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계에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는 자들의 대탈출극이었다.
이 영화의 혹평이 쏟아진 것을 보았다. 스토리가 엉성하고 듣기 민망한 대사가 주를 이루며 집중력이 떨어져 별로라는 내용이다.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고 밝히는 바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담백하고 멋들어지게 디스토피아를 연출한 영화가 있었던가. 그 더럽고 구질구질하게 떨어지는 욕설과 침 속에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무너진 도시는 낯설지 않았다. 코너를 돌면 어딘가 있을 법한 장소였다. 다만, 길거리 노숙자와 방치된 낡은 건물은 마치 전쟁이 일어난 듯했다. 절망이 내려앉은 도시 모습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 어떤 희망을 찾는 것은 우스운 일로 보였다. 그 절망 아래 입고 있는 셔츠가 내 것이냐 네 것이냐를 두고 욕설을 난무하는 청년들과 불법 시설을 지키기 위해서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한 어른들이 있었다.
흡사 양아치의 객기 잔뜩 품은 어설픔과 건달의 부질없는 사명감을 보는 것 같았다. 막 출소한 주인공은 어렵사리 범죄를 계획하지만 공권력을 등에 업은 자는 일상이 범죄였다. 범죄도시에서 돈의 가치는 휘발되어 공동체의 신뢰를 태어버렸다. 각자도생이 필수인 사회는 오로지 하루살이 인생을 강요하며 야생의 생존전략을 갖추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인트로부터 심상치 않았다.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강력하게 들려오는 비트감이 시작부터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비트 위에 회색빛 도시의 처절함이 지나가고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마치 랩처럼 들렸다. 절묘하게 얽혀서 쏟아지는 음악은 죽느냐 사느냐 생의 경계를 넘거나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이 구질구질한 인생을 어떻게 해서든 스웩 넘치게 살아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카시나부터 익숙한 스트릿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준석 역을 맡은 이제훈은 윤성현 감독의 일상 패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디제이 스크레치로 시작되는 클럽 씬과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로 디스토피아적 배경이 더욱 완벽한 차림새가 되었다.
영화는 헬(조선)을 배경으로 한 대탈출극이다. 서부영화처럼 본국으로부터 도망친 이들의 개척사를 보는 것 같았다. 광활한 대지와 정돈되지 않은 시스템 그리고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벌어지는 잔혹극. 이 영화 또한 무너진 세계에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는 자들의 대탈출극이었다.
사건은 어차피 불법 도박장이기 때문에 털어도 잡혀갈 일 없다는 식으로 주인공 준석이 친구 셋을 범죄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면서 시작된다. 살기 좋은 섬나라에 함께 가자. 그 노잣돈을 강도짓으로 충당하자는 것이다.
에메랄드 빛깔의 바닷가 옆에서 살기 위해서 그들은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시도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다. 하지만 희망 없는 세상에서 성공이라는 단어는 허상이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은 허점 투성이었다. 몇 번의 전과를 통해 가졌던 자부심은 아마추어였고, 경찰차를 타고 다니는 범죄 조직의 해결사는 프로였다.
이후부터 쫓고 쫓기는 장면이 연출된다.
청년들은 죽음 앞에서 처절해진다.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적을 향해 정조준한다. 가족을 위해 떠난 아이와 서로 밖에 없는 친구들 그리고 공포에 서툰 알바생, 그 모두가 희망을 품었으나 죽음 앞에 무기력하게 놓인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지금 우리 시대를 떠올렸다. 세상은 복잡해지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쫓긴다. 다양한 주장과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혼돈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한다. 권력은 혼돈을 제 식구로 감싸는 것으로 강해진다. 그 방법은 자극적인 연출과 강력한 통제로 기울어지고 있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그 시설 그때로 회귀하는 경향도 보인다. 다행히 과거의 학습과 엄청난 파괴력의 현대 기술로 적당히 멈춰 서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얼마나 오래 우리가 디스토피아로 향해 가는 길을 막아설 수 있을까.
영화 속 시대 배경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없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게 되면 꿈을 좇는다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의미 없는 삶. 행동 목적에 시대적 요구에 부합될 수 있다는 것, 궁극적으로 공동체를 더 나아지게 만든다는 대의명분이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영화 속 그들처럼 불법의 불법을 통해 합법적인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황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사투 끝에 준석은 에메랄드 빛깔 바다가 있는 섬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바다 옆 전망 좋은 집에서 살며 작은 자전거 가게를 차린다. 하지만 영화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준석이 멈추지 않는 불안과 공포를 직시하며 힘을 키우고, 사냥의 시간을 거슬러 반대로 사냥꾼을 추적하면서 끝난다.
앞서 준석은 잠시 꿈을 꾼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있는 준석을 가족을 찾아 떠났던 기훈(최우식 역)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가 한마디 한다.
여기서도 자전거 집 할 거면 거기서 하지 그랬냐?
준석은 웃지만 우리는 안다. 같은 사물도 같은 행동도 언제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결국 나 홀로 어떻게든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