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문장] 오늘 일은 끝!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관점의 전환은 최고 난이도 과제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려면 나 그리고 내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열정은 그 정반대에 있다. 열정에 빠진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오직 나 그리고 일과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일과 나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지가 중요하다. 내가 내 일을 사랑할수록 일은 더더욱 나에게 목적 자체가 된다. 다른 것은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 폴커 키츠, 신동화 옮김, <오늘 일은 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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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상을 꿈꾸는 사람은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모순과 불합리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적 아집이 생긴다. 반박하기 힘든 논리와 이론으로 중무장한 그들은 경쟁과 토론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들이 음지에서 독을 품고 있는 기존 세력과 조우할 때이다.
관성이라는 것은 무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처럼 살고 싶어 한다. 불만은 자칫 지루해지는 일상을 조금이나마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그래서 그들은 때때로 불만을 토로하지만, 정작 그것이 현실로 옮겨 붙는 것을 싫어한다. 그냥 이대로 그저 말로 동동 떠다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끔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온라인 공간 등에서 과감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다 그것을 빌미로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처지가 되면 다시 움츠러들고 숨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그들의 사과는 그들이 내뿜는 불만만큼이나 아주 헛되다.
이런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열정적인 이상주의자들은 외면받는다. 열정은 관성을 깨뜨리기 위해 소요되는 에너지와 같다. 작용은 반작용을 필히 동반한다.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면 변화는 없다. 그저 열정만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질 뿐이다. 열정 충만한 에너지로만 관성을 깨뜨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윗글에서는 10% 성공률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예로 들었다. 가끔 성공사례도 있으나 대부분의 스타트업의 문제는 ‘열정은 비효율적이다’는 것이다. 열정은 집착이 되고, 그 집착은 자신의 일과 과업을 객관화 하지 못하거나, 자기만족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이 글의 결론이 ‘젊은이여 열정을 멀리하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그렇지 않다. 허무주의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열정의 희극성은 오히려 열정의 숭고함을 강조해야 마땅하다. 우리는 열정이 필요하다. 열정 없는 위대한 성취는 로또 정도이다. (매일 로또를 샀다면 그 열정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열정은 칼처럼 어떻게 쓰는가와 같은 방법론과 매니지먼트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날카로운 단면에 손을 베었다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이 관성을 무너뜨리는 법을 찾는 데 열정과 더불어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약하건대, 세상은 잘 움직이지도 변하지도 않기 때문에 엉덩이를 떼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또는 마찰력을 줄일 수 있는 기질을 발휘해야 된다는 것이다.
한 개인 또는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열정의 총합이 한계치에 달했다면, 야비할 수도 있는 기질을 발휘해야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엉덩이와 바닥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 둘의 접착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경계에서 모든 변화가 발생한다는 경계론이다.
엉덩이와 바닥 사이에 있는 나는 엉덩이도 바닥도 아니다. 둘 다다. 그 애매모호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엉덩이와 바닥의 경계에서 내가 확실하게 자리 잡는 순간, 그때 열정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열정은 아무 잘못이 없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엉덩이는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서 걷고 뛰다가 나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출 수도 있다. 이것이 성공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평생 춤을 출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인도한 어느 자리에 엉덩이를 붙일 것이다. 그럼 무작정 나를 밀어내는 사람은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중 열에 하나가 슬그머니 엉덩이 밑으로 들어올 때, 흐뭇한 웃음을 지어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