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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말의 말

by 랩기표 labky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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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3


1. 인간 문명의 시초를 배경으로 유목부족 초와

정착부족 단의 흥미진진한 전투 이야기

2. 이마에 빛이 나는 말의 생을 통해 바라보는
그 인간세계의 허무

3. 작가 특유의 짧고 간결한 힘있는 문체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장면들






“언어를 그림물감처럼 썼어요.”

라고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서 밝혔다. 사람이 아니라 말이 주인공인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환상 세계를 다녀온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

이마에 빛이 나는 말들은 인간을 측은하게 여기며 등 위에 태우고 다녔다. 재갈이 물렸지만 그것은 굴복 아니라 관용이었다. 최초로 말을 탔던 어느 남자와 말의 음부를 받아들인 요녀의 전설이 이 신화 같은 이야기를 받치고 있다.

그리고 요녀가 몸을 숨긴 백산을 중심으로 나하라는 강이 흐른다. 그 양쪽에는 초와 단이라는 나라가 있는 데, 소설은 아래와 같은 말로 인상을 남겼다.



[초 편]
말〔言〕에 홀려서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며 바람에 밀려다니는 마음들을 목왕은 크게 걱정했다. 초의 선왕들은 기록된 서물(書物)로 세상을 배우지 못하도록 엄히 단속했다.

칼이나 활을 쓰는 법, 말을 타고 낙타를 모는 방법을 문자로 기록해놓으면, 어리석은 자들이 곳간에 고기가 쟁여 있는 줄 알고 더 이상 익히려 하지 않아서, 몸은 나른해지고 마음은 헛것에 들떠, 건더기가 빠져나간 세상은 휑하니 비게 되고, 그 위에 말의 껍데기가 쌓여 가랑잎처럼 불려가니, 인간의 총기는 시들고 세상은 다리 힘이 빠져서 주저앉는 것이라고 목왕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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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편]
단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것들, 간절히 옥죄는 것들, 흐리게 떠오르는 것들을 글자로 적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글자가 글자를 낳아서 글자는 점점 많아졌다. 단은 그 글자들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으로 믿었다. 글자의 뜻을 이룩하려는 오랜 세월 동안 글자들끼리 부딪치면서 많은 피가 흘렀고 피 안에서 또 글자들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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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는 유목민을 단은 정착민을 뜻했다. 초는 땅을 땅답게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명분으로 단이 높게 쌓고 화려하게 꾸민 성을 침략한다. 전쟁은 어느 편에게도 쉽게 승패를 나누지 못하고 몇 해를 이어간다.

그 전쟁에서 말들은 재갈과 발길질로 사람의 살기 품은 의지를 이해하고 달린다. 초의 토하와 단의 야백은 그 달리는 말들 중 최고 품종의 말이다. 그 둘은 각각 적국에 속해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인간의 뜻일 뿐이다. 토하와 야백은 우연히 만나 나하 강변에서 사랑을 나누고 헤어진다.


야백의 생식기는 그 산줄기의 끝에서 진저리 치며 폭발했다. 토하는 아침 해 쪽으로 입을 벌리며 안개를 토했다. 아침 해가 안개에 비쳐서 토하의 입에서 무지개가 퍼졌다. 야백이 뒤에서 밀어붙일 때마다 토하의 입에서는 계속 무지개가 펼쳐졌다.



야백의 주인 단의 장군은 전장에서 스스로 투석기에 쏘아져 돌처럼 바닥에 뭉개졌다. 토하의 주인 초의 왕은 토하를 애지중지 하지만, 토하는 마의들이 왕 모르게 야백의 씨를 없애고 난 후 이가 빠지고 다리에 힘을 잃게 된다. 결국 왕은 토하를 버린다. 전쟁이 끝나고 야백은 야생으로 토하는 짐꾼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초 나라가 야백과 함께 떠돌던 야생의 무리를 잡아 짐말로 쓴다. 그렇게 토하와 야백은 다시 만난다. 하지만 윤기 흐르던 깃이 먼지떨이처럼 된 것과 같은 변화에 서로는 잘 알아보지는 못한다. 어딘가 익숙한 냄새와 눈 빛을 나누며 함께 쓰러지며 마지막을 함께한다.


작가는 그렇게 인간의 말을 옮기다 말의 영혼을 그려낸다. 말 들은 등위에 태운 자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지만 인간의 삶과 철저히 이격 되어 있다. 그 무심함을 읽는 나는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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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에 진저리 치며 자신을 마구간의 말이라고 불쌍해하는 70대 작가의 글은 말굽처럼 힘이 넘쳤다. 문장은 간결하고 읽는 속도는 바람처럼 휘익 불었다가 잔잔해지기도 했다. 말(馬)의 말이었지만 결국 인간의 말이었기에 그 마지막은 조금 처절했다. 한 편으로는 할 일을 마친 자가 아무런 허식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달의 기운을 받아 달린다는, 죽어서 별이 된다는 그들이기에 부러운 면도 있었다.




©️key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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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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