이 놓쳐버린 듯하다.
오늘도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바빠 죽겠는데 동생은 누워서 유튜브 보고 있으니 순간 돌아버릴 거 같았다.
하지만 화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분 좋게 가족들과 인사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 아닌가, 내 손가락에 새긴 그 말뜻처럼 부드럽게 대하려고 최대한 노력하였다.(그럼에도 쉽게 되지않더라).
어떤 사람이랑 다시 여행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 똑같은 경험과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우리는 '감정'이라는 걸 가지고 사는 동물이기에 매 순간, 매초 다른 세상을 보고 느끼지 않은가.
그래서 동생이랑 함께하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들을 정말로 진심으로 재밌게 즐겼으면 좋겠다.
앞으로 살아나갈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갈 때 이 여행의 사진을 보거나 이야기를 할 때 웃으며 추억할 수 있고 또 그 추억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얻어 인생이라는 강을 헤쳐나갈 돌다리로 동생에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연석아 형과 함께 여행을 가주어서 정말 고맙다!
출국날 아침에 토익 결과가 발표돼서 공항 가는 버스 안에서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나와서 조금 어이가 없다.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어제는 밤 세고 피곤에 찌들어있었는데 마지막 출국 전 할머니께 전화드리니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여행도 가고 시험도 붙고 이 좋은 날 재밌게 다녀와라”
그래 나는 왜 이렇게 좋은 날 혼자 심각하게 있었을까. 이 좋은 날 이 다시 오지 않은 날 즐겨도 모자랄 판에 할머니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