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알드리지 사진전은 전시 안내 보조로 가게 된 것이 첫 만남이었다. 보통은 작품을 만지지 않도록 안내하거나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일로 바쁘지만 관람객이 없는 시간에는 잠깐씩 돌아다니며 작품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구경은 틈틈이 이루어지는 휴식일뿐, 안내받지 못한 이벤트 등의 변경 사항으로 분주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봉사자라 힘들다기보다는 이렇게라도 전시 관람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람객으로 마일즈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의자 없이 몇 시간씩 서있지 않아도 됐다. 또 교대 시간을 살피거나 다른 관람객이 뭘 하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즐겁게 관람하며 사진을 찍었다.영화의 스틸컷 같은 작품들을 보며 동행인과 대화를 나눴고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스탬프를 모으기도 했다.전시장을 나와 아트샵에서 엽서를 고르는 것은 물론이고 이벤트 상품인 노트까지 받아 나올 때는 만족감이 들었다.이 완벽한 전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을까?
관람할 때와 전시 안내할 때 마음에 들었던 작품도 각각 달랐다. 운 좋게도 두 작품 모두 엽서로 나와있어 바로 구매할 수 있었다.
관람객으로 구경할때 오래 머물렀던 작품이다. 이 사진은 두 번째 섹션으로 넘어갈 때 정면에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질끈 감은 눈과 크게 벌어진 입, 팔의 근육과 펼쳐진 손가락, 흔들리는 듯한 머리카락까지 모두 드라마틱하고 강렬하다.소리 없이 그림으로만 마주할 뿐이지만감정을 완전히 표출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전시장 가득 휘돈다. 강렬한 색감을 쓰는 마일즈 알드리지답게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노란색도 잔상처럼 눈에 남는다.
전시 안내 봉사 때 시선을 잡아끈 작품은 「Five Girls in a Car #3」이다. 전시 안내를 하며 간간이 있는 도슨트의 설명을 먼발치에서 듣곤 했다. 도슨트는 이 작품을 보며 1950년대 일탈을 상징하는 초록색 캐딜락에 탔지만 자유로움보다는 공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섹션의 보조를 맡을 때면 이끌리듯 이 작품 앞에 섰다. 화려한 전시장이 텅 빌 때면 느껴지는 공허함과 어딘가 비슷했다. 마치 작품과 나 사이의 빈 공간까지도 사진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일즈 알드리지 사진전의 작품 속 인물들은 마네킹 같았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 색을 둘렀지만 눈동자는 비어있었다. 그것에서 동질감을 느낀 건 한순간이었다.
그들과 나는 전시실의 NPC였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나는 작품 밖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NPC는 게임에서 나온 단어로 '플레이어 이외의 캐릭터(Non-Player Character)'의 줄임말이다. 단순히 이야기하자면 게임 속 상점 주인이나 도서관 사서처럼 특정 장소를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플레이어가 말을 걸면 대답해주는 역할의 캐릭터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전시 안내 보조일을 하며 전시 안내원이야말로 NPC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벽 근처에 서있다가 관람객들이 궁금한 점을 물어오면 그제야 입을 여는, '전시 안내원'이라는 이름의 NPC.
그것이 싫다는 건 아니다. 백조의 우아한 모습 아래 발은 바쁘게 움직인다는 말처럼 멋진 전시가 계속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다만 눈앞에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전시장을 유지해나가는지는 직접 체험해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알기 힘들었다. 단순히 전시를 많이 관람하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흐트러진 브로셔가 언제 다시 가지런히 꽂혀있는지, 전시장의 바닥과 화장실은 왜 항상 깨끗한 것인지. 이건 마법이 아니다. 다만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 공간에 공존하는 두 개의 세상. 우리는 이 지평선을 넓히고자 여러 체험을 해보는 것 아닐까 싶다.볼 수 없던 걸 보게 되는 것은 감긴 눈을 뜨듯 새로웠다. 이렇게 두 번의 관람이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다음 전시회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