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그마한 수집가의 초대

by 젤리J

더운 여름날, 화제가 되었던 전시를 보러 갔다. 시간대별로 한정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는데 예약이 다 차있어서 직접 가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였다. 오래 기다렸다가 들어간 전시장을 보며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모았지? '수집가의 초대'라는 전시명이 어울리는 규모였다. 그만큼 '수집가'라는 단어에 거리감이 들기도 했다. 이만큼 모으지 않았다면 수집가라고 내세우기 좀 그런가?



초등학생 때 각자 무언가를 자랑하는 시간이 있었다. 정작 내가 무엇을 자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반 친구의 발표가 있다. 엽서를 모으는 것이 취미라던 그 아이는 우표 보관 앨범에 가득 꽂힌 우표들을 자랑했다. 어린 나이에 무언가를 그렇게 모았다는 게 열정적으로 보였다. 우표들도 모두 예뻤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도 우표를 수집해보겠다며 앨범도 사고 우체국을 드나들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그 앨범은 여전히 2007년도 우표 몇 장을 가지고 책장에 잠들어있다. 그땐 어려서 잘 몰랐지만 내가 그 친구의 발표에서 인상 깊었던 건 우표가 아니라 뭔가를 오래 수집했다는 점이었던 것이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매점에서 초코빵에 함께 담겨있는 띠부띠부씰을 모았다. 모으려 한 건 아니었지만 그게 유일한 낙이었고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인 미니언이 띠부띠부씰로 나오면서 거의 매일 매점에 갔다. 그 초코빵은 맛있지 않았지만 급식에 비해서는 먹을만했다. 당시 학교에서 기자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개인 기사로 당당하게 캐릭터 콜라보레이션과 키덜트 문화에 대해서 쓰며 미니언의 얼굴을 실었다. 그만큼 열정적이었던 스티커 수집은 졸업하면서 마무리지었다. 급식을 먹을 필요도 없는데 굳이 초코빵을 사 먹을 필요도 없었다.



엽서는 위의 둘과는 다르게, 내가 수집하는지도 모르게 모이던 것이었다. 어린 시절 샌프란시스코 사진엽서를 받았고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도 모아두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엽서였다. 지금은 마지막 이사를 거치며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했다. 선명한 사진엽서를 싫어하기는 했으나 한쪽 모퉁이에 꽂아둔 클립이라든지 온통 영어만 적힌 엽서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위로 관광지에서 산 엽서나 미술관에서 고른 엽서, 손 편지를 새긴 엽서들이 쌓여갔다. 부피감이 생기자 정리하려고 엽서 보관함을 샀지만 획일화된 사이즈라 대다수의 엽서가 여전히 밖에 놓여있다. 이 수집품들은 전시회를 열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예전 일들을 기억하기는 충분했다. 고르는 과정 때문인지 엽서들의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무언가를 수집하면 삶도 함께 담기기 마련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그 위에 내 삶을 덧입혀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된다. 물건을 팔았던 사람은 알 수 없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맨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수집을 한다는 건, 무의식적이며 본연 그대로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를 수집하고 있다. 그건 당장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고 있을 것이다. 특별전시실을 꽉 채울만한 양도, 몇십 년이나 모았다는 시간도 아니지만 수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수집가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전시회를 열지는 못해도 글을 남기기로 했다. 수집가라고 말하기엔 거창하고 '조그마한 수집가' 정도의 글.


프롤 엽서.jpg



* 글에 첨부된 사진은 제가 산 엽서를 직접 찍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