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와 셀린, 그들과 함께 빈을 걷다

<오스트리아- 빈, 비포 선라이즈>

by 케빈

작년 스웨덴 누나와 함께 여행하기 전, 내가 정말 좋아하고 또 나처럼 여행을 사랑하는 민식 형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형, 만약 누군가와 함께 여행한다면 형은 어떤 여행을 하고 싶으세요?”

형은 대답 대신 내게 한 영화를 추천해주셨는데 , 그 이름이 바로 ‘비포 선라이즈’이다.


영화의 흐름은 이렇게 단순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별게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 대화로 시작해 대화로 끝나는 영화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지루할 틈이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남녀가 기차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다 계획에 없던 여행을 같이하게 되었다는 게 이 영화의 스토리이다. 그렇게 기차 안에서의 첫 대화부터 헤어질 때까지 나누는, 이들만의 대화를 지긋이 보고 느낀다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편이 아니라, 이후 나온 비포선셋, 비포 미드나잇까지 총 3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시리즈이다. 시리즈가 나이를 먹으면서, 배우들도 같이 늙어간다는 게 너무 재밌었고, 이점에서 영화의 매력은 배가 되었다.

Alt&Neu


이곳, 오스트리아 빈이 바로 비포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 된 곳이다. 사실 빈에 올 때까지만 해도 영화 촬영지를 갈 계획은 크게 없었는데, 빈이 워낙 작아, 지나가는 길에 대부분 방문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영화에서 제시와 셀린느가 함께 노래를 들었던, 바로 그 레코드실이었다.


레코드 샵을 들어가면 벽에 붙여져 있는 포스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포스터는 마치, 이곳을 잘 찾아왔다고 이야기 하듯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실 영화에서 나오는 청취실은 영화만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그래도 실망하긴 이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입구 옆에 lc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기 때문이다.

청취실은 없지만, 포스터가 반겨준다

그렇게 그 앞에 서서 머뭇거리다, 직원분께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왔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꼭 한번 비포 선라이즈 노래를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라고 물어봤다. 직원분은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lc판을 꼽아주시고, “재밌게들으세요!”라는 달콤한 한마디까지 덧붙여 주셨다.


헤드셋을 귀에 대고, 노래가 나오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Kath Bloom - Come here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영화에 나온 장소에서, 그 영화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듣는다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눈을 감고 '그 순간'을 즐겼다. 영화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고, 누나와의 여행이 떠오르기도 하고, 제시와 셀린의 대화가 그려지기도 했다. 혼자 추억을 그리고 있으니 노래가 끝나 있었고, 한 번으로는 도저히 아쉬워 두 번 들었다.


그리고는 이 아름다운 추억을 ‘또렷이’ 기억하고 싶어, 막 떠나려던 순간이었다. 직원분이 오셔서 “뒷면에 있는 곡도 들어봐!,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정말 좋은 노래야”라고 하셨고, 눈앞을 보니 벌써 lp판은 뒤집혔고, 내 두 손에는 헤드셋이 다시 쥐어져 있었다.


다른 곡을 들으면, 나의 기억이 흐려질 거 같아, 나가려 한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노래를 듣고 있으니 직원분께, 스스로에게 고마워했다. ‘안 나가길 잘했어’ 첫 번째 노래로 나의 추억을 회상하고 즐겼다면, 두 번째 노래를 들을 때는 이곳 빈에서의 나의 기억을 노래 위에 살포시 얹어 놓았다. 오스트리아에서 도착해서부터 만난 많은 사람들, 내 인생 최고의 초콜릿 케이크이었던 자허도흐, 나의 친구 데이비드와의 대화 등.


그렇게 두곡의 노래를 듣고, 이곳을 나오고 있자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내가 영화에 들어온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


이곳의 추억은 , 마치 맛있는 커피라는 ‘추억’ 위에 달콤한 '친절’이라는 휘핑크림을 올려주는 아인슈페너처럼 기억될 것이다.


2019.10.08

In Wein, Austria



둘이 함께 손금을 본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