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감각이 사라졌다.
코로나... 2월 아이들과 마스크를 쓰고 힘겹지만 정겹게 공부하던 그땐.
아슬아슬 하루하루 버티며 학기말 방학을 무사히 맞이할 때까지만해도.
우리 중 아무도 이 긴 시간을 예견하지 못했다.
1학년 부장교사를 하며
1학년 학부모 교육을 하며
8살의 선생님이었고, 엄마였고, 그 어머니들의 동지였다.
열심히도 살았군...
그러다 문득 돌아본 내 아이.
니 곁에 엄마는 없었구나...
마음 한 켠이 갉아진다.
너무도 쓰라려,
올 한 해는 너만 바라볼게.
선생님 말고, 네 엄마만 할게.
휴직신청 마지막 날, 멋지게 교무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찾아온 나의 휴직.
이토록 휴직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을까?
나의 육아휴직 = '육아만 하는 휴직'이 되어버렸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누구에게 원망도 할 수 없는
육아만 하는 휴직.
두달까진 껴안고 뒹굴며 눈만 마주쳐도 좋았던 우리.
엄마가 온전히 너만 바라본 게 언제였던가?
많이 미안해. 올 한 해는 널 위해 살게.
기약없는 매일이 길어지자
난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채,
또 다시 내가 엄마임을 잊어간다.
아니, 잃어버렸다.
내 복에 무슨 내 삶이 있으리오.
한탄은 고스란히 내 앞의 아이에게 탄식으로 돌아간다.
너만 바라보며 산다는 게
나를 버리겠다가 아니었음이 들통났구나.
난 나를 버리지 못하는 이기적인 덜 자란 엄마라
내 삶이 너무도 고파, 이리도 탓할거리를 찾아 먹어치우나보다.
핸드폰이 울린다.
발령동기이자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져오는 나의 친구.
오랜 시간 힘겨웠던 학교생활 서로 위로가 되어주던 동지.
난 신규 때 네가 사표를 몇번 째 서랍에 넣어뒀는지도 알고 있지...
어쩌다보니 터전의 거리도 멀어지고
각자 육아와 일이라는 삶을 견뎌내다 보니
1년에 두 번 애를 안고라도 만나는 게 우리의 그래도 눈물겨운, 그나마의 우정.
아이가 잘못 눌렀나보네.
가끔 그래도 문자는 주고 받지만 통화를 하진 않으니깐.
"여보세요?"
"잘 지내?"
"....? 잘 못 건거 아니야?'
"뭐? 오랜만에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한거거든. 코로나 때문에 더 보기도 힘들고"
내가 원래 이리 말이 없는 사람이던가?
대답마저 꽉 메인다.
"어제 우리 단톡방에 문득 보고싶다는 네 글을 보니 ...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보고싶다."
그만! 나 못 참겠다.
알잖아? 웃음도 눈물도 너무 많은 중간 없는 나의 인간미.
언제 어린 아이 때문에 전화를 끊어야할지 모르는 내 친구. 내 동기. 내 동지...
토해내다시피 쏟아냈다. 나의 말을... 나의 마음을...
듣고 있던 친구의 한마디.
"나도 그래~"
후두둑 내가 쏟아졌다.
솟아오르는 눈물 때문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때문도, 모든 것에 지쳐버린 심신 때문도 아니었다.
너무 다행이어서...
내 친구도 그렇다는 게 이토록 행복할 일인가?
'괜찮아'보다도 '그럴 수 있어'보다도
'나도 그렇다'는 그 한마디가 난 그토록 듣고 싶었구나.
나만 죄인같고 싶지 않아서...
나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너와함께 공범이고 싶었나 보다.
그러고보니 알겠다.
난 참 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