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P막 에피소드-나도 쿠팡알바한다.

40대 여자의 인생 P(현재) 막 일상다반사

by 작소정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아니 내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나조차도 몰랐다. 내가 갈 곳이 없어 쿠팡에서 일용직으로 일할 줄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써주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막연히 그래도 내가 갈곳 한 곳은 있지 않나 했다. 왜냐면 한 곳이니까. 마치 내 남자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처럼. 왜냐하면 한 명이니까.


사실 자존감이 너무 많이 깎인 것도 사실이다. 나의 열정이 식은 건지 사실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긋지긋하다고 해야 하나? 회사 경영악화를 핑계로 가장 쉽게 잘리는 것도 내 위치였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내 위치. 물론 내가 크게 잘못을 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아니라도 말이다. 이번회사에서도 그랬다.


나이의 벽에 막혀 패션디자이너로 살 수 없고 의류프로모션디자이너라는 디자이너가 아닌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가 나에게 온 디자이너의 마지막 기회 같은 생각에 면접 때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많았음에도 눈귀를 닫고 일하기로 했다. 그런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그녀는 나르시시스트였고 온갖 거짓말과 모함으로 나를 쓰레기를 만들었다. 참다 참다 팀을 옮겼지만 그 팀 역시 온전치는 못했고


하루하루 시달리던 나는 결국 퇴사를 했다.



더 어이없는 건 퇴사 며칠 후 바뀐 팀에 막내직원이 뜬금없이 온갖 욕설과 나를 비난하는 카톡을 보내왔다. 순간 멍했다. 나에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의 회사생활이었는데 위로는 고사하고 이런 몹쓸 카톡을 받으니 화도 안 났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방황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 눈뜨면 술을 마시고 멍한 상태로 지냈었다. 나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바닥인 상태로 퇴사를 종용받은 건데 그런 톡을 보니 진짜 그 애 말이 다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쓰레기가 맞았고 그래서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당연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에 하루하루 시간을 낭비하며 지냈다.


이러다 보니 자존감은 바닥이고 이제 그만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가야 하는 돈은 정해져 있어서 지금 일이 아니면 이 정도의 돈을 주는 곳이 없다. 싱글이라도 부양해야 하는 사람이 있고 돌봐야 하는 존재도 있고 아직도 월세를 전전하다 보니 나가는 돈이 상당하다. 물론 겨우 빠져나온 반지하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살면서 나에 대해 파악한 부분 그리고 의사도 추천한 부분은 환경에 너무 지배를 받는 난 삶의 우선순위를 집으로 두라는 충고를 받았고 거기에 동의한다.

얼마 줄이겠다고 반지하나 환경이 좋지 않은 곳으로 가는 건 병원비가 더 들었다. 그걸 몇 번 깨닫고 나선 외톨이가 되는 걸 선택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월세에 올인했다. 엄청난 좋은 집은 아니라도 나에게 그나마 덜 우울할 수 있는 집이라 그나마 다행이고 만족한다. 사실 강아지 프리미엄이 붙어서 일반 집보다 컨디션이 보통인데도 비싼 건 사실이다. 반려견도 월세를 내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 그간 했던 많은 일들 덕에 빚은 쌓였고 디자이너 한답시고 박봉에 시달렸던 세월도 꽤 되다 보니 모으긴 고사하고 빚만 남았다. 그 말인즉슨 숨 만 쉬어도 그게 빚이란 소리인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백수기간은 나에게 엄청난 빚을 안겨주었고 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상황에서 공황 따위나 온 내가 한심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상황에서 공황이 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안도했다.


사실 3년만 버티면 그간 나를 짓눌렀던 빚도 조금씩 정리될 것이고 조금은 숨통이 튀어질 것이라는 나의 계획이 있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그게 너무 일찍 와버렸다.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정말 악착같이 치열하게 살았다. 디자이너였음에도 그 흔한 옷도, 옷은 고사하고 남들 다 시켜 먹은 짜장면 한번 시켜 먹는 것도 부담스러운 내 현실이 너무 서글펐다. 이런 삶이 계속되는데 공황이 안 오고 베기냐고.


그렇게 불안감에 휩싸여 이러다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에 병원을 가서 상담을 받고 약도 받았다. 꽤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의사의 말에 앞이 깜깜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렀다. 회사에 지원도 꽤 했지만 어느 곳에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날도 정말 우울했던 날이었다. 또 보기도 무서운 뜬금없는 카톡이 왔다. 전회사의 원팀의 막내에게 온 카톡이었다. 나로 인해 너무 힘든 회사생활 버틸 수 있었다는 너무 감사하다는 장문의 감사카톡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밝은 빛이 보였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나는 똑같은 행동을 했는데 누군가는 욕을 하고 누군가는 감사하다고 한다니…


참 인생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다. 내가 쓰레기라는 가스라이팅에서 조금은 한꺼플은 벗어난 기분이었다.

우연인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슬슬 면접을 볼 기회도 얻었지만 역시나 나이와 연봉이 문제였다. 그 연봉을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고 결국 나는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연봉을 깎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인생 반 살았는데 벌써 일할곳이 없는 나이가 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결국 정해진 돈의 바닥이 드러나고 당장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왔다.

어쩔 수 없이 일일알바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있는 건 결국 쿠팡뿐이었다. 다른 일일 알바들은 거의 집과 2시간 거리에 물류가 있는 게 대부분이다 보니 그나마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쿠팡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알바몬에서 지원을 했는데 뜬금없이 야탑쿠팡에 출근하라는 답변이 왔다. 너무 먼 곳이라 그랬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유튜브를 찾아봤다. 정말 악명이 높았다. 거의 상하차를 방불케 하는 작업 난이도에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출근한 첫날 갑자기 혈압을 재라고 하는 거다. 어제 맥주를 먹고 잔 게 생각이 났고 아니나 다를까 수축기혈압이 102가 나왔다. 100부터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했고 설마 진짜 그럴까 했는데 30번을 재도 102에서 내려가지 않아 결국 귀가 조치를 받았다. 차비를 준다곤 했지만 어이가 없었다.

되는 일이 없으니 남들 다 하는 쿠팡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도 났다.


그런데 막막함에 절망하던 중에 쿠팡까지 막히면 너무 절망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에 오기란 게 생겼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쿠팡은 캠프와 센터가 있고 일의 강도가 높은 캠프는 시급이 높고 프로모션행사가 있지만 센터는 기본급이지만 일의 강도가 너무 높지는 않고 쿠펀치라는 앱을 통해서 신청하면 된다는 걸 알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울쿠팡으로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진짜 출근확정 톡을 받았다. 너무 기뻤다. 출근 전날엔 맥주도 먹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혈압은 정상이었다. 다행히 오전반이라 혈압을 재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쿠팡부업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유튜브를 열심히 정독하고 마스크, 물, 물티슈, 한입거리간식을 호주머니에 넣고 터치가 가능한 장갑도 챙겨갔다. 쿠팡에 도착해서 쿠펀치앱에서 출근등록을 하고 쿠팡와이파이 연결 후 체크인을 하고 신입교육장으로 들어갔다. 짧은 교육을 듣고 입고센터로 이동을 했다. 첫날은 택배온 업체 물건을 풀어서 수량체크 후 입력하는 일을 했다. 일이 어렵진 않았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정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고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게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 오후 일이 시작되었다. 오전에 했던 일의 반복이었고 그나마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서 금방 시간이 지나간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다시 쿠펀치에서 와이파이 연결 후 체크 아웃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9시간 일하고 점심시간 빼고 세금 떼고 8만 원이 안 되는 79520원을 받았다. 너무 슬펐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입에서 단내가 나게 일을 했는데 이 돈으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단 게 너무 슬펐다. 오전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을 해도 이 돈뿐이고 그 후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이 될 수가 없었다. 걷기도 힘든 상황에서 무슨 알바를 더 한단 말인지… 결국 이 쿠팡일이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시간당 단가가 너무 적다 보니 생활을 할 수 없고 알바든 뭐든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체력이 바닥이 나게 일을 하다 보니 퇴근 후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니 막막했다.

결국 내일을 빨리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쿠팡으로 생활비를 보탠다는 개념인 거지 이걸로 생활을 할 순 없다.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가려고 이리저리 면접을 보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전보다 연봉을 다들 깎으려고 난리고 내가 일을 하기 위해 결혼을 안 한 게 아닌데 혼자 산다는 것 때문에 아이들 있는 사람들보다 야근을 더 해도 되겠다면서 좋아했다는 게 소름이 끼친다. 애가 있으면 야근시키면 지탄을 받으니 아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그들 몫까지 야근을 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소름이 끼친다.


사실 혼자라는 의미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내가 느끼기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거다. 쿠팡을 다녀와서 아픈 허리에 파스를 붙여줄 사람이 없다는 서러움과 영화 남극일기에 마지막 장면처럼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혼자 걸어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무례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다들 그 나이에 일 시켜주는 게 어디냐며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고 한다. 결국 나는 연봉도 깎이고 모자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에 쿠팡을 뛰어야 할 것 같다. 나이 먹는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눈도 안 보이고 온 뼈마디가 아프고 손도 저리고 머리도 안개 낀 것처럼 아픈데 월급도 깎이고 일은 더 많아지는데도 감사한 마음으로 소처럼 일해야 하는 너무 서러운 인생을 사는 것 그게 나이 먹는 건가 보다.

오늘도 서러운 마음에 열심히 나를 채용해 달라고 설득을 하며 면접을 보며 상처를 받고 내일은 아침부터 79520원을 벌려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쿠팡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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