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은영 May 16. 2020

10년의 글쓰기는 준비가 필요해..

캠프힐 주말하우스 하던 날의 소회..

  3년 전... 년초에 '올해는 논문을 쓸수 있을까..' 를 고민하며 일에 치여 쫓기듯 봄을 그렇게 보내고 있던  어느날, 준공도 마치지 않은 건물에서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학생들과 함께 2박 3일의 주말하우스 마지막 날을  바베큐 파티로  장식하기 시작했더랬습니다. 


  평소에 고기를 먹지 않는 저는 그날도 가위와 집게를 집어 들고 고기를 자르고 뒤집고를 반복하며 고기! 고기!를 외치는 아이들과 교사들을 위해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요.  낮잠을 자고 일어난 **이는 좋아하는 오렌지쥬스를 한잔 마시고 멍~ 하니 앉아 있다가 공수해 온 고기를 한입 물고는 급히 씹어 삼킵니다... 그러나 아뿔사...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는데 고기덩이가 목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얼굴이 파래지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를 우리는 돌아가며 등을 두드리고 손가락을 넣어 토해내기를 서둘러 권하고, 기침을 하라고 해 보지만, 선천적 안면근육 마비로 인하여 안면근육을 자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는 점점 얼굴이 파라지고 급기야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ㅠ.ㅠ

  

 누군가 급히 119에 연락하고  저는 필사적으로 **이의 뒤로 가서 두 손을 깍지끼고  가슴을 훌치듯 들어 올려 걸린 고기덩이를 뿜게 해볼 요령으로 그를 들어 올렸습니다.  순간 저의 머리 속에는 특수학교 교사시절 목에 떡이 걸려 뇌사한 아이와 그 아이의 담임이었던  동료의 얼굴이 겹쳐지고, 얼마전 체기를 못넘기고 운명을 달리한 친구 남편의 얼굴도 떠오르고  짧은 순간이지만  온갖 상상 망상이 들어 앉았습니다. 119 구급대원은  달리면서 우리와 전화로 응급처치 요령을 알려주고 우리는 구급대의 지시에 최대한 집중하며 따르고 시도하기를 반복하였고, 구급차가 거의 도착할 무렵 **이는 고기를 넘기고 물을 마시고  호흡이, 얼굴색이  돌아왔습니다. 


  그 일을 치르고 그날 저녁...저는 홀로 술을 한잔 앞에 두고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눈물의 의미는 두 가지였지요.  하나는 준공도 마치지 않은 건물에서 심한 장애아이들과 2박3일의 캠프를 시도하다 **이가 사망에 이르렀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2가지 서러움이었습니다. 시설이 폐쇄 되어 이 일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일 것이라는 것과 **이가 살아남으로 인하여 나는 어쩔 수 없는 숙명 처럼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의 비장함이 교차했기에 기쁨인지 숙명인지, 족쇄인지 모를 운명에 탄식하며 슬픔을 토해 낸 것이지요.


 그후 2박 3일의 주말하우스를 멈추고 준공이 나길 기다리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저는  던져 두었던 학위논문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제가 능력이 특출해서 논문을 금방 쓴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당시 어렵게 부지 매입하고 매년 건물 신축공사와 리모델링을 하며 논문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였고, 그 가운데 아주 조금씩  진도는 나갔고, 마치 임산부가 임신한 후 10개월의 기간 동안 아이를 키우듯 내 머리와 마음 속에 논문들은 살찌워지고 버리고, 만들기를 지속했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준공이 나기를 마냥 앉아서 기다리느니 논문을 쓰고 있는 동안 시간은 가리라 생각한 결과 본격적으로 그때부터  미친듯이 논문을 쓰기로 한 것이었지요.

  혹독한 더위를 지나 찬 바람 불기 시작할 때 검사도구를 완성하고  낙엽이 뒹글 때 모든 원자료 수집을 마치고 커다란 트렁크에 온갖 논문자료를 담아 한달간의 숙박을 결정하고 유배생활하 듯 미친듯이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하여 출산의 기쁨을 안고 퇴실하는 순간을 맞이했답니다. 


  올해 안에 '캠프힐에서 온 편지'의 후속으로 장애아동 대안학교 슈타이너학교 시작 후 10년을 돌아보는 후속 책을 내야 한다는 주변의 지독한 권유와 모종의 압박에 의해 맘 속의 다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탓에 글의 호흡이 짧아지고  문장이 어색해  자꾸 미사려구를 남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어 이것 저것 일기장의 부적합을 핑계대며 미루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든 것이 정지되어 글쓰기 좋은 시간이 오니 그간 못했던 학교 곳곳에 꽃나무 심기를 시작하여 재미를 붙인 탓에 시간만 나면 꽃나무를 사들이고 심고 옮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올봄 코로나로 집콕 하면서 아이들과 신나게 나무 옮겨 심고 잠시 해참 먹고 기념 사진...찰칵!!

  그러던 몇칠 전, 갑자기 저의 소중한 동지이나 후배 교사인 산티 이**샘의 블로그에 들어가 그녀의 일기를 훔쳐 보고 나니 다시 쓰기에 대한 의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다시 그간의 기억을 그려보고 싶고 그러기 위한 워밍업이랄지..  이런 준비가 필요한것 같습니다. 일단 소문 내 놓고 나중에 말에 책임 지려면 뭐라도 해야하니 말입니다.  마음의 준비, 그리고 내 스스로 다짐을 하는 과정으로 우선 소문내기를 선택해 봤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지난달에 화원주인 꼬임에 넘어가 고가로 매입한 노란색 철쭉이를 들여다 보며 주변의 잡초뽑기, 비오는 주말에 사다 심은 메리골드의 화려함에 눈길을 뺏기고 있습니다. 

       모든 철쭉이가 다 피고 졌는데 귀한 줄 알고 뒤늦게 피어낸 노란 철쭉... 고생했다!!! ^^



작가의 이전글 흐르는 강물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