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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해하지 마세요

[영화] 안경

by 랩기표 labky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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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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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아가 어린 시절부터 갇혀 지내던 독방에서 나오려면 먼저 세 겹의 문을 지나야 한다. 버림받고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혼자만의 슬픔, 참다운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분노, 이 세 개의 문을 기억하고 있는가?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지금까지 습득한 정보를 모두 뒤집고, 말도 안 되는 고통과 실패의 여정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by


크리스텔 프티콜랭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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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어떤 주제를 담고 있지 않다. 물론 힐링이니 뭐니 하는 평들은 많다. 내게는 보고 듣는 것이 담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비워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였다. 그래서 주제 같은 것을 특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리뷰를 적었던 형식과 달리 이 영화에 대한 포인트와 배경 그리고 다양한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까만 안경을 쓴 주인공으로 빙의하여 여행기를 적고자 한다.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그리고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궁금하면 지금 당장 보면 좋다. 일단 여행을 떠나보자.





나는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자였지만 힘들게 직장을 얻었고 진급을 하고 인정받는 사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절제와 계발을 하면서 계속 뛰어야 했고 누구보다 일찍 그리고 늦게까지 남아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 뜨개질을 좋아하는 감성 소녀에서 논리 정연하고 일처리가 확실한 여선생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부러움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은 거짓 자아였다.

어느 날 이 거짓 자아는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 찬 욕망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촘촘히 짠 완벽한 논리구조에서 나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같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던 삶의 흔적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표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공고히 다져주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기로 마음먹은 것은 애초에 나였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태어나고 싶었다. 전화도 되지 않는 무인도 같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생각을 실현한 건 정직 처분이 내려진 첫날이었다. 학교를 나서는 길에 나는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다음 날 오키나와 북쪽에 있는 요론지마로 떠났다. 숙소 사이트에 올려져 있던 요상한 약도를 따라 화창한 날씨 아래 빛나는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와 하얀 모래를 벗 삼아 숙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혼자 사는 중년의 남자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일반 가정집 같았고 작지만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이 있었다. 주인장이 약도를 보고 찾아오는 길이 어렵지 않았냐고 묻길래 어렵지 않았다고 했더니 “여기서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네요”라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나는 웃지도, 딱히 뭐라고 답하지도 않았다. 기둥에 붙은 손바닥 만한 크기로 만들어진 숙소 간판을 쳐다보았더니, 주인은 “이보다 크면 사람이 많이 올까 봐 그렇습니다.”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했다. “아, 네.” 하고 나는 또 건성으로 답하고 방에 들어갔다.





이곳 생활은 아무런 방해 없이 혼자 지낼 수 있겠지라는 기대와 달랐다. 매 해 봄마다 오신다는 이름이 사쿠라인 할머니와 고등학교 선생이라고 하는 키 큰 젊은 여자 그리고 중년의 주인장은 끼니때마다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마다 바닷가에서 울려 퍼지는 이상한 음악 때문에 늦잠은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부시시 일어나면 사쿠라 할머니께서는 “안녕하세요. 아침입니다.”라고 무릎을 꿇은 채로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인사를 했다. 너무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다.


한 날은 도대체 익숙해지지 않는 이 아침 음악이 무엇일까 해서 나가보았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하얀 백사장에 모여 사쿠라 할머니를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요상한 음악에 따라 동작이 우스운 춤의 이름은 메르시 체조라고 주인장이 나중에 말해주었다.

매년 봄마다 이 춤을 리드하는 사쿠라 할머니께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시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말 수는 적으셨고 미소는 넉넉했다. 하는 말씀이라고는 내게 아침마다 건넸던(불편하다고 하지 말라고 해서 그만두었지만) “아침입니다.” “오늘도 날씨가 좋습니다.” “밥 먹으세요”라는 말과

“빙수 있습니다”였다.





할머니께서는 팥빙수를 바닷가 중간에 나무로 만든 작은 집에서 나누어주셨고 돈은 받지 않으셨다. 어떤 아주머니는 채소로 값을 치렀고, 얼음장수 아저씨는 얼음으로 대신하셨다. 어떤 꼬마 아이는 귀엽게 접은 종이 인형을 주고 갔다고 내게 흐뭇한 얼굴을 하시며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빙수를 싫어해서 몇 번이나 “괜찮습니다.”라고 거절했지만 주인장이 그 팥빙수가 인생을 바꿨다는 둥 너무 거창하게 말해서 결국 호기심으로 맛보았다.

그 맛을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이후 나는 꾸준히 그 빙수를 먹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주방에서 팥을 쑤시는 것을 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물으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검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시더니 “쉬잇~”하시고는 조금씩 끓어오르는 팥을 유심히 보셨다. 나도 옆에 서서 가만히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께서는 아주 빠른 손길로 가스레인지 불을 끄시더니 그제야 씨익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멍하니 있었더니 팥을 조금 덜어내 내게 주셨다. 나는 작은 숟갈로 조금 떠먹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래지고 할머니는 침착한 웃음으로 나를 보셨다.

이렇게 나는 팥빙수를 먹은 이후로 이곳 사람들과 더욱 친해졌다. 몸에 붙은 습관들은 달콤한 빙수와 함께 녹아내렸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메르시 체조를 했고, 한가로이 앉아 털을 꼬아 빨간색 목도리를 짰다. 이것으로 빙수 값을 치르고자 했다. 돈보다 소중한 나의 진심이 담긴 목도리였다. 손이 굳어서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작은 파도가 몰고 오는 경쾌한 소리와 시원한 바람에 신이 났다.

그때 나도 모르게 거짓 자아와 이별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웠다.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예전 직장으로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돌아간다고 해도 누구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이 글은 다시 찾은 요론지마에서 할머니 빙수를 먹으며 적은 것이다. 이번에는 사쿠라 할머니보다 내가 먼저 도착했다. 기약 없는 만남이었기에 나는 며칠 동안 나무집을 치우며 할머니를 기다렸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할머니께서는 내가 짜준 목도리를 매고 계셨다. 할머니 키보다 몇 배나 긴 목도리는 바람에 휘날리며 땅에 끌렸지만, 그래서 오히려 할머니한테 잘 어울렸다. 할머니께서는 공손하게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셨고 우리는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꼬마 아이의 종이 인형을 보여주시며 지으셨던 흐뭇한 미소로 내게 말씀 하셨다.

“안경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네요.”



https://youtu.be/uWQLZHYE5V4

메르시 체조




©️key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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