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의 인생 P(현재) 막 일상다반사
회사를 퇴사 당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연봉도 오르고 그렇게 바랬던 디자인실로 다시 복귀도 하고 심지어 집도 가깝고 일도 재밌어서 퇴직할 때까지 일하리라 결심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바람은 금방 깨졌다. 아부 같은 건 하지 못하는 내 성격상 아부를 하고 살랑거려야만 살아남는 상사가 있는 회사의 구조는 나를 미치게 했고 나도 남도 다 아는 일을 말도 안 되는 상사 본인의 업적이라고 거짓말하는 걸 들으니 속이 메슥거리기까지 했고 심지어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감춘다 한들 상대방도 그걸 느꼈고 소위 난 그 사람에게 찍혔고 얼마나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릴 하고 다녔던지 내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하루하루 지옥이었고 나는 점점 죽어갔고 결국 퇴사를 했다. 아니 당했다.
처음 퇴사를 하고 멍한 마음에 매일 누워서 지난날을 후회했다.
20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도망가듯이 서울로 혼자 와서 영양실조까지 얻으면서 아등바등 거의 30년이 다돼 가도록 살았지만 이렇게 돈도 없이 매일 후회만 하며 사는 인생이 된 게 너무 한스러웠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그저 나이 많은 아줌마인데 직장도 아이도 남편도 집도절도 돈도 친구도 아무것도 없고 빚만 있는 진짜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어있다는 게 눈물 나게 슬펐다.
어린 시절부터 그저 맞딸로 징징대는 어리광 없이 일찍 철이 든 어른아이로 살아온 나는 항상 부모님 대신이었다. 내 안은 사춘기로 생각이 혼돈의 카우스였지만 내색할 수 없었고 아직도 엄마는 나는 사춘기 없이 지낸 딸로 생각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난 나이 많으셔서 세상이 많이 서투신 부모님 대신이었고 내 가정통신문, 동생 가정통신문 모두 내가 읽고 도장 찍고 가져갔었고 고3 때 부모님 면담시간에는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할 말을 일러주기도 했다. 심지어 동생 고3면담은 내가 갔었다.
여전히 엄마는 모든 걸 내게 의지하시고 얘기하시고 해달라고 하신다.
어느 날은 농담으로
“네가 내 엄마 같다”
라고 하셨다. 눈물이 날 듯 슬퍼 꾹 참았다.
왜냐면 나도 모든 걸 얘기하고 의논도 하고 투정도 가끔 부릴 수 있는 엄마가 갖고 싶으니까….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묘한 피해의식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님 대신해서 살아왔고 힘들게 혼자서 꾸역꾸역 살아온 걸 주위 사람들이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20년이 지나서 들은 얘기인데 20대 때 친구네 집들이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다 같이 음식을 준비하던 와중에 나는 집에서 일도 너무 많이 하고 음식도 너무 많이 하니까 오늘은 쉴 거라고 말하고 소파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순간 깜짝 놀랐다. 그렇게 무례한 행동을 내가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아마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벌써 집안일이며 일이며 모든 걸 다 내가 하는 나를 주위에서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못했을 때는 오히려 서운함을 느끼고 손절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는 지금까지도 주위를 돌볼 여력이 없다. 매일 가족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마치 아이를 키우듯이 어릴 때부터 항상 가족을 돌보다 보니 주위에 가족이나 지인들을 돌볼 여력이나 돈이나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너무 편한 친구들이니 나를 이해해 줄거라 생각하고 그 따위 말까지 했었던 것 같다. 처음이야 나를 이해해 주고 안타깝게 생각하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멀어져 갔고 나 역시도 그들을 만나서 시간과 돈을 쓰는 게 버거워졌고 그 결과 지금은 혼자다.
이렇게 살아온 세월을 되돌아보다 보니 후회밖에 남지 않았고 그렇게 주위 사람들 다 손절까지 할 인생이었으면 돈이라도 열심히 쫒을걸 그 꼴사나운 디자이너 한답시고 박봉에 살았던걸 생각하면 진짜 멍청한 내 인생이 한심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나를 돌아보면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미숙한 삶을 살았던가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럼 과연 앞으로 남은 내 절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정말 절망과 슬픔 속에서 술만 먹고살았다. 심지어 빌린 돈은 떨어져 가고 기댈 곳은 없고 고민을 털어놓을 곳도 없고 면접은 고사하고 오라는 회사는 없고 하루하루 절망뿐이었다. 또 내 인생은 이런 식이 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원망까지 들었다.
그렇게 술만 마시다 통장 잔고를 보니 이러다간 진짜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에 일용직이라도 열심히 찾았더니 쿠팡이 보였고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핸드폰을 봤더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두 개나 와 있었고 면접을 보자는 전화였고 다음날로 면접일정을 잡았다. 남은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은 기분이었다. 다음날 두 곳 모두 면접을 봤고 결과는 다음날 알려준다고 했다. 다음날 할 수 없이 결과를 기다리느라 쿠팡을 쉬었는데 하루가 정말 지옥이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연락을 기다리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불안함에 안절부절못하면서 나름 충격을 덜 받기 위해서 안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시뮬레이션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걱정된 동생에게 전화가 왔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한마디 했다.
“불안해서 기다리나 할 일 하면서 여유롭게 기다리나 기다리는 건 똑같고 결과도 같은데 왜 불안하면서 기다려?”
너무 당연한 얘기였는데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어린 시절 아빠가 배를 타시던 때에 배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도 즐겁게 밖에서 놀고 집에 돌아왔는데 웃으면서 들어오는 나를 보고 엄마가 아주 많이 혼내셨었다. 아빠가 안 좋은 일이 있으신데 너는 왜 혼자 기뻐하냐고 가족 맞냐고….
그날 이후로 난 집이나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항상 기분을 안 좋게 가졌었다. 그게 오래되다 보니 나는 안 좋은 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밥은 고사하고 음악도 영화도 그 어떤 즐거울 수 있는 일은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마 나에게 아주 충격적인 가르침이었기에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 밤이 기억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랬다. 나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울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게 길러졌었고 지금도 역시 그랬다. 어차피 똑같은 시간이고 똑같은 기다림인데 그걸 그렇게 굳이 우울해하면서 있을 필요가 없었는데 왜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면서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답게 살지 못하고 어른 아이로 살다 어른이 되다 보니 이렇게 매일 우울하고 힘들었었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다 과거인 것인데 나는 여전히 그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아이 시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시절에 머물러 있어서 세상 사는 게 너무 미숙했지 않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동생과 전화를 끊고 못 먹었던 밥을 먹고 강아지 산책도 하고 밀린 넷플릭스도 보고 아주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회사들에서 연락이 오진 않았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나의 하루는 평온하게 잘 쉬며 흘러갔고 결과는 안 좋았지만 이력서를 다시 냈고 다음날 쿠팡을 신청했고 다행히 일하라는 톡을 받았다. 그러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 백수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해하든 즐겁게 보내든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거고 돈 못 버는 것도 같은 데 굳이 그렇게 고통스럽게 나를 학대하며 지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간단한 걸 깨닫는데 50년이 걸렸다. 뭐 동생의 전화 한 통으로 그걸 깨달은 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안해만 하기 전에 쿠팡이라도 시작한 용기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쿠팡을 가고 면접을 보고 백수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전처럼 그렇게 불안하진 않다.
급하게 아이에서 어른아이가 된 어린 시절의 내가 드디어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나이가 먹는다는 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작은 깨달음을 얻고 욕심 냈던 많은 것을 내려놓고 한 발 한 발 천천히 나아가는 것. 그리고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