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취향에 있어 정답이 없는 만큼 사람마다 선호하는 전시도 다르다. SNS를 둘러보면 빛을 이용한 미디어아트가 항상 인기가 많은 것 같고 역사학과 친구들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 저마다 좋아하는 시대를 하나씩 두고 있는 것 같다. 난 고대 문명에 관련된 전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오천 년이라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세월 이전에 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 고대 이집트 문명은 매력적이다.
이때 유물들의 설명을 볼 때면 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눈앞의 물건이 사천 년 전 것이라니! 현재의 물건 중에 사천 년 후까지 남아 있을 만한 물건이 있을까 싶어서 신기하다. 몇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물품을 지금 본다는 건 여러 시간선이 중첩된 공간에 서있는 것과도 같다. 몇천 년 전 사람이 바라보던 물건을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건 참 묘한 일이다. 그 사람도 취업이나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을 하고 살았을 것이다. 미래의 사람도 그런 고민을 할까?
박물관에서 유물을 볼 때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생긴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분명 과거에 대한 연결고리를 제시해주지만 동시에 혼란스럽게 만든다. 기록되지 않은 그 뒤로 무엇이 더 숨겨져 있을까. 분명 기록되지 않은 역사도 있을 텐데. 박물관이 없었다면 현재만 고민하며 살 텐데 과거까지도 궁금해진다. 지식이 쌓일수록 오히려 분명한 것이 사라진다고 했던가. 판타지 소설이 따로 없다.
어렸을 적 '과거 모습'을 떠올려볼 때면 조선을 떠올렸다. 짚신을 신고 초가집에 사는, 그런 모습 말이다. 사극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시대이기도 하고 가까웠던 만큼 가장 많은 자료가 남아있던 때라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조선도 1392년에서야 건국된 나라라는 걸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니다.
더 예전으로 올라가 기원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부족한 게 많고 법이나 문화 등이 정립되지 않은 사회가 떠오르기 쉽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고대 이집트를 보면 현재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재판이 이뤄졌고 회계장부도 기록됐으며 의사가 처방해준 처방전도 있었다. 이집트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그들만의 종교와 장례절차를 가졌다. 이 고대 문명들의 뛰어난 세공기술로 만들어진 유물들을 볼 때면 오히려 풍족해 보이기도 한다. 과거로 돌아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을 정도다.
오래된 유물을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화려해서인지 관심사는 고려, 신라를 차례대로 지나 고대국가였던 고구려까지 닿았고 특별전으로 보게 된 페르시아 전시에서 비로소 확고한 취향이 드러났다. 그 취향은 그대로 이어져 현재까지도 눈에 불을 켜고 전시를 찾아다니고 있다. 화려한 고대 유물. 이 세 단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섭섭하다.
진품을 보고 싶은 마음에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투탕카멘 전시는 건너뛰려 했지만 결국은 시간을 내서라도 방문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대 문명에 대한 전시는 그리 자주 열리는 게 아니었고 고대 이집트의 얼굴이 된 투탕카멘의 전시라면 가품이라 할지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집트의 유물은 죽음과 연관된 것이 대다수인데 이렇게 죽음 이후의 삶을 중요하게 다루는 고대 이집트를 볼 때면 전공서적을 사서 공부하고 싶어 진다. 막상 내가 전공하는 과목의 전공서는 사기를 꺼리면서도 말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괴로운 일에도 나방처럼 뛰어들게 되는 모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집트에 대한 전공서는 없지만 언제 원서를 구매하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당장은 무거운 책 대신 금빛으로 번쩍이는 엽서 몇 장과 파피루스 그림을 들여뒀다.
이렇게 보면 난 현재보다 고대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어서 고대 문명이 더 매력적인 걸까 아니면 그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걸까? 과학의 날 때 미래 도시와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그렸던 초등학생은 폭주기관차처럼 끝없이 달려가는 환경오염과 전쟁을 미래로 그리게 되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계급이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도 없고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국가가 없듯 살고 있는 이들도 많다. 내가 고대 문명을 찾게 된 건 결국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 아닐까. 확신할 수 없는, 고대 이집트라는 시간대를 그리는 이유다.
과거는 현재보다 뒤처져있는가? 그 답은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구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고 자만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 글에 첨부된 사진은 제가 산 엽서를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