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야자와 특급열차

픽션입니다

by 랩기표 labkypy

시시한 세상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 정의. 부. 노력. 근면. 성실. 분노. 기쁨. 청기는 소음처럼 느껴지는 것들에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과 살고자 하는 현실은 궤가 다르다는 것도 점점 깨닫고 있었다. 청기는 마치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의 주변에 가득 찬 허세들이 질주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종점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던 즈음에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 식물 하나를 키우게 되었다. 홍콩야자라는 식물은 물만 주면 잘 자랐다. 창가에 두고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쳐다보았다. 어제보다 조금 커진 잎. 새롭게 올라 올라온 작은 잎. 청기는 그것을 볼 때마다 세상의 진리는 이처럼 조용히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청기가 갑자기 사라졌다. 화분은 말라갔다. 잎이 떨어졌고, 새로 올라오던 줄기는 성장을 멈추고 곧 변색이 되어 죽었다. 모든 잎이 떨어지고 녹색 줄기가 말라비틀어졌을 때, 청기가 다시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어디 갔다 왔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청기는 농담 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특급열차를 타고 왔어. 우주로 날아가는 특급열차.”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놀라며 재차 물었지만, 그 외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청기는 자신의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려줄까 생각을 하다가 특급열차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줬던 생명수가 떠올랐다. 그는 말라비틀어진 홍콩야자에 생명수를 부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줄기가 녹색을 되찾더니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영화 같은 장면을 보고 믿기지 않아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도대체 거긴 어떻게 갈 수 있는 거야?” 청기는 흐뭇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곳은 가는 곳이 아니라 가게 되는 곳이야. 때가 되면 데리러 온다고 했어.” 사람들은 선문답 같은 말을 믿기는 힘들었지만, 생명수를 본 지라 그의 말을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청기 집 앞에는 청기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청기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청기는 특급열차라는 말밖에 하지 안 했다. 이후 어느 기자가 청기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생명수를 어떻게 얻을 수 있냐며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청기는 지금 생명수는 딱 한 병만 남았고, 특급열차는 때가 되면 오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그때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코 생명수를 도둑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청기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먹던 생수와 함께 생명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와 허탈감이 동반한 요동을 느끼지 않았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다. 신고도, 찾을 노력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청기는 그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덧붙였다. “특급열차에서 가져온 생명수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특급열차는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명수도 없겠죠.”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자신이 생명수를 갖지 못한 것에 아쉬워했다. 그리고 그것을 훔친 도둑의 용기에 감탄하며 자신의 소심함을 탓했다. 사람들은 청기를 찾아가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청기는 특급열차를 타게 되었다. 청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생명수를 가득 머문 홍콩야자는 그의 사무실에서 시들지 않고 잘 자랐지만, 누군가 그것을 치워버리는 바람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아직도 그 홍콩야자는 어디선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생명수를 먹은 것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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