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넷플릭스 제공
스토리, 연출, 캐스팅, 특수효과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10편으로 구성된 드라마가 아니라 조금 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틈틈이 하나둘 보려다가 나도 모르게 한 번에 몰아 보게 되었다. 주변 분들의 반응을 보니 다들 비슷한 상황이었다. 소설 원작에서 웹툰 원작 시대가 열린지는 꽤나 오래됐지만 매 번 소재의 독특함에 놀랍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태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상상들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플랫폼을 만나 현실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 물론, 장점만 있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혁신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영화는 인간이 자신의 욕망 때문에 괴물로 변하는 사건을 다룬다. 욕망이 가득한 서울 도심 어느 곳에 자리 잡은 그린홈이라는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가 배경이다.
사람과 괴물의 협력
어느 날 괴물이 도시를 점령한다. 그린홈 아파트에도 괴물이 사람을 잡아먹으며 돌아다닌다. 살아남은 자들은 1층 상가에 겨우 모여 살아남기 위해 궁리한다.
사람들은 괴물에 맞선다. 괴물이 나타나면 죽인다. 서로 교류 없던 아파트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피보다 진하다는 이웃사촌이 된다. 생존투쟁을 이어가던 그들의 관계는 어느 날 몇몇 사람들에게 괴물화 증상이 나타나면서 복잡해진다. 어제까지 함께 위로하며 생사를 나누던 이웃이 괴물화 과정인 코피를 쏟자 목숨을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괴물을 죽이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기에 예외를 둘 순 없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변하지 않은 사람을 괴물이라고 부르기엔 그 모습과 행동이 사람에 더 가깝다. 코피를 흘리는 사람을 두고 사람이냐 괴물이냐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때문에 죽이고 살리는 문제는 또 다른 숙제가 되었다. 새로운 현상에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했다. 무작정 죽이기에는 “살인에 동참”한다는 죄의식 때문에 그들은 다수결을 통해 괴물화는 괴물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 일반 사람들과 분리하여 가두어 감시한다.
도덕이나 동정 따위가 아니었다.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일종 도망이다. 출처와 대상을 알 수 없는 위협에 일단 살고 보자는 합의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이끌어가는 의대생 출신 이윤혁(이도현 분)은 현실을 빠르게 수용하고 괴물과 사람의 협력으로 생존이라는 답을 찾아간다.
인간과 괴물은 공존이 가능할까
이윤혁은 괴물이 되었지만 스스로 조절이 가능한 차현수(송강 분)를 앞세워 사람들을 돕도록 한다. 차현수는 괴물을 물리치고 필요한 물품 등을 구하기 위한 활동의 최전방에 나선다. 괴물이 된 그는 치명상을 입어도 금방 회복되었다. 하지만 아픔은 변함이 없었기에 그는 스스로 괴물이 아니라 아직 인간으로서의 변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안의 괴물은 수시로 눈 앞에 나타나 악으로 걸어 나오라고 말을 걸지만 차현수는 끝까지 ‘나는 인간이고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견뎌낸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폭력과 가족의 죽음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그였지만, 그 죽겠다는 결심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사람을 살리는 데 앞장선다.
욕망이 사람을 괴물로 만들었듯이 절제는 괴물화 정도의 차이를 가져왔다. 아내를 때리고, 이 재난 속에서도 슈퍼 음식이 자신의 것이라며 아까워하던 슈퍼 사장만이 괴물로 변했을 뿐,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인간과 괴물, 이 두 종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자 누구보다 빨리 죽을 것 같은 미약한 개인들은 누구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강한 조직이 되었다.
스위트홈은 어디에 있을까
이 사태를 미리 인지하고 괴물을 잡아 실험을 하며 상황을 대비 중이던 군인들은 스스로 조절 가능한 괴물 차현수를 사로잡기 위해서 아파트를 공격한다. 그린홈에서 겨우 빠져나온 주민들은 결국 군인에게 잡히지만 다행히 안전구역으로 옮겨진다. 차현수는 스스로 군인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괴물과 인간, 그 대립의 세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다양한 암시를 남기며 <스위트홈> 시즌 1은 마무리된다.
욕망이 인간을 괴물을 만든다. 욕망은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 모두는 괴물 보균자다. 그것을 조절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괴물이 된 차현수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바꾸자. 괴물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할까.
코로나 19로 인간이 위협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모든 것들을 신뢰하기보다 의심한다. 의심받는 일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적절한 생활양식이 아니게 되었다. 역시 새로운 현상에는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어떻게 함께 공존하는가의 문제다. 해결은 단순하게 부정하거나 도망치려는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된다.
차현수가 기타의 은은한 선율을 두고 스위트홈이라고 했듯이 어쩌면 우리에게 안전하고 안락한 삶의 터전은 단순히 장소의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keyp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