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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은 아씨들

이쁘게 수 놓인 스웨터 같은

by 랩기표 labkypy




(Little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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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거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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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재기 발랄한 네 자매가 있었다. 숙녀가 되겠다는 맏언니 메그, 밤새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우는 둘째 조,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 그리고 유명 화가를 꿈꾸는 막내 에이미. 영화는 그 네 자매 옆집에 살며 조를 사랑하는 로렌스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 로리가 함께 모여 펼치는 성장 드라마다.

조는 후에 그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소설이 평범하다고 했지만, 그 따스함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 그들의 일상은 잘 짜여진 자수처럼 각자의 캐릭터가 잘 맞물려있다. 나는 그들의 천방지축 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을 들여다보는 동안 아름답게 수 놓인 스웨터를 입고 기분 좋은 겨울을 보내는 기분이었다.



네 자매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는 아주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진행 중이던 어느 겨울, 전쟁에 참가한 아버지의 부재로 어려운 가정형편에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대신에 거창하게 차려진 음식을 바라보며 네 자매는 잠시 외출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곧 엄마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네 자매는 반갑게 맞이한다. 온기를 나누며 인사를 마친 엄마는 잠시 머뭇거린다. 의아한 눈빛으로 보는 네 자매. 엄마는 근처 가난한 한 가정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식사를 대접하자고 제안한다. 네 자매는 잠깐 짜증과 심술을 부리지만 차갑게 눈 쌓인 길을 나란히 걸어 가 음식을 나눈다. 식탁보를 깔아 상을 차리고, 아이를 안고 돌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영화가 앞으로도 이러한 따스함을 관객에게 보여줄 것 같았고, 실제로도 틀리지 않았다.


이야기의 중심은 둘째 조다. 소녀 티를 벗은 조는 뉴욕에서 남자 이름의 가명으로 작가로 활동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베스의 이른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편지를 받고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떠난다. 조가 집으로 가는 여정과 다시 찾은 장소에서 자매들의 추억은 현재와 교차되며 펼쳐진다. 그리고 조는 자신의 옹졸함을 깨닫는다.

결혼은 신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였다. 대부분의 자만과 독선은 편견을 무기 삼아 세상에 반기를 든다. 조는 뉴욕에 가기 전 로리의 고백을 꿈과 사랑은 공존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거절한다. 사랑으로 얻은 안정은 꿈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고 두려워한다. 로리의 고백을 거절한 조는 사람이 북적이는 뉴욕에서 밤낮없이 잉크가 물든 손으로 그럭저럭 작가로 살아간다.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기존을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가능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 보이지 않게 서서히 이루어진다. 어릴 적 열정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마련이고 현실의 높은 벽에 좌절하며 다시 일어서는 성장기는 흔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그 흔한 공식에서 조금 벗어나 성공이란 정의를 사회적 성취보다 내면의 안정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사회의 진보, 기존의 틀을 조금이나마 깨는 것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조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기존의 개념을 새롭게 바꾸고 한 발자국 씩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과업이라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성장하기 위한 근원은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어떤 삶을 약속함에 따라서 서로를 존중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더해지는 것이다. 희생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격려를 나누는 것이라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의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은 성공에 대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믿음이었다.

그렇게 로리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지만 사랑은 타이밍이다. 로리는 유럽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 에이미와 결혼을 한다. 조는 동생 에이미 앞에서 웃는 얼굴로 절망하지만 신은 장난꾸러기라고 했던가.

다락방에서 글을 쓰는 조를 위해 셰익스피어를 선물하고 서슴없이 있는 그대로 그녀의 글을 비평했던 남자, 프리드리히가 뉴욕에서 집을 찾아온다. 가족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그와 이별 할 시간이 왔을 때, 조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짝을 잡는다.

이후 조는 자신의 원고를 ‘조 마치’라는 남자 친구의 부탁이라며 건네던 것을 멈춘다. 직접 출판사와 저작권을 다투고 결국 유리한 계약을 얻어낸다. 여자는 작가가 될 수 없다는 편견으로부터 한 걸음 넘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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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에서 꿈꾸는 가난한 여성을 연기했던 감독이 왜 또 한 번 이 영화를 리메이크를 했을까. 어쩌면 스스로 편견과 싸워왔기에, 이제는 새로이 거듭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이 영화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조용히 추측해본다.



http://m.blog.naver.com/mckeypyo/221995139359



https://youtu.be/S2xuRebjfbk


https://youtu.be/79_nkjuOWVg



©️key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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