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빽의 전설

픽션입니다

by 랩기표 labkypy

죽은 시체를 밝고 올라 선 산송장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끝에 누군가의 삶이 이어졌다. 세상은 희생과 죽음으로 완성되는 전쟁터 같았다.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말은 지루했다. 발버둥이라는 표현보다는 본능에 가까웠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싶은 본능. 없는 사람은 높은 벽에 주저앉는 본능. 그리하여 시간이 갈수록 없는 사람은 가진 사람에 비해 더 쪼그라들었다. 빈부의 격차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고,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은 후에 커서 갑을 관계가 되었다.


이런 세상 속에 구찌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b-a-g, 백이라고 읽지 않고, 빽이라고 읽어야 되는 이 전설의 가방을 소유한 자는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해당 모델은 오로지 한 개만 생산되었다며 밝힌 구찌 측은 자신들은 그 전설이 사실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투박하게 짝퉁을 만들어 팔았다. 수요는 급증했다. 원조, 진짜, 리얼이라는 말이 붙기 시작하면서 가방은 누구나 하나쯤 들고 다니는 필수품이 되었다. 하지만, 판매량만큼 실현되지 않은 무수한 욕망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시들게 했다.


김은 이런 세상이 싫지도 밉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주어진 하루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몫이자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김은 운명 앞에 차분히 순종했다. 묵묵하지만 가끔은 농담으로 주변 사람에게 잔잔한 미소를 안겨줄 주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속에는 언젠가는 자신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책을 탐독했고, 세상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모든 일은 인간관계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서 주변을 항상 반듯하게 정리하고 행동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았다.


그런 김이 전설의 구찌빽을 가지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어느 날 김은 길을 걷다가 쓰러진 할머니를 만났다.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김은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던지고, 할머니의 숨을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구급차를 부르게 했다. 다행히 구급차가 오기 전에 할머니의 숨은 돌아왔다. 눈을 뜬 할머니는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할머니는 그 전설의 구찌빽을 김에게 주었다. 그것이 전설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의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네”라는 말에 김은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구찌빽을 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김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가방을 건넸다. 김의 아내는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의 생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은 갑자기 그 가방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바뀌자, 그의 행동도 바뀌었다. 김은 요행을 바라면서 삶이 흐트러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에 대한 확신만큼 온전히 바로 섰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올 부가 쉽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독서에 더욱 열중했고,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 더욱 열중하며 평생을 들여 성취할 업을 찾으려 노력했다. 태도는 더욱 당당해졌으며, 그의 웃음과 손길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설은 사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10년 된 차도, 29평의 아파트도 그대로였기 때문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사무실을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상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백수 같은 생활이 이어졌지만, 곧 그가 필명으로 쓴 책이 유명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제야 그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은 말했다.


“구찌빽의 전설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종교와 같습니다. 누군가는 성인을 닮으려고 노력하듯이 저는 자본을 숭상합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성인처럼 하지만, 정작 정신과 행동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상화된 성인의 삶을 얼마나 본받고 충실하냐로 결정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겉만 핥을 뿐입니다. 정작 성인을 만나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이어 말했다.


“구찌빽은 성인입니다. 그것을 소유하느냐 마느냐는 천국과 지옥행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과연 나는 진짜 그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구찌빽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찾아와 나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소유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이 찾아낸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찾아온 것입니다. 과연 지금 내가 소유한 것이 정말 내가 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일까요? 저는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정말로 간절히 그리고 제대로 사랑했을 뿐입니다.”


이어 지금 구찌빽이 어디에 있냐는 질문에 김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내 곁을 떠났다는 말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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