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파리에 가본 적이 없다. 진지하게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운 적도 있으나 앞날의 일은 알 수가 없다는 말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으로서는 여행을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 등을 '가고 싶은 장소 리스트'에 올려둘 뿐이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하는 분들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덕분에 잠시만 시간을 내면 세계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내게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는 사이의 시간이 그랬다.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로 던져지듯 주변 사람들과 흩어지고, 질문에 아무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여전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다. 요란한 광고와 화려한 포장지에 둘러싸인 조악하고 볼품없는 선물 같았다. 기다리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방황할 만도 했다.
아직까지 찬바람이 불면 그 시절 생각이 난다. 차가워진 뺨과 두꺼운 겉옷, 바람의 냄새는 불순물 없이 상쾌해서 속을 가득 채우고 싶어지는 시기. 가끔 바람에는 탄 나뭇가지 냄새가 실려왔다. 선명한 추억이라고 해야 할지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가을 하늘이 높다던데 초겨울 하늘도 충분히 높고 넓어 보였던 것이 먼저 떠오른다. 손에 쥔 연필보다 하늘의 구름을 자주 바라보고 싶어 졌지만 항상 원하는 만큼 하늘을 눈에 담지 못했다.
그래서 오르세 미술관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부족했던 하늘을 바라봤는지 모른다. 부제가 '이삭 줍기' 일 정도로 그 그림이 유명하다는 건 알지만 마음이 끌리는 작품이 따로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명한 작품들 사이에서 눈길을 잡아끈 것은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의 1893년작 <le pont de moret>였다.
따스하고 느긋한 마을. 수심이 깊지 않아 보이는 강에 놓인 다리 위로 짐을 끄는 말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평화로운 마을도 마을이지만 이 작품을 봤을 때 눈에 들어오는 건 하늘이었다. 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작게 흩어져있다. 특별한 게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유화의 생동감이 하늘을 숨 쉬게 만들었다.
알프레드 시슬레에 비하면 조금 진한 색을 쓴 이 작품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의 <allee de la Tour-du-Jongleur et maison de M.Musy, Louveciennes>이다. 작품의 긴 제목을 보며 엽서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프랑스어는 한 달 배운 실력으로 거의 모르다시피 하기 때문에 번역기와 사전의 도움을 받았다. '루브시엔느의 뮤시 저택과 저글뢰르 탑의 산책길'.
그 역시 한적한 마을의 풍경을 그렸다. 피사로도 알프레드 시슬레처럼 인상파 화가이며 그의 작품은 '점묘파'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몰랐음에도 이 엽서를 선택한 건 똑같이 펼쳐져있는 하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프레드 시슬레의 것보다 훨씬 커다란 구름이 하늘을 꽉 채운채 떠다니고 있었다.
두 작품에서는 오래도록 그리던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후에 만난 친구도 좋아하는 화가로 알프레드 시슬레를 꺼내며 하늘과 구름을 그린 방식을 이야기했으니 아마 그때의 모든 이는 하늘을 꿈꾸었나 보다. 미처 채우지 못했던 그 부족함을 파리에서 건너온 그림으로 위로받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시대와 관계없이 관람객 각자에게 색다른 의미가 된다는 것이 예술의 장점인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누구나 방황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있어 점차 적응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또 다른 끝과 시작을 향해 떠나게 된다.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때가 왔다. 이번에도 그림들에서 그 위로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