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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영 Mar 18. 2023

14살 생일을 맞은 캠프힐마을

사춘기가 된 캠프힐마을 통신

지난 2월 28일은 캠프힐마을 설립 14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옥천면 원통이길 새 터전으로 이사 온 후 바로 코로나19가 시작되어 마을어르신들께 신고도 못하고 지냈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원장인  저에 대한 이상한 소문도 한몫을 하였지만 발없는 말이 널리 퍼져도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원래 작은 마을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의 말이 섞이고 퍼져 이상한 상황으로 연출되기 마련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 마을 공동경작으로 감자를 함께 심으며 안면을 텃던 어르신들이 가끔 우리 빌리져들의 소식을 물어오셨습니다. 하여 한번쯤 우리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 싶어 이번 14주년 기념식에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서 함께 점심을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마을회관에 초대장을 갖고 찾아뵈니 작년 가을에 있었던 마을 여행을 함께하며 망가졌던(?) 저를 기억하시는 어르신들은 한결같이 초대해 주어 감사하다며 꼭 가보겠다고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옛날 우리 터전의 변천사를 기억해 내시고는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도 장만하여 대접했고, 직원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라이어 연주도 들려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빌리져들이 마이크를 잡고 어눌한 노랫말을 열심히 읽어가며 부르자 한 어르신(본인은 자신이 옥천면의 가수라 하셨다)이 화답가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해 주셨습니다. 부면장님을 비롯해서 옥천농협지점장님은 한 손에 커다란 귤박스를 들고 오셨고, 파출소장님, 복지팀장님, 이장님이 함께 오셔서 축하의 말씀도 해주시고 모처럼 따뜻한 어울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 빌리져들이 생활하는 공간도 보여드리고 점심식사 마친 후, 손에 따끈한 절편과 백설기를 한 덩이씩 들고 가시는 발걸음은 가볍고 행복해 보여서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아주 짧은 준비의 시간이었지만 동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행사를 준비해 주었고, 마당에는 커다란 난로가 아직 쌀쌀한 입춘의 태양 열기를 보태어 열기를 나눠 주었습니다.  봄은 봄인지라 볕은 어찌나 좋았는지 14년 전 용천리에서 열렸던 첫날을 축하하며 오셨던 분들이 야외에서 뷔페로 점심을 드셨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그동안 말로 다 할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때 '소원나무'에  써 걸었던 알록달록 소원이 이루어진 느낌입니다. 오후에는 우리만 남아서 오랜만에 봄볕에 기대어 바비큐 축하파티를 하게 되었고요.. 모두들 신이 나서 들썩들썩했지요.

14년 전, 설립기념일날 '소원나무'에 캠프힐마을 슈타이너학교의 미래를 그리며 한 자 한 자 소원을 적어 나무에 걸고 있다.
신기하게도 '소원나무'는 가장 먼저 연두색 잎을 세상에 드러냈다.

  지난겨울은 유독 우리 서로간에 축하일 일들이 많았습니다. 누구는 생일이고, 누구는 사회복지사 1급 합격을 하였고, 누군가는 새로 캠프힐마을에 들어왔고, 누군가는 농업대학에 합격도 하고 저마다 기쁜 일들을 함께 축하하며 봄을 만끽하였습니다.

 오랜만의 바비큐 파티 덕분에 고기를 잔뜩 먹은 빌리져들의 건강이 걱정되어 소화도 시킬 겸, 어둠이 깔린 마당에서 즉석 노래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간 자체 평생프로그램 '저녁이 있는 삶'의 영향 탓인지 저마다 마이크를 잡고 한곡씩 불러냅니다. 비록 어눌한 발음이지만 음정 박자에 어찌나 신경을 쓰던지 절로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선생님들 중에는 가수 못지않은 노래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오랜만에 '우유빛깔***'을 연창 하고, 또 다른 선생님은 '쵸코우유 ***'를 연호하며 한참을 웃고 낄낄거리고 행복해했습니다.

그렇게 먹은 음식을 소화해 내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자 고기 먹지 않는 직원을 위해 준비한 회 한 접시가 2부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선생님들의 대화시간...

한결같이 이제는 캠프힐마을의 완전한  가족이 된 모습입니다.

우리는 빌리져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아닌 언니, 오빠로 부르고 있으니 나이 많은 빌리져는 당연히 직원의 이름을 부릅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호칭이 가져다주는 관계의 기본이 우리를 자연스럽게 맺어주게 합니다. 내게는 원장님 대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이들이 좋고 나도 언제까지 '선생님'으로 불려 주는 것에 익숙합니다.


빌리져대표, 옥천면 파출소장님, 노인회장님, 농협하나로지점장님, 그리고 깍두기 미리가 케이크 점화식



  신생아가 태어나 7살이 되면 이갈이를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친구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14살이 되면 사춘기에 이르게 됩니다. 최초의 자아가 생기고 점점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가고 드디어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합니다. 이렇듯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사회 역시 지내온 세월만큼 제2의 성장 시기인 사춘기를 맞이하여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고 합니다.  캠프힐도토리하우스의 경우 기관의 나이로는 7살이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직원들 월급걱정하지 않으며 3년을 지내고 보니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가 앉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같은 별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이자 성장이라 여겨집니다.

  안정된 상태가 지속되어야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하게 된다는 엔트로피법칙처럼 우리는 이제 누군가가 흔들려해도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지탱해 버틸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이 길러진 상태입니다. 이런 날이 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원해 준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기도가 생각납니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 중에는 직접적으로 알지 못해도 우리를 도우려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어떤 일을 결과로 열매 맺게 한다는 것을 아주 가깝게 느낍니다. 14년간 꾸준히 캠프힐마을에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되뇌어 봅니다. 그분들 중에는 본인도 넉넉하지 않지만 14년을 이어오며 물질적 후원을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힘을 모아 이번 생애에 소외된 장애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넉넉한 버팀목으로 계셔주신 분들을 새삼 기억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캠프힐마을은 새롭고 의미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 채워가려 합니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지하세계, 즉 죽음의 세계에서 왕노릇을 하던 아킬레스를 찾아가자 그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친구여!!  내 비록 지하세계의 왕노릇을 하고 있지만, 지상세계에서 가난하고 보잘것없이 날품을 팔고 살아가는 그런 삶으로 살아간다면 소원이 없겠네"


  지금이 비록 힘들고 만족스러운 모습의 삶이 아닐지라도 오늘,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닫고 밝아올 내일을 기약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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