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부귀영화 04화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반드시 불행할까?

[영화] 딱따구리와 비

by 랩기표 labkypy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반드시 불행할까?


어느 구글 직원이 던진 질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더 큰 무대로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를 구글까지 인도했다. 꿈꾸던 삶이었지만 전 세계 인재들이 널려 있는 곳에서 그녀는 지쳐갔다. 나침반 없는 곳에서 방황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그녀는 결국 정신병까지 얻게 되었다. 잠시 쉼을 가졌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토록 불행한 것인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한 끝에 찾은 답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개구리였다. 개구리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저 밖으로 반드시 나가야만 된다는 욕망이었다. 욕망은 해소되지 못하면 불안으로 바뀐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불안에 떨다가 피나는 노력 끝에 밖으로 나갔지만, 마주한 세계는 조금 더 큰 우물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불안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욕망으로 비롯된 불안은 평생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 큰 우물로 뛰어드는 것보다 머리 위로 가득 찬 하늘을 즐기기로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고차원 방정석이 될수록 해가 많아지듯, 차원 높은 삶 속에서 기쁨의 순간은 늘어갔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주인공 카츠는 벌목꾼이다. 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전기톱으로 나무를 벤다. 빽빽한 숲 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도시락을 먹는 것이 일상이다. 그는 농촌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면서 자랐고, 커서는 그의 아버지처럼 되었다.


꿈 많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도시로 나가서 근사한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고, 연어처럼 여기저기 상처 입은 몸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꼭 빼닮은 아들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끈기가 부족한 그의 아들은 매번 일을 시작하면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두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닦달을 참지 못하고 도쿄로 떠났지만, 결국 아버지와 같은 작업복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카츠는 그런 아들을 보며 더 이상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들은 그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꽉 막힌 벽에 머리를 쪼아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가 그에게 알려준 것



한가로운 작은 마을에 영화 촬영이 시작된다. 카츠는 우연히 그 영화에 출연하게 되고, 낯선 장소에 적응하지 못하는 촬영팀을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카츠는 이 낯선 세상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낯설지만, 새롭고 신비로운 세상을 향해 진심으로 다가간다. 보수도 없이 본업은 제쳐두고 하루 종일 촬영을 돕는다. 카츠는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카츠의 아들과 동갑이다. 자신의 아들은 촌구석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지만,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많은 스텝과 함께 영화를 찍고 있다. 출신의 차이인가. 그는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감독의 자리까지 오게 한 것일까. 감독은 “아버지가 쓰던 카메라에 호기심이 생겨 시작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츠는 “아버지는 분명 자기 자식의 미래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기뻐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감독은 그럴 일 없다고 손사래를 쳤고, 카츠는 그런 감독을 보면서 자신과 아들을 생각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벌목꾼이 되었고, 자신의 아들도 역시 벌목꾼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 자신이 미운가. 그렇지 않다. 나는 기쁘다. 좋은 아내를 만나 아들을 두고 행복하게 살았다.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가 그립지만, 괜찮은 인생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들은 어떠한가. 아들의 불행은 오로지 나의 망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더 높은 곳에 올라야만 괜찮은 삶인가.


나는 나무를 찍고, 감독은 영화를 찍는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감독은 감독이고, 벌목꾼은 벌목꾼이다. 행복은 그 안에 모두 있다. 헛된 기대와 현실 부정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불행이다. 성장은 지금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우유부단한 자신의 성격을 싫어하는 감독도 분명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확신이 서지 않아 두려움에 촬영장을 도망치려 했던 감독은 이 영화를 완성하게 될 것이고 다음 영화를 또 찍을 것이다. 나도 다시 나무를 자를 것이고, 내 아들도 역시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삶을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짧은 영화 촬영 기간이 끝나고 카츠는 다시 벌목을 하고 그루터기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밤에는 온천을 즐기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이 살던 세상이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더 이상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sc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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