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관람은 아니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생각보다 빨리 끝난 일정에 왕복하는 3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는 아쉬워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 하나 골라보기로 한 것이 앤서니 브라운 전시 티켓 구입으로 이어졌다. 포스터가 어린이 대상 전시라는 걸 나타내는 것 같아서 평소라면 관람하지 않았을 텐데 낯선 전시들 중 눈에 띄는 고릴라를 무시할 수 없었다. 분명 나도 어렸을 때 이 작가의 그림책을 읽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시를 한동안 못 봐서 그런지 2만 원에 가까운 티켓 가격에 조금 놀랐다. 5년 전 같은 장소에서 <오르세 미술관 이삭 줍기 전>을 만원에 관람했던 기억도 떠올랐지만 그때는 청소년 가격이었으니 그렇다고 금방 납득했다. 묘하게도 성인 요금을 낼 때만 내가 성인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다. 이외의 시간에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고 물 흐르듯 살고 있다. 학생 때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어른처럼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인이 되어서 혼자 그림책 작가의 전시를 보러 가리라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 학생 때 성인의 모습을 상상했던 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추구일까. 그렇다면 지금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되짚음인가 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봤던 건 몇 살이었을까? 그때 본 『돼지책』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핑크색 테두리 표지와 캐릭터들은 떠오른다.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인데 여전히 리커버판이 나오고 아동 도서 인기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계속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2022년의 어린이와 어린 시절 '나'의 교차 지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앤서니 브라운 원더랜드 뮤지엄 전
전시 제목에 걸맞게 원더랜드(상상의 나라)였다. 『이상한 놀이 공원』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작인 『넌 나의 우주야』 등 여러 동화들이 전시되었다. 꿈꾸는 고릴라를 그린 그림책이라고만 기억했는데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돼지책』이나 1992년작인 『동물원』소개를 보며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메시지를 풀어나가고자 했는지를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가족 간 소통 부재, 형편이 어려운 집의 골디락스와 부유한 곰 세 마리, 상상 속 친구를 만나 고난을 극복하는 프리다 칼로에 대한 오마주 작품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풍부하게 그려냈다.
물론 그림을 보며 어디에 뭐가 숨겨졌나 찾아보는 것은 여전한 재미였다. 어릴 때 좋아했던 '명화에 들어간 윌리'를 다시 보게 되어 상당히 반가웠다. 특히 밀레의 <이삭 줍기>를 패러디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은 5년 전 오르세 미술관 전시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삭을 줍는 게 아니라 붓으로 그림을 채워나가고 있는 캐릭터들과 뒤로 보이는 크로와상, 그리고 왜인지 모를 코끼리 두 마리의 존재를 발견하는 건 즐겁다.
"그림책은 나이가 들었다고 접어야 할 책이 아니라 나이를 불문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전시가 끝나갈 즈음 벽에 적힌 글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책은 나이대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필요하다.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커서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그림책을 마냥 가볍게만 볼 수는 없다. 이번 전시에서도 비록 아이를 대상으로 한 체험에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오래도록 작품을 바라보며 숨은 그림을 찾는 건 할 수 있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라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었다. 토요일 오전 시간에는 사람이 많았다. 관람객도 많지만 아이와 부모를 이끌고 다니는 도슨트도 여럿 있었고 체험장에서는 직원들이 재료를 이리저리 옮기며 아이들의 체험을 돕고 있었다. 모두 고생이 많다는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완전한 동심으로 돌아가기는 글렀다. 몇 시간에 걸친 일에도 밝은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에 대단함을 느끼며 전시장을 나왔다.
'지나간 세월에 대한 향수'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앞으로의 날이 더 창창하고 언제든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지만 예전 그림에 손을 대기에는 그때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르며 같은 그림을 바라보는 것에도 조금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같지만 너무나도 달라진 자신. 진부한 말이지만 과거의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