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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영 May 26. 2020

지난해 겨울...캠프힐 도토리하우스에서 생긴 일..

  나이 40에 교직이라는 철밥통 걷어차고 떠났던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정 중에 영국 뉴튼 디 캠프힐공동체에서 6개월간 코 워커로  경험했던  일상,  ‘캠프힐에서 온 편지’를 발간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2008년 12월에  발간하여 1만여 독자들에게 읽혀졌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팔아서 장애아동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기금으로 활용해야 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그러한 바람을 해결하진 못했지만,  제가 영국 캠프힐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장애인공동체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는 바람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씩 그러한 바램을 양평 캠프힐마을에서 시도하고 있답니다.

       *돌아보기하는 시간..  


  지난주 금요일인 12월 7일.. 드디어 사회복지법인 캠프힐마을 소속의 새로운 기관으로 ‘캠프힐 도토리하우스’가 장애인 단기거주시설로서 설치 신고를 마쳤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척박한 땅에 작은 씨앗 하나 던져 놓고 매일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고 가꾸어 드디어 생명을 얻어 새 순을 보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장애인 단기거주시설로 옷을 입은 캠프힐 도토리하우스는 지난 한 해동안 2박 3일 주말하우스를 운영해 왔습니다.  주말하우스는 언젠가 우리모두 가족을 떠나 살아가야 할 때, 특히 부모나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으로 준비하였습니다.

  150평 규모의 2층 건물을 신축하여 아랫층에는 방 6개와 거실, 작업장, 주방을 만들었고, 2층에는 강당 및 체력단력실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공간이지만, 미국에서 자녀의 입학상담을 오신 분들도 우리시설이 미국보다 좋다 말씀해 주시고, 누구보다도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이 2박3일 주말하우스를 보내고 가면서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잠자는 것이 좋았다...’고 답할 정도로 잠자리도 편안하고 조용한 이곳에서의 2박 3일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작업장에서도, 복지관이나 전공과에서도 거절당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특성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당연한데, 그것때문에 또 거절에 거절을 경험해야 하는 그룹이 있지요.

  K는 아주 단란한 가정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자폐성장애 판정을 받은 후 전문직에 종사하던 어머니는 자신의 자아실현을 포기 채 지극정성으로 K를 보살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마의 요청에 적극 잘 따라주었던 그가 사춘기를 맞이하며 학기초 ‘기싸움’이라 불리우는 교사의 강한 훈육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번 사용된 가해행동이 점차 강도가 생겨 급기야는 어머니에게까지 행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족들은 조금이라도 K의 가해행동을 줄여보고자 약 복용을 결정하였고,  결국 약 덕분에 몸은 점점 비대해 져 100킬로에 육박하게 되어 점점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출근한 이후 종일 어머니와 생활해야 하는 그 긴 낮시간이 어머니에게는 공포와 괴로움의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K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공기에 매우 민감한 친구입니다. 익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의사표현도 잘하고 마음을 풀어 놓지만, 낯선 곳, 처음 마주하는 모든 것에 대한 공포와 긴장이 지나치게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K의 부모님은 그가 우리 도토리하우스에 관심을 갖고 잘 적응하여 앞으로 부모님 살아생전에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행보는 매주 일요일에 아무도 없는 도토리 하우스 운동장에서 서성이다 가는 날, 그 다음에는 정자에 10분간 앉아 있다 가는 날, 그 다음일요일에는 드디어 도토리 하우스 거실까지 들어와 앉아 있다 가는 날, 그 다음 일요일에는 방에도 들아가보고 화장실도 사용하는 날...이렇게 조금씩 그의 공간을 확대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아직 친숙한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던져진 느낌으로 불안해 할것을 염려해서 어머니가 특별한 역할 없이 투명인간으로 함께 지내는 2박 3일에  참석해 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런 목표가 잘 실행되면 소원이 없겠다며 한결같이 기대반 걱정반의 시도를 하였습니다. 

  몇번의 익숙한 노출 덕분에 K는 순순히 도토리 하우스에 들어왔고, 자신이 좋아하는 흔들의자에 아주 오래 전부터 앉아 있었던 것처럼 편안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들이 세족실을 마치고 잠자리에 든 이후 교사들과 차 한잔을 마시며 그간 K를 양육하며 쌓였던 자신의 속내를 내어놓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2박 3일의 여정 중에 K는 식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앞에 놓고 옆 사람과 손을 잡고 기도도 하고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도 함께 외치며 오래전 부터 가족이었던 것처럼 엄마도 의식하지 않고 잘 지냈습니다.  

  2박3일의 일정을  기대이상으로 잘 마치고 아버지가 오셔서 귀가를 준비하던 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들어오기 싫어하던 그가 이제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짐을 챙겨 부모님과 함께 귀가하는 것을 보더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던지 급기야 거실의 화분을 밀어 깨트렸습니다. 부모님들은 미안해 하며 안타까워 했고, K는 잠재되었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보이는 사람이 누구든 가해하려 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서서 단호하게 이야기하고 자동차에 태우고 나서야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나서 잠시 혼자 있더니 마음을 가라 앉히고는 흥분으로 긴장한 몸을 풀고 차 안에서 골아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간과했던 것은 오히려 익숙해 진 주말하우스 분위기에서 다시 가정으로의 전환에 대하여 세심히 계획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화를 낸 K의 장애를 탓하거나 그것에 문제의 근본을 두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K가 배려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마지막 단계에서 화분을 깨고 바닥에 널부러진 식물을 다시 새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속상해 하는 부모님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사실 2박3일 동안, 낯선 사람들과 잘 지낸 K에 대한 대견함을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는데, 작은 화분 하나 깨트린 것,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 때문에 그 대견함이 뭍혀 버렸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습관적으로 잘한 일에 대한 강화와 잘못한 일에 대한 약점을 분리하지 못하고 혼재된 채 감정으로 희석하는 것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K가 2박 3일동안 새롭고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잘 지낸 것 뿐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다른 친구의 손을 슬쩍 잡으며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한 모습은 늘 집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는 젊은 청년 K 역시 친구가 필요하고 동료를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던 점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성공적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K를 태우고 돌아가는 부모님의 표정이 굳어있었습니다. 

2박3일 주말하우스에 잘 적응한 K에 대하여 부모님과 평가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노력을 칭찬하는 자리를 만들고 우리가 앞으로 점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고민하고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애의 유무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객관화 해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기에 누구라도 그것이 만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속적인 자기 조망을 해야 어느 정도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은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물들어 가는 과정을 시간으로 구조화 해서 접근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슈타이너학교의 발도르프 특수교육과정 운영을 통해서 어떻게 아이들이 변화해 가고 어떻게 당당해 지는지 옆에서 지켜본 경험이 있습니다.  앞으로 캠프힐 도토리 하우스에서는  편안하고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며 자신도 모르게 자신 속으로 스며 함께 살아가는 코워커들과 그 시간적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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