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이라는 단어는 한 사람을 떨리게 만든다.
초등학생 때 열린 체육대회에는 달리기 시합이 빠지지 않았다. 모든 학생이 4명씩 짝을 이뤄 달리고 끝에서는 순위를 새긴 도장을 받는 달리기였다. 그 시작점에 설 때면 항상 총소리에 맞춰 달리지 못할까 겁이 났다. 당시에는 내가 체육에서 흔히 나타나는 극한 상황을 싫어한다고 여겼다. 대부분이 그렇듯 체육을 싫어하는 학생이며, 누군가와 다투기보다는 평화롭게 지내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누군가와 겨루는 게 싫은 것이 아니라 지는 게 싫은 것이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뒤쳐지는 건 싫었다. 모든 일에서 이겨야 했고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했다. 불가능한 일이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알기 전의 어린 패기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마음이었다. 그때에는 모든 게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고방식을 하던 때니까.
다만 그 패기가 우승을 위한 연습으로 빠지는 대신 스스로를 숨기는 것으로 빠진 것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한몫했다. 착한 학생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야'했으며 그러기 위해 '양보해야'했다. 져서도 안되지만, 어떻게든 이기려는 모습과 노력은 독하다는 질타를 받기 쉬웠다. 도전보다는 양보가 미덕인 만큼 내 생각과 감정은 우선시되는 대상이 아니었다.
이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양보하기만 하던 아이에서 자란 게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던 학생은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자라났고 그렇게 오랫동안 숨죽이며 두려움이라는 감정 뒤로 숨어들었다. 생각이 많아서 글을 썼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틀린 생각이면 어쩌나, 싶은 소심한 생각 탓이다.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혼자만 글을 끄적였다.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건 최근 일이다. 나만의 세상에서 눈을 돌려 바라본 바깥세상에는 수많은 공모전이 열리고 있었고 수많은 도전이 이뤄지고 있었다. 비로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된 사람들의 도전은 쉽게 폄하당할 것이 아니었다. 떨어진다고 해도 완전한 실패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더 빛나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주장할 줄 아는 사람은 멋졌다.
내가 지금껏 두려워하며 피해오던 건 뭐였을까. 나 혼자 쓰고 보는 글은 온전한 글이라 할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질문 끝에 나는 생각을 멈추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 벽에 직접 부딪혀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던 생활문예대상에 글을 던져두고 기다렸다.
처음 글을 내보이는 것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보내는 건 떨리는 일이었지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뜻밖의 일이 있었다. 주최 측에서 월간지와 함께 '명화 엽서 세트'를 보내온 것이었다.
비판보다도 공허한 건 무관심일 것이다. 엽서는 곧장 그 빈자리를 채웠다. 부드러운 색감의 평화로운 엽서들을 보니 격려받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동시에 다음에는 좀 더 치열하고 후회 없이 도전해보고 싶다는 불길이 살아났다. 앞으로 나아갈 길에도 꺼지지 않을 불길이다.
덕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결과에도 주눅 들지 않게 되었다. 평생을 두려워해서는 껍질을 깨고 나올 수가 없다. 생각보다 세상에 부딪히는 것은 버틸만한 일이다. 어려운 건 아마 계속 부딪히는 시도일 것이다.
티핑 포인트가 되었던 엽서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 글에 첨부된 사진은 제가 받은 엽서를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