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의 인생 2막 성장 스토리
곧 80이 되시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살아온 인생에서 후회되거나 아쉬운 게 있어?”
“나는 딴 거보다 아껴서 산다고 굶는 것도 아닌데 너희들한테 메이커 옷이나 비싼 음식 못 사준 게 그렇게 후회가 되네.. 아껴서 살았다고 해서 지금 떵떵거리고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궁상떨고 살았는지….”
난 사실 엄마가 더 배우지 못한 것 혹은 여행이나 뭐 그런 것들로 후회하지 않으실까 했는데 역시나 후회되는 일은 자식들에 관한 것이었다.
난 지금 무엇이 후회되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보면 모든 게 후회가 된다.
어릴 때 배우고 싶은 미술을 배우게 해달라고 떼쓰지 않았던 것도 후회되고 고3 때 수능을 망치고 재수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시는 엄마를 설득하지 못한 것도 후회되고 쓸데없이 창업한답시고 작은 회사만 골라 들어가서 커리어를 엉망으로 만든 것도 후회되고 돈에 관심 없던 것도 후회되고 사람관리 못한 것, 사람 보는 눈이 없던 것 등등 모든 일이 후회되는 일들뿐이다.
벌써 인생에 반은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후회되는 인생만 살아왔을까? 최소한 주위사람들은 결혼해서 애도 낳고 인스타를 보면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대체 그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그렇게 좋은 집에, 차에 행복에 겨워 살 수 있는 걸까?) 나는 회사도 잘리고 취직도 못한 채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너무 소름이 끼치게 싫다.
요즘 면접을 간간히 보고 있는 중이다. 정말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게 절망스럽다. 그래서 내가 20년간 살아온 내 커리어를 정리한 서류인데 그걸 보고 사람들은 내 커리어를 비방한다. 내가 살아온 삶을 비방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회사를 퇴사한 거였고 신규회사에 들어가는 일이 많다 보니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일을 못하거나 월급루팡으로 살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난 열심히 살았고 치열하게 일했었다. 그런데 그 내 인생을 한순간에 거부당하는 느낌이 들 때면 화가 나기까지 한다. 내 연봉을 깎으려고 내가 했던 일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과는 별개로 내 커리어를 깎아대려고 할 때면
“당신이 내가 살아온 세월을 알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서 나를 이런 취급하지?”
라고 정말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뛰쳐나오고 싶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를 판단할 수 있는 건 딸랑 한두 장의 이력서이니 이해하려고 해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나의 인생을 그저 별 볼일 없는 타인 중 한 명의 허잡한 삶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그 인생은 결국 내 세상이다.”
남들은 내 이력서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나를 판단하고 비판하고 무시하지만 그 이력서 너머에 내 인생은 진짜 치열했다. 그 치열했던 내 세상을 몇 줄의 이력서 따위로 판단한다는 건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다. 분노하기조차도 힘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럼 이런 취급을 안 받으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새로운 일을 찾아서 새롭게 배우고 네임드 회사에 어떻게 해서든 들어가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다시 대학원이든 유학이든 다시 공부하고 디자이너로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걸까?
머리가 복잡했다. 진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그거 하나만 보고 규모가 작던 월급이 작던 마다하지 않고 디자인을 시켜준다고 하면 감사히 일했었다. 물론 그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난 그 외에 다른 많은 일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과는 상관없는 생산에 관한 일들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상 바빴다. 생산과 디자인을 병행하고 플러스로 예전에 그래픽 디자이너였다는 이유로 무료로 그래픽 디자인까지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내게 디자인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주말이나 퇴근 후를 이용해서 디자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를 갈아 넣어서 일을 하고 나면 나중에는 디자인이고 뭐고 정말 회사가 꼴도 보기 싫어지고 출근지하철이 사고가 나길 기도하게 되었다. 진이 빠진 난 정말 살기 위해서 회사를 관두었고 몇 개월을 정말 시체처럼 쉬기만 하다 다시 회사를 들어가고를 반복했다.
“내가 문제인 걸까? 회사가 문제인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이력서 몇 줄이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모든 걸 바꾸고 싶다. 정말 어떻게 해서든 유학을 가고 어떻게 해서든 네임드 회사에 들어가고 최소한 내 프로필에 단 한 줄이라도 사람들이 알만한 회사에서 일한 경력 하나쯤은 적고 싶다.
거래처 미팅 때 어디 출신이라는 말 한마디로 “ 아 거기 다니셨구나. 누구누구 아시죠? 저도 같이 일했었어요. 여기서 만나다니 반갑네요” 로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이 모든 건 아마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회사로 증명하고 싶은 건 아닌 걸까”
그렇게 따진다면 네임드가 없는 회사를 다닌 사람들은 나를 증명할 수 없는 걸까? 나 같은 사람들의 인생은 의미가 없는 걸까? 아니 이건 인생이 아닌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배를 타시다가 퇴직 후 이름 없는 회사를 30년 가까이 다니시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삶도 가치 있고 회사도 아닌 그냥 가게에서 30년 넘도록 용돈정도되는 월급을 받으며 월급 한번 올리지 못하시고 묵묵히 일하셨던 어머니의 삶도 가치 있는 삶이다. 그건 내가 보증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하찮고 별 볼 일 없이 느껴지는 걸까? 부모님은 본인들의 삶을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두 분 모두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특히 아버지는 80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으셨고 어머지 또한 돈을 적게 받았을지언정 그 돈을 받았음에도 그것보다 3배는 더 가치 있게 일해주었다는 자부심이 있으셨다. 돈을 적게 받아서 억울하다는 얘기를 하지도 80이 다 돼 가도록 일만 해야 한다는 억울함도 얘기하지 않으셨다.
내 커리어에 대한 부끄러움을 어쩌면 나 스스로 내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니 순간 머리가 띵했다.
“모든 건 나 스스로 만들어 낸 지옥인 것이었다.”
말 그대로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이 몇 줄 이력서에 쓰여있는 나를 평가한다고 한들 나 스스로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내 인생이 가치 있었다고 믿는다면 어쩌면 내 지옥은 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티브이에 진서연이란 배우가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를 딸처럼 생각하고 대해주라고. 딸에게 하듯이 좋은 걸 보여주려고 하고 좋은 걸 먹이려고 하고 잘 보살펴주라고….
난 평생을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살아왔다. 부모님을 위해, 동생을 위해….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나를 보살피는 법을 잘 모른다. 타인을 위해서는 기꺼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시간을 할애하지만 나를 위해서 쓰는 시간은 아까워한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지만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하면서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천국도 지옥도 다 내가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만든 지옥에 살면서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 내 일, 내 환경 탓을 한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머릿속에 안개가 싹 걷히는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무언가를 할게 아니라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는 것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인정하고 수고했다고 칭찬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오늘까지 살아오느라 너무 수고했다.”
는 말을 처음 나에게 건네면서
나 자신을, 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 2막의 다섯 번째 버킷리스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