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눗 Jun 29. 2019

인기없음에 대한 예찬

더럽게 인기없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고 싶은 우리에게


최근 디자인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쓰고 있는 터라 다양한 면접 실패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에 2년 전 쯤 썼던 런던에서의 비디오 인터뷰에 대한 글을 다시 펼쳤다. 반쯤 읽다 왠지 모를 실망감에 얼른 창을 닫아버렸다. 꽤 괜찮은 글이라고 썼었는데 이렇게나 재미없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었다니. 설마 하고 그 즈음에 썼던 다른 글들도 훑어봤다. 기대에 못미치는 글들이 줄줄 흘러나온다. 다듬어야 할 곳이 태산이었다.


그러고보니 브런치에 올려진 내 글들도 별로라 말라비틀어진 식빵 마냥 인기가 없는 것만 같다. 그리곤 몹시 시무룩해졌다. 겨우 네 다섯개의 글을 쓴 것밖엔 없지만서도 앞으로 계속 쓴다고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 기분이 드는거다. 


엊그젠가 브런치 홈을 습관처럼 훑어보는 데 내가 쓴 세 번째 글이 추천글로 떡하니 올려져 있는 걸 보고 기겁했다. 통계를 확인해보니 평소 두 자리였던 조회수가 300회가 넘어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며 자부했던 난데, 내 손가락은 글의 하단에 위치한 라이크의 수를 향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을 들었다놨다하는 고 못된 라이크와 구독 수는 높은 조회수와 상관없이 여전히 걸음마 자리다. 넌 별로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물같은 숫자들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사실 오랜 유럽 여행동안 꾸준히 여행사진을 찍어 올려봤던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였다. 팔로워는 좀처럼 늘지 않았고, 거대하게 달린 해쉬태그의 숫자와는 상관없이 라이크는 평균 60개 수준을 겉돌기만 했다. 딱 하나의 사진이 100을 넘었는데 나는 그 사진과 다른 사진의 섬세한 차이점과 특징을 별로 잡아내질 못했다. 결국 중구난방의 사진들만 잔뜩 올리다 소셜미디어에 신물을 느꼈다는 핑계로 끊어버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 인생 전반을 돌아봐도 인기가 있었던 적이 별로 없다. 구지 인기있었던 찰나의 상황을 기억해보면 대학교 1학년 개강파티 때 술 한 잔 안먹고 게임을 주도해내다가 나를 잘못 알아본 애들이 나를 체육부장으로 몰아갔던 것 정도. 당시 미대의 체육대회는 우리 학교의 꽃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그 무엇이었고, 그 과 그 학년의 체육부장들은 무던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했다. 뽑아줬는데 겁이 났다. 


체육대회 준비를 위해 모인 아이들에게 운동장 한바퀴를 돌리고 나는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 스스로 앗싸가 되어 과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 비주류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굉장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앗싸가 편한, 비인기 종족에 속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래도 당시엔 모두를 주도하며 신나게 놀다가도 막상 게임의 주인공이 되면 도망가버리는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분명히 모두가 좋아할 거라 생각한 것들이 별 인기가 없는 걸 보면 내 취향이 특이하거나 실력이 형편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행 중 다행인건 아주 간혹 몇몇의 (특이했던) 교수님들이 내 작업을 좋아해주셨는데, 나는 작업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현대미술빼곤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분들이 앗싸인 내가 불쌍해서 그러는 거라 치부하곤 했다. 그래서 20대 땐 자주 '나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기 어려운데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겠냐'며 꺼이 꺼이 울던 기억이 잦다. 


그러다 MBTI를 했는데, 외향성과 내향성의 점수가 매우 비슷하지만 간발의 차로 외향성이 매우 조금 더 높게 나온 결과를 보고서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간파하기 시작했다. 타인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족하며 활동적으로 살다가도 그 상황이 쉼없이 지속되면 어디론가 도망가서 조용히 글쓰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반복해댔던 나를 드디어 이해하기 시작한거다.


특이하게도 판단 - 인식의 지표인 J와 P도 매우 미세한 차로 J가 높게 나왔었는데 몇 년 뒤 다시 했던 결과에서는 P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행동하려는 성향과 모험이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뒤섞여 있는 애매한 존재인거다. 그러다보니 꾸준히 글을 쓰거나 사진을 생산하는 건 잘해도, 각 내용들은 일관성이 없는 편이었다. 사진의 필터는 해당 사진에 따라 항상 바뀌었고, 글을 쓸 때는 그 날의 기분이나 의식의 흐름에 따라 흘려갔다. 전반적으로 난 자신에 대한 전략이 없고, 인기없기 딱 좋은 환경을 갖춘 사람인거였다. 



각종 숫자들이 보여주는 인기없음의 수치가 마치 진리인 마냥 간만에 나를 다시 강타하니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앞서 말했던 인기없는 지난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그래, 나라는 사람이 어딜가서 인기를 얻겠어, 그나마 다닐 회사가 생긴 것에 감사해야지. 에잇, 글이고 뭐고 다 때려쳐버리자.'하는 심정이 불쑥 들었다. 


그런데 어딘가 편치 못했다. 뭔가 이게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마음에 계속 짖누르는데다 나도 모르게 자꾸 할아버지가 된 맥에어를 펼쳐 들고 또 안되는 글을 쓰고 있는 거다. 한참을 고뇌했다. 


문득 알랭 드 보통이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며 '인기없음의 위안'을 털어놓았던 글이 떠올랐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과 관념이 인기가 없고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이라면 타인의 충동적 비난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랬다.


"모든 이의 의견을 다 존중할 필요 없이 단지 몇 명만 존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해도 된다는 사실, 훌륭한 의견은 존중하되 나쁜 의견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사실, 그것 참 멋진 원칙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훌륭한 의견은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것인 반면, 나쁜 의견은 이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것이지......

 그러니 훌륭한 나의 친구여, 우리는 민중이 우리에 대해 어떤 말을 하든 마음 쓸 필요가 없소. 하지만 전문가들이 정의와 불공평의 문제에 대해 하는 말에는 신경을 써야 하오." -소크라테스, p57


물론 위대한 소크라테스의 훌륭한 어떤 신념과는 달리 나의 인기없음은 능력의 부족에서 오는 무엇이긴 하지만, '인기없음의 위안'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어떤 힘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그 신념이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믿었고 그는 그것을 지켜나갔다. 인기가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소크라테스마냥 오랜 사색을 통해 그동안 더럽게 인기없는 삶이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좋은 일이었는지 하나씩 하나씩 읊어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딱히 인기가 없다보니, 변방 속에 숨겨진 인기 없는 사람(동지)들을 쉽게 발견해내는 재능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말 마따나 그들이 인기는 없어도 그들의 생각과 신념에 있어서는 꽤나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그룹 활동을 할 때 나의 외향성을 극적 발휘하여 소외된 그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동일하게 주었고,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난 더 좋은 발상을 가진 이야기들이 종종 터져나왔다. 그 결과로 그들은 자신의 의견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얻고 그룹에 대한 소속감을 더욱 강렬하게 갖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룹 성과가 좋은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 인기가 없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일 필요가 없으니 날 좋아해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마음을 쏟아 사랑할 수 있다. 내게 던져주는 관심과 사랑이 소중하니 그들에게 더욱 감사할 줄 아는 거다. 호스피스 간호사인 브로니 웨어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책에서 3개월의 시한부 환자들이 가장 후회 했던 것 다섯가지 중 하나로 '친구들과 연락하고 살걸'이라는 탄식을 언급한 적이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옛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어 버렸다.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친구들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다. 사는 데 급급하고 생활에 쫓겨서 천금 같은 교우관계를 세월 속에 흘려보내고 말았다.... 죽음을 앞두니 친구들이 보고 싶다." 


삶의 마지막에 남는 건 쳇바퀴같은 '일'과 남들이 바라는 '성공'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랑이란거다. 영국의 GP(제너럴 닥터)인 닥터 Rangan Chatterjee의 'Feel better, Live More'이라는 팟캐스트에서도 수많은 건강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행복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관계를 통한 커넥션'을 자주 언급한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사람과의 소통을 통한 깊은 우정 혹은 사랑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일'을 잘하고 '성공'함으로 얻는 '인기'와 거리가 먼 나같은 사람들은 관계를 통해 위로를 받고 삶의 충족을 느낀다. 다수에게 얻는 표면적인 인기가 아닌 소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깊은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만족감을 주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잘'해야만 얻는 인기와 '잘못'해도 얻는 사랑은 차원의 깊이가 다른 법이다. 


내 글이 라이크 주기에 하찮은 글일지라도 읽는 자들에게 '이런 글도 브런치에 올라오니 나도 한 번 써야겠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꽤 좋은 일이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보지 않으니 부담없이 내 기억을 저장해두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편으로 글을 쓸 수 있으니 또 좋다. 어쨌던 브런치팀이 고맙게도 나를 한방에 브런치에 글을 쓰도록 허락해준 걸 보면 나름 가능성있는 존재인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할 수 있으니 이정도면 훌륭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인기에 과도하게 연연하는 미디어에 종속되어 인기없음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기없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타인의 관심을 과도하게 열망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알게 된다면, 까짓거 우리 인기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될거다. 1집 히트치고 2집 낼 때 극도로 스트레스 받는 그들과 다르게, 1집을 내는 과정, 2집을 내는 과정 모두 내가 즐기고 행복할 수 있다면 이거 꽤 괜찮은 일 아닌가. 


인기없음으로 스스로를 더욱 북돋아서 내가 사랑하는 일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된다면 위로받은 자와 동일한 한 일인으로써 필히 성공한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제 인기에 연연말고 소크라테스처럼 내가 논리적으로 옳다고 믿는 그 신념을 잘 지키고 타당한 비난을 잘 받아들여 발전시키며 꾸준히 지속시켜 나가자. 매력적이지 않고 터벅터벅하고 겉이 딱딱한 빵같아도 그 건강한 빵을 찾아 오는 고정 손님들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고, 빵이 좋아 빵 만드는 사람들은 그저 좋은 빵을 만드는 것에 열심을 다하는 것이 만족이자 사명일테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