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최수철 X 카뮈]

by 랩기표 labkypy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다. 그렇다면 부조리는 우리 삶의 장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다. 따라서 그러한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때 부조리는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자 사유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글쓰기를 방해하는 자신의 성향도 정확히 인식하면 오히려 자신도 알지 못했던 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창조 행위에 임할 때 늘 그를 이끌었던 역설의 힘이다.

- <카뮈> X 최수철 중에서


*

낙담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 떠났다는 이유로, 도전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슬퍼진다. 다시 일어서질 못할 것 같은 암흑의 시간이 찾아오고 그 안에서 눈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헤매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줄기 빛을 보게 된다. 그 빛을 따라가다 한참을 걷는다. 분명 그 빛이 나에게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운명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신의 계시와도 같은 것이다. 영감이란 신의 속삭임이라고 하였던가. 나는 다시 그 달콤한 숨소리에 눈이 떠졌다. 걸음이 빨라져 뛴다. 시간은 의식 없이 흘러간다. 의식 없는 시간 속에 담기는 모든 것들은 무의미하다. 의미가 없기에 나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그 빛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발걸음은. 몹시도 지친. 드물게 보이는 초인적인 형태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문득 지나온 자리가 궁금해 뒤를 돌아본다. 흔적이 어느새 지워지고 없었다. 오로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몇 가지 기억들만이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나는 다시, 앞을 보며 걸을 준비를 하다가 질문 하나를 던진다.

나는 누구일까.

만들어진 인간일까. 창조하는 인간일까. 몹시도 궁금해졌다. 삶에서 마주하는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해서 끈질기게 답을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창조 행위의 기본이다. 그 행위의 출발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이라 가끔 놀란다. 아침 햇살과 파도의 부서짐 같은 것들이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새롭고 다르게 해석되는 것들에 대해서 쓰기 시작한다. 나는 그 어느 틈에 존재했다. 또한, 나는 그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대로 부서져도 아무 상관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공포가 스르륵 땅 밑에서 올라오다가 눈 밑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물이 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잠시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다. 그리고 다시, 나는 물었다.

나는 누구일까.


<Juan Gris> - Modigli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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