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낭만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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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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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읽은 건지 읽은 대로 생각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1905년에 지어진 이 책은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을 승리(청일전쟁)로 이끌고 러시아마저 무릎 꿇린 직후(러일전쟁)를 배경으로 쓰여 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두 전쟁을 승리하고 제국주의 정책을 강하게 펼치며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럿 아시아 국가를 식민 지배한다. 그들의 명분은 아시아를 진보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서양문물을 빠르게 흡수하며 대륙으로 진출하면서 전통문화가 무너져가던 시기에 작가는 영문학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지식인이 폭력으로 지배하는 현상을 긍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교직 생활을 이어가면서 서양문물과 사상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내적 갈등을 겪었고, 그 굴레를 벗기 위해서 썼던 첫 번째 소설이 바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작가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과연 내가 책에서 담고 있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읽고자 하는 대로 읽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복잡하지만 유머러스한 글들에서 나는 무엇을 읽었나 곱씹어본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영어 교사 구샤미 집에서 기거한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물을 바라보며 일본 고양이라는 출신을 잊지 않는 녀석이다. 사람 손을 타지만 자존감이 강하고 흠모하던 암컷 고양이가 병사하는 것을 슬퍼하기도 한다. 죽은 암컷 고양이 주인이 주인공 고양이를 평한 것을 보면 더럽고 추하게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 자존심 강하고 조금은 로맨틱한 추남 고양이가 구샤미 선생 집에 드나드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기록한 글이 바로 이 소설이다.
고양이는 고품격 유머로 그들을 묘사한다. 고품격이란 성찰과 풍자가 버무려져 있다는 의미다. 비평가 메이테이, 시인 도후, 물리학사 간세쓰, 비즈니스맨 스즈키 등이 등장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대표한다. 그들이 한 데 모여서 저작거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우스운 판이 벌어진다.
고양이는 대부분 그들의 대화를 거의 그대로 옮기고 있다. 그리고 간간히 그의 생각을 더해서 조소한다. 그 조소가 어리석은 인간을 비웃는 것이라가 보다는 인간 군상들의 좁혀지지 않는 생각 차이에 대한 호기심에 가깝다. 고양이의 눈에는 그들 모두 하찮지만 저마다 진지한 것이 신기하고 우스울 뿐이다.
이 소설은 100년도 더 지났지만, 신구 대립과 동서 조합에 대한 담론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금과 상황은 달라도 변화를 인지하고 바라보는 태도는 현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수용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다.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사소로운 것 같지만, 비유하여 세상 모두에게로 확장될 수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고, 심지어 재밌다.
주식 매매와 높은 연봉으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다니는 인물들을 보며 구샤미 선생과 그의 친구 메이테이는 비웃는다. 박사 사위를 얻고자 하는 기업가 집안의 세속적 탐심을 조롱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차 같은 서양 문물의 폭주에 중용과 고요 속의 성숙이라는 동양 사상의 무너짐을 우려한다.
그런 그들이 온갖 서양 물리이론이 등장하는 간게쓰의 ‘목매달기의 역학’에 대한 논문과 10년간 아무 생각 없이 유리구슬만 갈면 박사 논문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소재로 인간 행동에 있어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장면들은 웃음 뒤에 쓴 맛을 다시게 한다.
변화는 막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보고 판단하는 것들이 나의 생각인지 아니면 주변의 생각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고양이는 인간 대부분을 비꼬아 본다. 그리고 영감(insperation)은 그냥 흥분이라고 하는 것처럼 스스로 현상을 정의한다. 이처럼 작가는 당연시 되는 일반상식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아주 진지하게 되묻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무어라 대답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호기심에 맥주를 마시다가 물독에 빠져 항아리를 긁다가 죽는다. 발버둥 치다가 이내 포기하고 결국 죽음을 기분 좋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로 받아들이며 해탈한다. 그 죽음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쉽지는 않지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술 취한 고양이의 망상으로 보인다.
삶은 기대한 바 없이 다가오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굳이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골치 아픈 것이기에 굳이 더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방에 ‘절제와 품위’를 붙여 둔 것을 봤다.
고양이가 자신의 방이 있었다면 ‘유머와 여유’라고 적었을 것이다. 아재 개그로 놀림 받는 나로써는 고양이 옆에서라도 배우고 싶다.
©️key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