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춤을 추고 있나
[영화] 프랜시스 하
Francis Ha
프란시스 하
*
노아 바움백 감독
흑백 영상으로 담아낸 뉴욕 길거리는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두 주인공 프란시스와 소피가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던 장면이 지나가자 곧 높은 월세에 대한 부담감이 짙게 묻어 나왔다. 커피를 든 채 바쁜 걸음을 옮기거나 길거리에서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누는 뉴요커의 일상은 없었다. 그 틈 어느 구석 그늘에 끼어있는 이끼처럼 자리 잡은 가난하고 꿈 많은 청춘들이 있었다.
춤을 추고 싶은 27살 여자가 있었다. 이름은 프란시스. 그녀는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정식 단원이 되지 못한 채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세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맘에도 없는 칭찬을 단장에게 하거나 어린 후배들에게 밀려난 자괴감을 겨우 쓸어 담고 다시 일어서는 중이었다. 흔들리는 가지에 매달린 나뭇잎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제철을 넘긴 잎은 낙하하고 부서지며 바람이 불면 날아간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살지만, 그것밖에 기댈 곳이 없다. 그 꿈이 없어지면 자신도 세상에서 지워질 것만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그녀에게 춤을 춘다는 것은 하나의 종교였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 좋아서 하는 것이기에 나의 모든 불우한 환경은 그로써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 쪼달리는 월세는 현실의 벽. 나에게 주어진 필연적이고 넘어야 할 장애물일 뿐. 그것이 자신을 비루한 인생으로 몰아넣는다고 해도 결국 헤어 나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는 물었다
나도 아직 춤을 추고 있는 걸까.
*
프란시스에게는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소피가 있었다. 함께 있을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는 소피. 돈 많은 부잣집의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는 멀리 떠난다. 삶은 고독이지만 가끔 잊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 결국 혼자 남지만 언제나 그 외로움을 덜어줄 존재가 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다. 착각이다. 그것을 알고 타인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사람과 변치 않은 우정과 사랑을 꿈꾸며 의지하는 사람이 겪는 이별의 아픔의 크기는 다르다. 프란시스는 후자였다. 그녀는 마음이 몹시 아팠고, 그녀를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둘은 만난다. 프란시스가 객기로 떠난 파리 여행 덕분에 궁핍한 주머니 사정을 채우기 위해서 모교 학교 행사 지원을 나간다. 통상, 재학생이 용돈벌이 하는 그런 자리다. 졸업한 선배가 여기서 뭐하는 것인가라는 표정의 퉁명스러운 후배 옆에 서서 행사 안내를 하고 이벤트 중에는 서빙을 하기도 한다. 소피는 잘 나가는 약혼남의 게스트 자격으로 그곳에 참가한 것이다.
그곳에서 프란시스는 소피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다. 농담 같은 만남에서 더욱 놀라운 건 소피가 프란시스로부터 항상 경쟁심을 느껴왔다고 밝히는 장면이다. 꿈이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자신은 스스로 빛나지 못하는 존재였다. 암울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약혼남을 통해서 과거의 나를 벗어던지려고 한다는 식이었다.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였으나 밝은 출구를 찾은 그녀를 보고 발버둥 치고 있는 프란시스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알 수 없었다는 프란시스.
그냥 웃고 만다.
이후 프란시스는 일전에 무용단에서 제시한 사무직 일자리를 결국 수락한다. 자신은 댄서이고 곧 다른 무용단에 정식 단원이 될 수도 있다는 말로 거절했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적인 안정을 택한다. 지친 것이다. 그리고 안무 연출을 하게 된다. 영화는 그녀의 작품이 무대에서 펼쳐지기 위에 준비하는 모습으로 막바지를 향한다.
공연 시작. 객석에는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막이 내리자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녀는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녀가 숙소에서 친구들의 요청으로 몸을 뱅글 돌려 춤을 췄을 때 모두가 웃었다. 비웃음이었냐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기대 이하의 재능에 대해 그녀가 가진 필요 이상의 진지함으로 인한 당혹스러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작품이 막이 내린 후 스테이지에서 만난 교수와 친구들은 그녀를 향해 칭찬과 감탄을 뱉고 있다. 그때와 반대로 그녀는 그들에게 기쁜 모습으로 미소를 보낸다. 바라보는 나 또한 흐뭇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월세 걱정에 하루 종일 불안해하던 그녀의 눈동자는 침작하고 차분했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창가 옆 테이블에 앉아 종이 위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가위로 자르고 밖으로 나가 우편함에 이름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공간임을 인증한다.
이름을 적은 종이는 우편함 보다 길이가 길어
끝 부분이 살짝 접힌다.
그렇게 접힌 이름이 바로 Francis Ha.
그녀의 꿈과 이상을 그렇게 접어 두었다고 해도 그녀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인생은 알 수 없다. 가보지 못한 곳에 내가 그토록 찾던 답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집착하는 것은 미련하고 나를 작은 틀 속에 가둬 특정한 모습을 강요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것 같았다.
그녀가 스크린 넘어 관객을 지긋이 쳐다보며 무언의 대화를 시도할 때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 음악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keypy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