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비즈니스 리더는 다음에 무엇이 올지(what’s next)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미래 예측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앞서 충분히 설명했다. 따라서 다음에 무엇이 올지를 예측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비즈니스 리더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마치 이력서를 작성할 때처럼 과거를 돌아보며 사후 합리화의 과정을 통해 위대함을 ‘발견(discover)’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위대한 혁신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여러분들 머릿속에 정말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치자. 그럴 때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누군가에게 그 아이디어에 대해 말할 것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성공 여부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아이디어에 대해 100% 확신할 수 없다. 즉, 그 아이디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다른 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목을 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가 확실하게 성공할지 여부를 미리 알 수 있다고 치자. 물론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도 여러분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며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동의를 구하느라 시간을 보내겠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남들이 뭐라 하든 간에 상관없이, 그냥 그 아이디어를 추진할 것이다. 왜 그렇게 하겠는가? 남들이 다 하지 않을 때 내가 해야만 위대한 혁신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대함이란 의견 불일치의 결과(greatness results from being non-consensus)’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혁신은 모든 이가 합의를 이루고 동의를 구하는 일(컨센서스)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를 거스르는 일탈(deviance)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합의의 역설이다.
— 윌리엄 바넷 교수
기업문화를 연구해 온 스탠퍼드대 윌리엄 바넷 교수의 말입니다. <동아 비즈니스 리뷰> 기사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짚고 싶은 키워드는 위대함과 일탈입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첫 번째, 위대함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번째, 일탈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입니다.
저는 위대함이란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이라는 개념, 국가는 사회계약이라는 개념, 니체의 실존주의, 불교의 중용과 해탈 등 폭력을 줄여 더욱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거나 영혼을 자유롭게 하고 슬기롭게 고통을 극복하는 힘을 부여해주는 ‘사상’과 질병을 치료하고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상상을 실현시켜주는 ‘기술’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한 때, 이 위대함을 갖추는 방법은 바닥에 떨어진 지식을 머리에 주워 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정해진 루트를 따라 가장 빠르고 멀리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닫혀 있던 세상은많은 사람들에게 활짝 열리며 각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위대함은 통합과 재조합의 과정을 통해 솟아나고 있습니다. 통합과 재조합은 성을 높게 쌓아 문을 걸어 잠그는 권위가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일탈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경영 이론서들이 위대한 아이디어와 일탈의 관계를 역설하고 있지만 결국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견문을 넓혀 심미안을 갖추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출신이 아니라 행적입니다. ‘어디서 출발했는가’가 아니라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다녀왔는가’가 그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지금 비록 코로나 19로 몸은 갇혀 있지만, 위대한 여정은 영혼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됩니다. 책과 영화 그리고 글쓰기 등 우리에게 허락된 일탈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