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주어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 내 동생
드디어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여행이 끝이 났다. 무슨 일이든 끝이 없겠냐만은 정말 런던부터 시작해서 파리,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총 4개의 도시들을 이동할 때마다 게임 캐릭터과 되어 다음 스테이지를 깨러 가는 기분이었다.
초반에 런던에서 몸살도 났고(일하랴, 철인 3종 하랴, 토익 치랴, 여행 준비하랴 몸이 이때까지 버텨준 것만 해도 신기했다)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즐기자고 했던 약속을 지켜서 너무 좋다. 지금 여행을 마친 이 순간 후회는 단 1도 없다.
여기서 후회가 없다는 뜻이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해서 후회를 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그 사람 많은 곳에서 정말 아무 탈 없이 이 여행을 끝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물론 주변에서 정말 많은 도움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고 동생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행 중 멘탈이 나가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굳이 안 와도 되는 이 곳을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왔는데 여행 내내 옆에서 동생이 유튜브 보고 게임하고 해도 (물론 옆에서 이야기는 해줬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걸 찾아보라고) 그냥 지켜보았다. 내가 강에 함께 올 수는 있겠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단순히 나와 동생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서로서로에게 ‘믿음’이 있다는 것 같다. 나도 정말 방황했을 때 (어느정도였나면 부모님이 내가 가려고 하는 앞길을 항상 막는듯했다) 부모님은 조언은 해주셨지만 큰 터치는 안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나와 부모님의 관계에는 '신뢰'가 존재한 것 같다.
한 예로 작년에 스웨덴 누나와 함께 여행을 끝내고 얼마 후에 아버지랑 단둘이 친할머니 댁에 갔다 왔는데 그때 아버지한테 누나랑 여행한다고 할 때 어떻게 승낙했는지 물었다. (만약에 내 아들이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았고 재작년에 유럽에서 4일밖에 함께 지내지 않은 누나와 와 1달 넘게 함께 여행한다면 나 같아도 미쳤다고 할꺼같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자식은 조건을 보고 믿는 존재가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믿어줘야 한다고, 그게 부모가 해줘야 할 일이라고’ 이 말을 듣고 어느 책에서 본 그 구절이 떠올랐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줘야 할 것은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언젠가는 그곳에서 화사한 꽃이 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을.'
이처럼 인생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믿어주고 기도해주고, 또 내가 조언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나의 뒤에 있다고 느끼며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또한 인생의 멘토와 꼰대의 차이는 이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도움을 요청할 때 도움을 주어야지 진정한 도움이지 자신이 조금 더 안다고, 조금 더 살았다고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하는 건 꼰대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고도 그냥 단순하게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뭘 했는지 바꾸어 생각해봐도 12살짜리한테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같다. 건강하게 아무 탈 없이 따라와 주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닐까.
그래도 두 가지는 계속 알려주려 했다. 먼저 바로 ‘책임’을 지는 것. 물론 나도 잘 못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법은 연습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행 중 최대한 식당을 가더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식당을 가고, 길을 찾더라도 자기가 가자는 대로 가고, 음식을 주문할 때도 자기가 먹고 싶은 것 시키게 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항상 선택을 할 때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선택을 하고 나서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 어떤 핑계를 되어서도 안된다. 선택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되 그 선택을 한 사람은 결국은 너 자신이 해야 하며, 절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 마라'
두 번째는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는가이다. 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게 태어나서부터 그게 꿈이 되었든, 돈이 되었든 , 사랑이 되었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매 순간 원하는 게 다르며, 그것을 얻는 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근본이란 2가지이다."내가 이걸 진정으로 원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내가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카드 패 중 낼 수 있는 최선의 카드는 무엇인지 아는 것 '이다.
한 예로 길을 걷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가게에 들어서서는 말을 못 해서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주문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나는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정말 먹고 싶으면 말이 안 되더라도 단어를 인터넷에 찾아보고 점원과 대화를 시도해도 안될 때 형한테 도움을 청하라고. (뭐 결론적으로는 동생은 아이스크림을 못 먹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단지 한 순간 편하다고 물고기를 입에 물려서 나중에 굶어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남들이 보기에는 고작 12살에게 너무한 거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내가 너무 힘들게 배운 인생의 지혜를 이렇게나마 조금씩 몸으로 배우게 하고 싶다. 몸으로 배운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여행이 나중에 나이가 들어 맛있는 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할 때 서로 ‘형이 그때 그랬지, 네가 그때 그랬지’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함께 해주어서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 내 동생 연석아.
이렇게 이번 세계여행중 가장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던 여행이 끝났다. 이제 오로지 나의 20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즐겨야겠다.
- 스웨덴 누나를 다시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